성인[聖人]들과 함께

10월20일 聖女베르틸라, 聖女이레네 님..등

H-Simon 2010. 10. 19. 15:42

 

 

10월20일(수)

聖女베르틸라, 聖女이레네 님..등

 

 

 

  

 성녀 베르틸라 보스카르딘(Bertilla Boscar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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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틸라 보스카르딘(10.20)
 
성인명 베르틸라 보스카르딘(Bertilla Boscardin)
축일 10월 20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888-1922년
같은이름 베르띨라, 보스까르딘


   안나 프란치스카 보스카르딘은 이탈리아 비첸차 근교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고, 1904년에 고향의 산타 도로테아회에 입회하여
베르틸라라는 수도명을 받고 3년 동안 주방 일을 한 후
트레비소의 어린이 병동에서 간호사로서 일하였다.
 
1917년의 대공습 때 성녀 베르틸라 수녀는
자신의 환자들을 아주 태연한 자세로 돌봄으로써 코모 근교의 야전 병원
당국으로부터 놀라운 찬사와 더불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원장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탁 일을 하도록 명하자,
고위 장상에게 하소하여 어린 환자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간청하였다.
마침내 1919년에 그녀는 트레비소의 어린이 격리 병동의 소임을 맡았으나,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모든 활동을 포기해야 하였다.
큰 수술이 필요하여 실시했지만 생명을 건질 수 없었다.

   성녀 베르틸라의 생애는 힘든 일로 점철된 극히 단순했지만,
그녀는 어린 환자들에게 위대한 사랑을 베풀어 깊은 인상을 심었고,
그녀의 중재로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성인품에 오르던 날,
그녀의 간호를 받았던 당사자와 그 부모들이 구름처럼 시성식장에
몰려왔다고 한다.
 
 
 
 
 
    ▶이레네(10.20)
 
성인명 이레네(Irene)
축일 10월 20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포르투갈(Portugal)
활동연도 +653년경
같은이름 이레나, 이레네아

 

포르투갈의 성녀 이레네(Irene)


   성녀 이레네는 포르투갈 에스트레마두라(Estremadura) 지방의
토마르(Tomar)에서 유력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아름다운 딸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원 학교에 보내고
개인교사를 두어 가르쳤다.
그녀가 집밖에 나가는 일은 미사에 참례할 때뿐이었다.
우연히 성당에 가던 성녀 이레네를 본 한 젊은 귀족이 그녀에게 반해 청혼했으나, 성녀 이레네는 단호히 수녀로 살기 위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했다며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가 임신했다는 거짓 소문이 동네에 퍼졌고,
이를 들은 그 귀족 청년은 사람을 사서 산타렘(Santarem)에서 그녀를 살해하였다. 자객은 나이든 병자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성녀에게 접근해
한 칼로 그녀를 살해하였다.
 
성녀 이레네에 관해서는 사실이 아닌 신심적인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으나
653년경에 사망한 베네딕토 수녀회의 포르투갈 출신 수녀가 있고,
실제로 그녀는 토마르와 산타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카프라시오(10.20)
 
성인명 카프라시오(Caprasius)
축일 10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아쟁(Agen)
활동연도 +3세기?
같은이름 가프라시오, 가프라시우스, 까쁘라시오, 까쁘라시우스, 카프라시우스

 


   프랑스 아쟁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성 카프라시우스는
이 도시의 첫 번째 주교였고, 
그의 교구민들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그는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사목하였다.
그는 은신처에서 나와 몽-생-뱅상으로 갔다가
성녀 피데스(Fides, 10월 6일)의 장렬한 순교 현장을 목격하였다.

   이때 그는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를 깊이 깨닫고,
성녀 피데스의 유해가 방치되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다가
총독 다키아누스를 만났다.
그의 이름을 묻는 총독에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며
더욱이 주교라는 사실을 용감하게 말하였다.
다키아누스는 그의 인품에 크게 감명을 받았으나,
황제의 칙령에 따라 배교하라고 요구하였다.
 
 
그가 단호히 거부하자 형리들에게 인계되었는데 형리들도
그의 신앙심과 항구심에 오히려 감명을 받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고 한다.
총독 자신도 그러하므로 하는 수 없이 그를 감옥에 보냈다.
그 다음날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성녀 피데스와 마찬가지로
장렬하게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