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비오 성인은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으며,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손과 발, 가슴에서 피를 흘려 ‘오상의 비오 신부’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1918년부터 성인이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50년 동안 오상의 고통을 간직한 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살았다. 2002년 6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복음 말씀 ♥
+.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루카 9,18-22)
♥ 오늘의 묵상 ♥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런저런 궁색한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대답은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질문이 어려우면 스스로 “나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어 보면 어떨지요?
이것 또한 이런저런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것이 진정 나인가 다시 물으면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이렇게 자신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날마다 눈 뜨고 살아 있는 내 자신도 모르는데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반대로‘예수님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보면 어떨지요?
그것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실지 이것저것 추측해 볼 수 있지만,
나에게 깊이 와 닿는 진정한 대답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질문은 사실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누구이신지를 깨달으면,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를 알면 주님도 누구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으면
다른 두 가지 대답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안고 사는 이런 근원적인 물음은 어느 날 한 순간 은총으로 깨달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화두처럼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물음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물음에 대한 온전한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 안에 해답이 있다고 하듯, 이런 물음을 안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삶 깊은 곳에 답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라고 하셨지요.
우리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 온전히 드러나는 날,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는 물음 속에 하느님 얼굴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9월 23일
H-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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