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6일 聖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님..등

H-Simon 2010. 11. 5. 19:06

 

 

11월6일(토)

聖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님..등

 

 

포르투갈의 성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Nuno Alvares Per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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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11.6)
 
성인명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Nuno Alvares Pereira)
축일 11월 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활동지역 포르투갈(Portugal)
활동연도 1360-1431년
같은이름 노니오, 노니우스, 누뇨

 

포르투갈의 성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Nuno Alvares Pereira)


   성 노니우스 알바레스 페레이라(Nonius Alvares Pereira)로도 불리는
성 누노 알바레스 페레이라(Nuno Alvares Pereira)
포르투갈 중앙 세르타(Serta) 인근
체르나케 도 봄자르딘(Cernache do Bomjardin)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에 부친의 뜻에 따라 부유한 젊은 미망인인
돈나 레오노르 데 알빔(Donna Leonor de Alvim)과 결혼하였고,
1383년에는 포르투갈군의 지휘자가 되었다.
불과 23세의 나이로 아비스(Aviz) 기사들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들은 에스파냐의 통치를 벗어나기 위하여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포르투갈을 건설하였다.

  1422년 아내가 죽은 뒤에 그는 리스본(Lisbon)에 있는 카르멜회에 입회하여
성모 마리아(Maria)의 누뇨(Nuno)라는 이름의 평수사로 살다가
1431년 4월 1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그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수도원에서 기도와 참회 그리고 동정 마리아께 대한 헌신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를 일컬어 ‘대원수’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포르투갈의 국가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18년 교황 베네딕투스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승인되었고, 2009년 4월 26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레오나르도(11.6)
 
성인명 레오나르도(Leonard)
축일 11월 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수도원장
활동지역 노블락(Noblac)
활동연도 +559년
같은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노블락의 성 레오나르도(Leonardus)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레오나르도)는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가 기록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그는 프랑크 귀족으로서 성 레미기우스(Remigius, 10월 1일)에 의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는데, 국왕 클로비스 1세가 대부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오를레앙(Orleans)으로 가서 그곳의 미시(Micy) 수도원에서
얼마를 지내다가 리모주(Limoges)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을 손수 짓고 채소와 과일로 연명하면서
하느님만 관조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비스 국왕이 사냥을 왔다가 왕비가 죽을 곤경에 빠졌을 때, 그의 기도로 왕비의 목숨을 건지자 왕은 감사의 표시로 많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그는 이곳에다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곳이 노블락 수도원이다.
이때부터 그는 인근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를라암(11.6)
 
성인명 바를라암(Barlaam)
축일 11월 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쿠틴(Khutyn)
활동연도 +1193년
같은이름  
 

   성 바를라암은 노브고로드의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알렉시우스(Alexius)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부모들이 운명하자 그는 모든 유산들을 팔아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볼가 강변의 쿠틴이라 부르는 한적한 곳에서 혼자 살았다. 

  그의 덕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두루 퍼지고 주위에 동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그는 하는 수 없이 수도원 공동체를 만들고 원장이 되었다.
이때 그의 이름을 바를라암이라 하였다.
그는 목조 성당을 돌로 다시 짓고, 형성용의 주님께 성당을 봉헌하였으며,
순례자들과 다른 방문객들이 새 수도원을 순례하고
또 그들의 은인이 되어 주었다.
그의 성덕을 증명하는 기적이 그의 장례식 때 일어났다고 하며,
그의 유해는 1452년에 경건한 예식으로 다시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