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13일 聖니콜라오1세, 聖女아우구스티나님..등

H-Simon 2010. 11. 12. 17:24

 

 

11월13일(토)

聖니콜라오1세, 聖女아우구스티나님..등

 

  

 

교황 성 니콜라오 1세(Nichola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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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오 1세(11.13)
 
성인명 니콜라오 1세(Nicholas I)
축일 11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황
활동지역
활동연도 +867년
같은이름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교황 성 니콜라오 1세(Nicholas I)


   로마(Roma)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 니콜라우스(Nicolaus, 니콜라오)
로마의 사제로서 교황 세르기우스 2세(Sergius II)를 도와 성청에서 일하였고, 레오 4세(Leo IV)의 부제,
베네딕투스 3세(Benedictus III)의 고문관을 역임하였다.

   그는 858년 4월 22일 선임 교황 베네딕투스를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그는 즉시 늘 문제시되어 왔던 결혼의 거룩함과 불가해소성을 역설하였고,
황제의 조카인 로테르 2세 국왕의 혼인이 불법이라 규탄하는 등
수많은 정치 문제에 말려들게 되었다.
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좌의 오랜 분쟁,
라벤나(Ravenna)의 요한 대주교의 문제, 랭스(Reims)의 힌크마르의 야심 등으로
그의 재임기간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관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므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정의감은 높은 존경을 받게 하였다.
성 니콜라우스는 ‘대’ 교황이란 칭호를 받는 3명의 교황 중 한 분이다.
 
 
 
 
 
 
 
    ▶막셀렌다(11.13)
 
성인명 막셀렌다(Maxellendis)
축일 11월 13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코드리(Caudry)
활동연도 +670년경
같은이름 막셀렌디스, 막쎌렌다

 

코드리의 성녀 막셀렌다(Maxellendis)


   성녀 막셀렌다는 프랑스 북부 캉브레(Cambrai) 근교 코드리의
귀족인 우몰린(Humolin)가의 딸로 태어났으므로 부친은 좋은 집안과
결혼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녀 막셀렌다는 결혼을 끝내 마다하였다.
 
이때 그의 부친은 결혼을 해도 하느님을 잘 섬길 수 있고, 또 그렇게 성공한
부부도 많음을 역설하자 그녀는 다음날 오전까지 결정짓겠다고 말하였다.
그 다음날 그녀는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배우자도 원치 않는다고
최후의 결심을 밝혔다.

   그녀는 결혼식 준비를 서두르는 집을 몰래 빠져나와서
카토캄 브레시스 교외의 어느 수녀원에 피신하였으나,
곧 부모에게 잡혀간 뒤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또 몰래 도망치다가 부친이 보낸 사람들의
칼에 맞아 운명하였다.
 
그녀는 인근 성당에 안장되었으나 후에 캉브레의 주교인 성 빈디키아누스(Vindicianus, 3월 11일)가 코드리 성당으로 성대히 이장하여 공경하였다.
그 후 그의 부친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여
개과천선하였다.
 
 
 
 
 
     ▶아우구스티나(11.13)
 
성인명 아우구스티나(Augustina)
축일 11월 13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864-1913년
같은이름 아고스띠나, 아고스티나, 아우구스띠나

 

성녀 아우구스티나(Augustina)


   성녀 아우구스티나는 1864년 3월 27일 이탈리아 리에티(Rieti)
포차글리아 사비나(Pozzaglia Sabina)에서
리비아 피에트란토니(Livia Pietrantoni)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886년 로마(Roma)의 바티칸 근교 성령 병원의 간호사가 된 그녀는
다음 해에 병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애덕 수녀회에 입회하여
아우구스티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위독한 환자나 전염성이 강한 발진티푸스나 말라리아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결핵에 걸린 그녀는 결핵 병동에서 일하다가 그녀를 성폭행하려는
한 환자의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성녀 아우구스티나는 1913년 11월 13일 자신을 살해한 이를 용서하면서
선종하였다.
 
아고스티나(Agostina)로도 불리는 그녀는 1999년 4월 1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호모보노(11.13)
 
성인명 호모보노(Homobonus)
축일 11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평신도, 자선가
활동지역 크레모나(Cremona)
활동연도 +1197년
같은이름 호모보누스, 호모보니오, 호모보니우스

 

크레모나의 성 호모보노(Homobonus)


   성 호모보누스(호모보노)는 세례를 받을 때부터 ‘호모보누스’,
즉 ‘착한 사람’이란 예언적인 이름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의 크레모나에서
어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성공적으로 부친의 사업을 이끌어
더욱 번창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업에서 버는 이익 대부분을 빈민구제에 사용하고,
가족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만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은 가족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받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당에 나갔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았다.
이 때문에 그의 사업은 더욱 번창하였고,
 따라서 그의 자선사업이 날로 빛을 발하게 되어 유명해졌다.

   그는 1197년 11월 13일 크레모나의 성 에지디우스(Aegidius, Giles) 성당에서
미사 참례하던 중에 운명하였고, 1199년 1월 12일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양복공과 천 짜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