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4월18일 福者안드레아 이베르논 님..등

H-Simon 2011. 4. 17. 15:45

 

 

4월18일(월)   

        福者안드레아 이베르논 님..등

 

 

 

복자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as Hibernon)
 

 

 

     

                                                                               

 

    ▶안드레아 이베르논(4.18)
 
성인명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w Hibernon)
축일 4월 18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602년
같은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히베르논

 

복자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as Hibernon)


   에스파냐의 귀족 가문의 일원인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as Hibernon)
무르시아(Murcia) 교외 알칸타릴라(Alcantarilla)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누나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강도를 만나 모든 돈을 빼앗겼다.
허탈감에 빠진 그는 세상 재물의 헛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천상에 보화를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길로 그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겸손과 기도 그리고 관상에 뛰어났으며 숨은 생활을 즐겼다.
그는 무엇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지를 늘 지켜보고 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예언과 기적의 은혜까지 받았다.
 성 안드레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을 예고하였으며,
간디아(Gandia)에서 수도원 개혁을 돕던 중 68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Paschalis Bailon, 5월 17일)과 성 베드로 데 리베라
(Joannes de Ribera, 1월 6일)는 성 안드레아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데 크게 앞장섰다.
그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누나의 결혼 지참금을 벌어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던 중 강도를  만나........

                세상에 대한 허탈감에 오히려 수도자의 삶을 택하신 분

 

                무엇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지를 늘 생각하신 분

                아버지께서는 예언과 기적의 은혜로 축복하셨도다.

 

                누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더니, 주님께 모든 것 바치려 애쓰신 분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을 경외하신 분.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마리아(강생의)(4.18)
 
성인명 마리아(강생의)(Mary of the Incarnation)
축일 4월 18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과부
활동지역  
활동연도 1566-1618년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강생의 복녀 마리아(Mary of the Incarnation)


   바르바라 오리오(Barbara Aurillot)는 정부 고위관리인
니콜라스 오리오(Nicholas Aurillot)의 딸로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아주머니가 있는 롱샴(Longchamps)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고
종교적인 생활을 원했지만 16세 때에 재정 관리인
피에르 아카리(Pierre Acarie)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신심이 깊고 또 애덕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바르바라 오리오는 모두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셋은 카르멜회 회원이 되었고, 한 명은 사제가 되었다.

   그러던 그녀의 집안에 큰 재앙이 다가왔다.
그녀의 남편은 앙리 4세(Henri IV)에 대항하는 가톨릭 연합의 후원자였다.
그래서 앙리 4세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피에르 아카리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일종의 모반 혐의로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바르바라 오리오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의 저작에 심취하고
애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녀의 이 모든 선한 일들은 결국 앙리 왕의 감탄과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맨발의 카르멜회를 프랑스로 불러왔고,
1604년부터 1609년 사이에 5개의 수녀원을 세웠다.

   1613년 47세의 나이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아미앵(Amiens)에 있는
카르멜회에 입회를 청하여 허락을 받고
강생의 마리아(Maria)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곳은 그녀의 큰딸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영적인 제자로
비록 만 4년밖에 수도자로서 살지 못했지만
기혼자로서 뛰어난 성덕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녀는 “주님, 제가 저지른 온갖 나쁜 표양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남기고 4월 18일 퐁투아즈(Pontoise)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시복되었다.
 

  

             여섯명의 자녀 가운데 넷을 수도 성직로 키우신 훌륭한 어머니가

             어려움에서 가정을 일으켰고

             남편과의 사별 이후에는

             강생의 마리아 수도명을 받아 5개의 수녀원을 세우셌으니

 

             기혼자로서 뛰어난 성덕의 소유자로 칭송받으셨도다....

             사랑해요, 강생의 마리아님

             님처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굿뉴스 가톨릭 정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