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2011년 6월 30일[(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H-Simon 2011. 6. 30. 03:30

         오 늘 의   묵 상         H-Simon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복음 말씀 ♥

 

+.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마태오 9,1-8)

 

♥ 오늘의 묵상 ♥

 

유다인들은 죄와 질병을 같은 차원에서 이해했습니다.(요한 9,2 참조).

그들에게 질병은 죄의 결과이면서 또 죄의 처벌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질병에 걸리면 신체적 고통은 물론 죄인 취급을 당하는

정신적 고통까지도 함께 겪어야 했습니다.

중풍 병자는 그래서 몸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마비된 상태인 것입니다.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처럼 이스라엘 전통과 율법에 충실한 사람일수록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지 못했습니다.

병자들은 당연히 죄의 벌을 받는 것이기에 고통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는 율법을 지켜야 하므로 사람이 아무리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해도 어떤 치료도 해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보다는 법과 전통이 늘 먼저였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법의 찬 기운만이 감돌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중풍 병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연민을 가진 사람들이 그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어쩌면 그들은 가난을 함께 나누는 약한 처지의 이웃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법도 전통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이 더 중요합니다.

법과 제도를 앞세우며 사는 사람들은 그저 조직의 구성원일 뿐입니다.

이들은 신앙생활도 교회 규정만 잘 지키며 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냉정합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아픔을 함께 나누는

하나의 지체가 되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서는 법과 제도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믿음과 사랑으로 일하십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6월 30일

                                  H-Simon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 걸으리라.


 나는 주님을 사랑하네. 애원하는 내 소리 들어 주셨네.

당신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니, 나는 한평생 그분을 부르리라.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살아 있는 이들의 땅에서 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