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복음 말씀 ♥
+.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태오 23,1-12)
♥ 오늘의 묵상 ♥
이냐시오 성인은 사람들에게 피정 지도를 하려고 『영신 수련』이라는 책을 썼지요.
그 책에서 겸손의 ‘세 단계’를 설명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는 ‘완전한 겸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겸손은 하느님께 존경과 영광을
드리고자 부귀보다는 가난을, 명예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업신여김당하기를,
세상 것에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으로 보이기보다는 그리스도처럼 천대받기를 바라고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 완전한 겸손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얼마나 겸손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 그들은 가난보다는 세상의 부귀를,
업신여김당하기보다는 인사받고 존경받기를,
천대받기보다는 지혜롭고 현명한 스승으로 대우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집회서에서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거만한 사람의 마음에는 ‘악의 잡초’가 뿌리를 내린다고 하였습니다(3,20.28 참조).
교회의 전통 가르침인 『준수성범』에서도 “겸손한 사람에게는
항상 평화가 있으나 교만한 자의 마음에는 분노와 질투심이 자주 일어난다.”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보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늘 분노와 질투를 드러낸 이유를 금방 알게 됩니다.
분노와 질투의 뿌리가 바로 교만이라는 뜻입니다.
겸손(humilitas)의 어원은 ‘땅’(humus), 곧 ‘흙’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 존재는 아무리 잘난 척해 보아야 ‘흙덩이’이고,
아무리 지식이 많다 해도 하느님께서 숨결을 거두어 가시면
‘흙의 먼지’로 흩어지고 말 존재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은 ‘겸손’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러니 땅처럼 모든 이를 발아래서 받쳐 주고 품어 주는 큰마음의 사람,
하느님의 사랑을 호흡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면 마음속 분노와 질투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10월 30일
H-Si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