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8월15일 聖母승천 대축일, 聖스타니슬라오님..등

H-Simon 2010. 8. 14. 17:32

 

 
8월15일(일)
聖母승천 대축일, 聖스타니슬라오님..등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16.jpg

 

          

 
 
 
 
 
  ▶마리아(8.15)
 
성인명 마리아(Mary)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예수의 어머니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복되신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로 공경 받으시고
신도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48-49) 하신
마리아의 예언대로 특히 에페수스 공의회 이후로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이 같은 마리아 공경이 비록 온전히
독특한 것이긴 하나,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부께서 성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골로 1,15-16),
성자 안에 모든 충만함이 머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골로 1,19;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66). 

   성모 마리아에 관한 축일은 다음과 같다.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선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12월 8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8월 22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1월 21일,
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9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 31일,
루르드(Lourdes)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7월 16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0월 7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5일.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8.15)
 
성인명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Stanislaus Kostka)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비가
활동지역 폴란드(Poland)
활동연도 1550-1568년
같은이름 스따니쓸라우스, 스타니슬라우스, 쓰따니쓸라오, 코스트가

 


   폴란드 로스트코보 성에서 태어난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트카는
폴란드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었다.
그는 개인교수로부터 교육을 받고 14세 때에 비엔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근면과 신심 그리고 고행으로 유명하였고
또 수 차례에 걸쳐 환시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예수회 회원이 되고자 했으나 비엔의 관구장은
너무 어린 나이 등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러자 그는 집을 몰래 빠져나와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
당시 독일의 예수회 총장인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12월 21일)가 있는
딜링엔까지 350마일을 걸어가 입회를 청하였다.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는 그가 비록 17세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착실하고
열성적인 모습에 반해 입회를 허락하고 로마의 수련소로 보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1567년에 예수회에 입회한 그는
더욱 엄격한 고행을 하였고, 미사 중에 자주 탈혼하였으며,
거룩한 삶을 살다가 예수회 수련자로서 단지 9개월을 지낸 뒤 사망하였다.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서
교황 베네딕투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알리피오(8.15)
 
성인명 알리피오(Alypius)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타가스테(Tagaste)
활동연도 360-430년
같은이름 알리삐오, 알리삐우스, 알리피우스

타가스테의 성 알리피오(Alypius)


   북아프리카 타가스테(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 태생인 성 알리피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8월 28일)의 절친한 친구였다.
카르타고에서 그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그의 부친이 아우구스티누스와
상종하지 말라고 금지할 때까지 그와 함께 마니교도가 되었다.
 
성 알리피우스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가서 판사가 되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직책에서 은퇴하고
함께 밀라노로 갔다.
그곳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지도로 교리를 받고 387년 4월 13일
부활성야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는 카시치아쿰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있다가
388년에 그와 함께 아프리카로 돌아 왔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운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3년 동안 타가스테에서 기도와 보속의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들은 히포로 가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팔레스티나를 순례한 후 성 알리피우스는 393년에 타가스테의 주교가 되어
30년 동안 봉사하였다.
그 이후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해 여생을 보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카시치아쿰에서 쓴 “대화”란 책 속에 잘 묘사되어 있으며,
158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에 의해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
 
 
 
 
    ▶타르시치오(8.15)  
 
성인명 타르시치오(Tarsicius)
축일 8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복사,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3세기경
같은이름 타르시치우스, 타르시키오, 타르시키우스, 타르치시오, 타르치시우스, 타르키시오, 타르키시우스

 


   성 타르시키우스의 행적에 대한 것은 교황 성 다마수스 1세(12월 11일)
그에게 바친 "성체를 위한 소년 순교자"라는 헌시에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복사의 수호성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소년다운 용기와 신앙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전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그가 살던 3세기 말경에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
한번은 미사가 끝난 후 신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감옥까지 성체를 모시고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가는 도중에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어린 성 타르시키우스가 나서서 그 일을 자청하였다.
너무 어린 것을 걱정하는 신부에게 그는 자신이 어리기 때문에 경비병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신부도 이 말에 동의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체를 모시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감옥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성 타르시키우스에게 같이 놀자고 했지만 그는 급한 일이 있다며
거절하고 서둘러 가려 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의 손에 있는 성체를 발견하고 빼앗으려 하자,
이를 거부하는 성 타르시키우스와 친구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친구들이 돌로 그를 쳤다.
이때 지나가던 군인이 다가오자 친구들은 도망갔고,
그는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주교에게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여
주교에게 성체를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며
숨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추기경 와이즈먼의 소설
 "파비올라 혹은 카타콤바의 교회"(Fabiola or the Church of the Catacomb, 1854)
소재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성 타르시키우스는 복사와 첫영성체하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