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17일 항가리의 聖女엘리사벳, 聖후고님..등

H-Simon 2010. 11. 16. 17:20

 

11월17일(수)

항가리의 聖女엘리사벳, 聖후고님..등

 

 

병자를 치유하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엘리사벳(11.17)
 
성인명 엘리사벳(Elizabeth)
축일 11월 1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왕비
활동지역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1207-1231년
같은이름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구호품을 나눠주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국왕 앤드레 2세(Endre II)
왕비 제르트루다(Gertruda)의 딸로 태어난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4세 되던 해에 튀링겐(Thuringen)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의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하였다.
비록 이 결혼이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졌지만 화목하고 평화스러웠다고 하며
6년 동안을 서로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있었고
자녀는 세 명을 두었다.

   그러나 1227년에 루트비히 4세가 풀리아(Puglia)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9월 11일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온갖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집안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뒤에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세속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는 헤센(Hessen)의 마르부르크(Marburg) 성에 살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마르부르크의 콘라트(Conrad)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그녀의 영적 생활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쌌던 것이다.
그녀는 운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여왕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준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마르부르크에서 운명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14세기 이후 엘리사벳의 성화는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빵 제조업자와 빵 집의 수호성인이다.

 

 

 

 

 

    ▶그레고리오(11.17)
 
성인명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11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역사가
활동지역 투르(Tours)
활동연도 538-594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 플로렌티우스(Gregorius Florentius, 그레고리오)
프랑스 지방의 클레르몽-페랑이 고향인데, 부친이 사망한 뒤부터는
아저씨인 성 갈루스 클레르몽(Gallus Clermont)의 지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또한 그는 성 아비투스(Avitus)의 문하에서 성서를 공부하였는데,
573년에 투르의 주교로 축성되었고,
국왕을 반대하던 왕자 메로베우스를 지지하였다.
이리하여 이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주교는 정치 문제에 휘말려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투르의 대성당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회들을 재건하였고
이단자들을 개종시켰으며 그의 정의, 사랑 그리고 신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는 성인들의 전기를 비롯하여 순교자와 교부들의
전기를 서술하였는데, 특히 “프랑크인들의 역사”가 유명하다.

 

 

 

 

 

  ▶디오니시오(11.17)
 
성인명 디오니시오(Dionysius)
축일 11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265년경
같은이름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성 디오니시우스(디오니시오)는 알렉산드리아 교리 학원에서
오리게네스(Origenes)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그 자신이 원장이 되었고,
 
24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승품되었는데, 때마침 박해가 일어나서
그도 역시 체포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도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리비아 사막의 모처에서
자기 교구를 다스렸으며, 251년에 데키우스 황제가 죽을 때까지 이런 식으로
주교직을 수행하였다.

   박해가 끝나자 이번에는 박해 동안에 생긴 배교자들에 대한 처리 문제로
시끄럽게 되었을 때, 그는 회개자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편의 지지자로
활동하였다.
또 다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체포되어 추방되었다.
그는 261년에 귀향했으나, 이미 그 도시는 폭동과 페스트 그리고 기근으로
황폐하게 변해 있었다.
밖으로 나가거나 집안에 있거나 마찬가지로 위험하였다.

   이처럼 그의 17년간의 주교생활은 온갖 시련으로 가득하였지만,
교회와 사회 재건을 위하여 활발히 활동하여 큰 사람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교 문학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문학에도 정통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덕과 학문은 종종 위대한 디오니시우스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났다.

 

 

 

 

 

    ▶후고(11.17)
 
성인명 후고(Hugh)
축일 11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링컨(Lincoln)
활동연도 1140-1200년
같은이름 위고, 후꼬, 휴스

 

링컨의 성 후고(Hugo)


   아발론(Avalon)의 성주 빌리암(William)의 아들인 성 후고(Hugo)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아발론 성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에 어머니 안나(Anna)를 잃고 빌라드-브느와(Villard-Benoit)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는 19세 때에 부제로 서품을 받고 성 막심(Maxim)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1160년에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 Chartreuse) 수도원을 방문한 뒤에
그는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0년 후에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재정담당이 되었고,
1175년에는 잉글랜드(England)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의 성덕과 학덕에 대한 명성은 전 영국에 퍼졌고,
그의 영향력 또한 점점 커졌다.
이 때문에 그는 거의 18년 동안이나 공석 중이던 영국 잉글랜드 중동부
링컨 교구를 맡아 교구의 신앙을 일신하였는데,
이때 보여 준 그의 지혜와 정의는 너무나도 유명하였다.
그는 잉글랜드에 사는 유대인 박해정책을 반대하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200년 11월 17일 런던(London)에서 사망하였고,
1220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의 상징은 백조이다.
성 후고는 야생 백조 한 마리를 애완용으로 길렀는데,
그 백조가 늘 그를 따르고 임종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한 손에 성작을 들고 있고 그 성작 위에
아기 예수님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이는 성 후고가 벅든(Buckden)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일어난 기적과
관련된 것으로, 성변화 중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환시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링컨 주교좌성당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힐다(11.17)
 
성인명 힐다(Hilda)
축일 11월 1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원장
활동지역 휘트비(Whitby)
활동연도 614-680년
같은이름 힐드

 

휘트비의 성녀 힐다(Hilda)


   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국왕 성 에드윈(Edwin, 10월 12일)
조카딸인 성녀 힐다는 627년 요크(York)에서
성 바울리누스(Paulinus, 10월 10일)로부터 성 에드윈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33세까지 귀족생활을 하다가 동생인 성녀 헤레스위타(Hereswitha)가 있는 프랑스의 셸르(Chelles) 수녀원으로 갔다.
그러나 성 아이다누스(Aidanus, 8월 31일)의 요청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웨어(Wear) 강변의 한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녀는 하틀풀(Hartlepool)에 수녀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특히 지혜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휘트비 시노드에서 켈트(Celtic) 전례를 주창하였으나,
국왕 오스위(Oswy)의 명에 따라 로마 전례를 받아들일 만큼 순종할 줄
알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