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3월 7일 聖女페르페투아님..등

H-Simon 2011. 3. 7. 00:08

 

 

 3월 7일(월)

聖女페르페투아님..등

 

  

카르타고의성녀페르페투아와성녀펠리치타순교지

 





 

 

 

 

    ▶페르페투아(3.7)
 
성인명 페르페투아(Perpetua)
축일 3월 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카르타고(Carthago)
활동연도 +202년
같은이름 벨벳뚜아, 뻬르뻬뚜아, 페르페뚜아

 

카르타고의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와 성녀 펠리치타(Felicitas)의 순교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Felicitas) 및 4명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초기 순교자들의 전기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그 일부는 성녀 페르페투아 자신이 그리고 다른 일부는 나머지 순교자들이
기록한 글에 의해서 하나의 전기가 완성되었다.
성녀 비비아 페르페투아(Vibia Perpetua)는 좋은 가문의 딸로서 순교
당시에 귀여운 아기를 팔에 안은 젊은 부인이었고,
성녀 펠리치타는 여종이었다.
나머지 4명의 순교자는 노예였던 성 레보카투스(Revocatus),
성 세쿤둘루스(Secundul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그리고 성 사티루스(Satyrus)이다.
 
로마 제국 내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황제의 칙령에 따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o)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검거할 당시
성 사티루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예비자였으나
모여 있던 집이 포위될 순간에 모두 세례를 받고 함께 감옥에 갇혔다.

   그 당시에 성녀 페르페투아는
처음으로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를 꿈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신비한 어느 사제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교도의 사제였다.
성녀는 “나는 그 노인의 불행을 슬퍼하였지요.” 하며
아기를 안고 걱정하던 차에 체포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들은 모두 맹수의 밥이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감옥에 돌아온 뒤에 성녀 페르페투아는 두 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어릴 적에 죽은 동생을 보았다.
그리고 성 사티루스는 자신이 천국에 당도한 꿈을 꾸었다.
 
이윽고 순교의 날이 왔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이 우리를 심판하였으나 하느님은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성녀 페르페투아의 일행은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하느님의 귀여운 자녀답게” 형장으로 나갔다.
맹수들이 덤벼들자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의지하다가 한 사람씩 죽어갔다.

 

 

    ▶데레사 마르가리타 레디(3.7)
 
성인명 데레사 마르가리타 레디(Teresa Margaret Redi)
축일 3월 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747-1770년
같은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테레사, 테레시아

 

성녀 테레사 마르가리타 레디(Teresia Margarita Redi)

 


   이탈리아 중부 아레초(Arezzo) 사람들은
흔히 성녀 테레사 마르가리타 레디(Teresia Margarita Redi, 데레사)
안나 마리아 레디(Anna Maria Redi)라고 불렀다.
그녀는 10세 되던 해에 피렌체(Firenze)로 가서
성 아폴로니아 공동체의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후
계속하여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지 몇 개월 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의 책에 나오는
그녀의 초자연적인 권고에 이끌려 카르멜 회원이 되려고 하였다.
그래서 1765년 그녀는 피렌체에 있는
성녀 테레사의 맨발의 카르멜 수도회에 들어갔다.

   그녀는 특히 예수성심 신심에 있어서 뛰어났으며,
숨은 생활이 오히려 남을 위해 희생하기 좋은 기회임을 잘 이해하고
실천했던 뛰어난 성녀였다.
그녀는 주로 공동체 내에서 아픈 동료들을 돌보았는데,
수녀이기보다는 간호사에 더 적합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23세의 일기로 선종한 그녀의 유해는 현재까지 부패되지 않고 있으며,
피렌체 주민들로부터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34년 3월 19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바오로(3.7)
 
성인명 바오로(Paul)
축일 3월 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40년경
같은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성 바오로 심플렉스(Paulus Simplex, 바오로 단순한 사람, 맨 왼쪽)


   일생동안 노동자 생활을 했던
성 바오로 심플렉스(Paulus Simplex, 바오로 단순한 사람)는 60세 때에야 비로소
불충실한 아내를 떠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1월 17일)를 찾아 나섰다.
이때 안토니우스 성인은
이집트의 테베(Thebae,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에 있었다.
그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성 안토니우스는 선뜻 제자로 받아주기를 꺼렸으나,
성 바오로의 항구심에 탄복한 나머지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성 안토니우스가 성 바오로에게 자신을 포기하는 엄격한 훈련을 시킨 결과,
성 바오로는 겸손과 열성 그리고 순종에서 뛰어난 덕행을 보였다.
그래서 성 안토니우스는 그를 위해 움막을 지어 주었다.
그는 치유의 은사를 받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있었으며,
수도자의 이상을 성 안토니우스에게 다시금 심어주었을 정도로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의 순진무구한 마음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