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4월28일 몽포르의 聖루도비코 마리아님..

H-Simon 2011. 4. 27. 19:03

 

 

4월28일(목)   

몽포르의 聖루도비코 마리아님..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농(Lodovicus Maria Grinion)
 

     주님 손 잡고 일어서세요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농(4.28)
 
성인명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농(Louis Mary Grinion)
축일 4월 2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립자, 증거자
활동지역 몽포르(Montfort)
활동연도 1673-1716년
같은이름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농(Lodovicus Maria Grinion)

 


   프랑스 몽포르의 어느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성 루도비쿠스 마리아 그리농(Lodovicus Maria Grinion,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농)
(Rennes)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받은 후 17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첫 임지는 푸아티에(Poitiers)의 한 병원이었는데,
병원 관계자의 재정비로 인하여 원성을 사게 되자 사임하였다.
그는 이 병원을 떠나기 전에 일단의 여성 그룹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가 후일 ‘지혜의 딸 수녀회’가 되었다.
 
그는 주로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였는데,
이것이 또 그곳 주교의 원성을 듣게 되어 설교권을 박탈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로부터
선교사 총대리로 임명되어 브르타뉴(Bretagne) 선교 길에 올랐다.

   그가 늘 문제를 일으키게 된 주된 이유는 과도한 신심 때문이었으나
또한 그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의 주요 신심은 마리아와 로사리오(묵주기도)였다.
그는 이 신심을 전파하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란 책을 저술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1715년 그는 수 명의 사제들을 규합하여 ‘마리아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생로랑쉬르세브르(Saint-Laurent-sur-Sovre)에서 운명하였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천상 어머니에 대한 깊은 신심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더 가까이 느끼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인이시여

 

                레지오 주회 때 님을 찾을 때마다

                우리가 어머니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루케시오(4.28)
 
성인명 루케시오(Luchesius)
축일 4월 28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증거자, 3회원
활동지역 움브리아(Umbria)
활동연도 +1260년
같은이름 루기오, 루체시오, 루체시우스, 루치오, 루치우스, 루케시우스, 루키오, 루키우스

 

움브리아의 복자 루케시오(Luchesius)와 보나돈나(Bonadonna)


   루키우스(Lucius)로도 불리는 루케시우스(루케시오)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발 델사(Val d'Elsa)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후에 피렌체(Firenze)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그는 첫 번째 작은 형제회의 재속 회원이었다.
 젊어서 그는 매사에 세속적인 탐욕을 부렸는데,
특히 재산과 정치에 욕심이 많았다.
그 때문에 그는 겔프당(Guelf黨)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고향 마을인 가기아노(Gaggiano)를 떠나 포기본시(Poggibonsi)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루키우스는 그의 나이 30-40세쯤 되었을 때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이는 아마도 자식의 죽음 때문인 것 같다.
그때 비로소 그의 영혼에 하느님의 속삼임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조금씩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돕고 위로하였으며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기도 하였다.
그에게 일어난 이 모든 변화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
 그 지방을 방문하여 설교한 뒤부터 일어났다.

   이제 그는 세속 안에서의 수도생활을 꿈꾸게 되었다.
루케시우스와 그의 아내 보나돈나(Bonadonna)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므로
그들의 소망을 프란치스코 성인께 말씀드려
천사적 성인으로부터 재속 3회의 수도복과 띠를 받았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철저한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먹을 빵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부는 높은 성덕을 얻었고 탈혼과 치유의 은사까지 받았다.
그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여생을 참으로 행복하게 지내다가
부부가 거의 동시에 임종하는 은혜까지 받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273년에 승인되었다.
 

 

 

                시련을 당했을 때

                부부는 함께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셨고

 

                천사처럼 나타난 성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 흔쾌히 따르셨으니

                현세에서 크다란 축복으로 응답 받으셨네요.

 

                현세의 많은 가정들이 역경을 딛고

                주님 사랑에 이르도록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아멘

       

 

                                                                                                              **굿뉴스 가톨릭 정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