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토마스(Petrus Thomas)는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Gascogne)의 브레이유(Breil)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성당도 없었지만, 다행히 카르멜회와 연관을 맺게 되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콩돔(Condom)에서 수련을 시작하였다.
1342년 그는 카르멜회의 총경리가 되었다.
이 직책 때문에 그는 아비뇽(Avignon)으로 갔는데,
당시 그곳에는 교황이 머무는 곳이라 즉시 그의 성덕이
고위성직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설교에도 매우 뛰어났으므로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의 장례식에서 강론하도록 초청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제노바(Genova), 밀라노(Milano), 베네치아(Venezia)의
교황대사로서 힘든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타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는 1354년에 파티(Patti)와 리파리(Lipari), 1359년에 코론(Coron),
1363년에 칸디아(Candia)의 대주교
그리고 1364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명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황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를 위해서 세르비아, 헝가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면서 투르크족에 대항할 십자군을 조직하였다.
13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공격하는 원정대에 참가하여
화살을 맞고 심한 부상을 당한 그는 3개월 뒤인
136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키프로스(Cyprus) 파마구스타(Famagusta)의 카르멜회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래서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는 지방도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0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승인되었고,
1628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카르멜회 안에서
1월 8일에 축일을 기념하도록 결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