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수)
미국의 聖女가타리나, 聖야코비노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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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필라델피아에서 유복한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자라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녀는 흑인과 토착 미국인인 인디언들의 물질적, 영성적 삶의 질에 큰 관심을 갖게 되어 그들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으나 이내 정말 필요하고 부족한 것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섬기기 위한 복된 성사의 수녀회(Sisters of the Blessed Sacrament)를 설 립하였다. 자신의 삶을 헌신하며 기금을 마련한 성녀 카타리나 원장은 1894년 뉴멕시코 산타페에 인디언들을 위한 최초의 선교학교 개교식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미시시피 강 서편의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와 미국 남부 지방의 흑인들을 위한 학교들도 개교하였다. 1915년에는 뉴올리언스에 미국 최초의 흑인들을 위한 대학인 사비에르(Xavier)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녀가 선종할 무렵에는 이미 미국 전역에서 500명이 넘는 수녀들이 63개의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1988년 11월 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2000년 10월 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고향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업하여 1782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4년 뒤에는 파리로 가서 라자로회에 입회하였다. 이 라자로회는 곧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선교회를 말한다.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어느 누구보다도 온갖 형태의 사도직을 영웅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악법인 성직자 헌장의 서약을 거부하였고, 그 때문에 숨어 지내야 했다. 그러나 어느 밀고자 때문에 혁명 주체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로크 신부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는 1796년 3월 1일에 단두대의 이슬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유해는 반 주교좌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야코비누스는 베르첼리에 있는 한 카르멜회에 입회하여 평수사가 되었다. 그는 특히 성모 신심에 있어서 남달리 뛰어났는데, 그런 그의 열심히 수도원 내의 모든 수도자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그의 주요 임무는 마을을 다니며 집집마다 애긍을 청하는 힘든 일이었는데, 그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그 일을 영웅적으로 행하여 덕을 쌓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45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카네파치스(Canepacis)의 야코피누스(Jacopinus)로도 불린다.
모친 헤드비그로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신심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독일 바이에른의 공작인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와 결혼하였다. 이때 성 헨리쿠스는 동방의 어느 목수가 제작한 십자가를 선물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뮌헨에 보존되어 있다. 어느 전기작가는 그들 부부는 결혼식 날에 동정서원을 발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추대되었고, 그의 대관식은 마인츠(Mainz)에서 성 빌리지스(Willigis, 2월 23일)에 의하여 성대히 거행되었고, 이어 1013년에 그는 로마로 가서 교황 베네딕투스 8세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부터 서로 동정을 지키며 남매처럼 지내던 성녀 쿠네군다는 얼마 뒤에 중상자들의 희생물이 되었고, 남편마저 일시적이나마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확고히 항변해야 할 입장에 선 그녀는 불에 의한 시죄법(試罪法) 적용을 허용해 달라고 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었고, 국내의 신앙 전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성녀 쿠네군다는 황제에게 청을 드려서 밤베르크 대성당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짓게 하였고, 교황 성하가 직접 오시어 축성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러던 중에 중병을 앓게 되었는데, 그녀는 병이 나으면 카셀(Kassel) 근교 카우푼겐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그 후 이 일이 거의 완공될 무렵 남편 성 헨리쿠스가 운명하였다. 미사 때 복음을 봉독한 뒤에, 그녀는 원래의 십자가 일부를 제대에 봉헌하였다. 그 후 그녀는 주교로부터 수녀복을 받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지난날의 황녀로서 모든 부귀영화를 잊고 비천한 환경과 초라한 수도원에서 기꺼이 살았으며, 하느님 앞에 흠 없는 삶을 살았다고 주위 사람들이 높이 칭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1200년 3월 29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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