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9월3일 聖그레고리오 교황학자님..등

H-Simon 2010. 9. 2. 16:14

 

 
9월3일(금)

          聖그레고리오 교황학자님..등

     

 

성 예로니모, 성 그레고리오, 성모자,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16.jpg

                                                    

 
 
 
 

 

    ▶그레고리오 1세(대)(9.3)
 
성인명 그레고리오 1세(대)(Gregory I the Great)
축일 9월 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황, 교회학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540?-604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교황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I)와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부유한 귀족 고르디아누스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고,
랑고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략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을 당시에는
로마의 장관이었다.
 
 
수도생활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기 때문에 그는
574년경에 로마와 시칠리아에 수도원을 세우고 35세경에 수도자가 되었다.
579년부터 585년까지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활약하다가,
5년 후에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온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수도자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시켰으며,
막대한 경비를 들여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기근의 희생자들을 구호하였다.
 
 
593년 그는 랑고바르드족 침략군을 설득하여 로마를 평정시켰으므로
랑고바르드족의 왕과 함께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위대한 주교이자 정치인이었다.

   또한 그의 학덕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레굴라 파스토랄리스’(Regula Pastoralis, 주교의 직책과 의무),
‘모랄리아’‘대화집’을 비롯하여 800여 통의 서한들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공식 예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잉글랜드의 개종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고,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였으며,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한 설교가였고,
로마 전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
그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는다.
 
 
또한 베네딕토 수도회를 면속시켜 교황의 권위 하에 두었다.
그는 라틴 교부의 일원으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서거 즉시 시성되었다.

 

 

 
 
 
  ▶괄라(9.3)
 
성인명 괄라(Guala)
축일 9월 3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주교
활동지역 브레시아(Brescia)
활동연도 +1244년
같은이름 꽐라

 


   성 도미니코가 베르가모에서 첫 입회자로 맞아들인 사람들 가운데
괄라 로마노니가 있었다.
그는 이때 이미 40세였고, 인품이 비범하므로 성 도미니코는 그를 볼로냐로 데려가 교육을 시키고, 나중에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한 번은 성 도미니코가 중병으로 앓고 있을 때,
그는 스승이 꼭 살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에 잠이 들었다.
이때 꿈속에서 그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사다리 두 개를 보았는데,
그 하나의 꼭대기에는 주님과 성모님이 계시고
천사들은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가끔 환시를 보았다.
 
 
그는 세속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고 또 뛰어나게 지혜로웠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수도자이자 달변의 설교가였다.
이 때문에 그는 교황과 황제 간의 알력이 있었을 때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되어 2년 동안 활동한 결과,
성공적으로 두 세력을 화해시켰던 것이다.
교황 비오 9세는 1868년 그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마카니시오(9.3)
 
성인명 마카니시오(Macanisius)
축일 9월 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아일랜드(Ireland)
활동연도 +514년
같은이름 마까니씨오, 마까니씨우스, 마카니시우스
 

   성 마카니시우스는 성 파트리키우스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성지 순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로마를 방문한 후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귀향하자마자 그는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코너교구로 발전하여 자신이 초대 주교가 되었다. 
 
   한번은 성 파트리키우스와 성녀 브리지다와 더불어
먼스터를 여행하던 중에 그가 오팔리의 리날리에서 천사들의 환시를 보자, 파트리키우스는 이곳에 수도원 짓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말리면서 그 일은 60년 후에 어느 주교가 할 일이라고.......
 
 
특히 그는 성경책에 대한 존경심이 지극하여 소중히 모셨고,
여행 중에는 꼭 가방 속에 가장 소중한 귀중품으로 모셨다.

 
 
 
 
 
 
 ▶시메온(9.3)
 
성인명 시메온(Simeon)
축일 9월 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주행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517-592년
같은이름 시므온

 

성 시메온(Simeon) 주행자


   안티오키아출신의 주행자인 성 시메온은 다섯 살 때에 부친을 잃었고,
일곱 살 때부터 성 요한 주행자로 널리 알려진 분의 지도아래
주행자가 되어 68년 동안 기둥 위에서 살았다.
 
 
20세쯤 되었을 때부터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고,
또 군중이 수없이 몰려들므로 안티오키아와
가까운 산위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점으로 숨어들었다.
 
 
30세 때에 그는 어떤 환시를 보고 이에 따라 수도원을 세웠으며,
33세 때에는 그의 기둥 위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거대한 군중이 연일 몰려드는 이유는
그의 성덕과 영적 지혜 그리고 예언과 기적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전혀 먹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고 지낸 것으로
유명하였다.
 
**주행자(柱行者;높은 기둥 위에서 고행하는 수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