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

4지역 성지순례 - 2008년 4월 27일(일요일)

H-Simon 2008. 4. 27. 05:41

 

 

성지순례

 

  

 

 
  1. 사목권을 가진 교구장 주교가 신자들의 영신적 이익을 위하여 정식으로 공문이나 혹은 교구장이
    주례하는 성사 거행으로써 어떤 장소를 성지로 공식 선언할 때 그 장소는 성지이다.

  2. 신자들이자발적으로 순례하며 기도하는 장소를 교구장이 인정하여 성지로 공식적으로 선포할 경우 그 곳은 성지이다. 또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순례하며 기도하는 장소를 교구장이 성지로 받아 들이고, 그 곳에서 많은 신자들과 함께 미사봉헌이나 전례를 관례적으로 계속 거행할 때 이를 성지라고 할 수 있다

  3. 교회의 역사적인 의미가 분명히 있다. 하더라도 교회 소유의 토지나 교회 성물 혹은 기념물이 전혀 없고 따라서, 교구장 주교의 전례거행이 관례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장소는 사적지일 수는 있어도 교회 성지는 아니다. 왜나하면 전례거행이나 미사를 봉헌할 수 없고 순례행위가 이루어 질 수 없는 장소를 성지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지라는 개념은 사목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고,
    역사학적인 의미 부여와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둔토리, 범골 같은 경우 아직 성지로 부를 수는
    없다. 왜나하면 교구장이 이를 활용하여 교회의 공식적인 에절 거행이나 순례행위 등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장소는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표지석 정도는 세우는 것이 좋겠다. 그러므로 수원교구의 성지는 다음과 같다.

    천진암, 남양성모, 단내, 미리내, 죽산, 구산, 남한산성, 손골, 수리산, 은이*골배마실, 어농, 양근, 수원

 
2003년 11월 14일
교구 성지위원회

 

 

      교구의 성지  -   http://www.casuwon.or.kr/holyland/img/holymain.swf

 

 

                   

 


 
성지 순례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 즉, 성지(Terra sancta, 聖地 :예수님께서 태어나 생활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땅인 팔레스티나)와 성모님이나 성인들의 유적지나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을 방문하여 경배를 드리는 신심행위다.

 

 

 

당신은 어느길로?

 

 

 

 

 

 

   4지역 성지순례2008년 4월 27일(일요일)

  

 

 

 

 

4지역

4지역장

배미애(아가다)

384-4126

무궁화마을
(금호,진흥,신촌동,
경남,한양)

40구역~45구역
지역총무
최재환(스테파노)
385-1329
지역총무
공미희(크리스티나)
342-4159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446번지
전화번호 사무실 : 031-749-8522~3      팩   스 : 749-8524
미사안내 미사시간 : 화~토 오전 11시 / 주일 오후 2시
이메일 namhan-hl@casuwon.or.kr
성지 홈페이지 http://www.nhss.or.kr

 

먼저 둘러 보세요.   http://www.casuwon.or.kr/holyland/img/holyphoto4.swf

 

 

 

 

 

 

 

 


 

 

 

 

 

 

 

 

 

 

 

 

                        모든 사람은 고통 받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의 살아 있는 지체라면,

                                      그의 고통과 죽음은

            가장 위대한 분의 전지전능함에 의하여 구원의 힘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그분의 삶 전부를 같이 나눠야 합니다

그는 적어도 한 번은,

게쎄마니와 골고타를 향해서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예수 그리스도)을 형상으로 숭배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형상은 나무나 돌의 형상보다 더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에 따라 영혼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혼이 그리스도의 삶을 나누고 싶다면,

영혼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처럼 고행과 희생의 삶으로 자신의 천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느님이 좌우하시고 영혼에게 허락하시는 방식으로

고통과 죽음 속에서 십자가형에 자신을 내맡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각 개인에게 당신을 닮도록 요구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분의 형상에 따라

스스로 자신을 만들도록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거기에 사랑이 가득한 헌신이 합쳐지는 살아 있는 신앙은

-우리에게 있어서 삶에의 진입이며 미래의 찬란함의 시작입니다.

 

 

외부에서 오는 모든 고통은 하느님의 빛이 더 이상 비추지 않고 주님의 목소리가

더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을실 때의 영혼의 어둔 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인(聖人)도 역시 내적 메마름의 순간들을 알고 있는데,

그동안에는 영성의 사막에서 끈기 있게 참아야 합니다.

성인은 이런 순간들을 정말 잘 아는데,

그것은 그가,  은총의 빛이 그에게 쏟아져 내리고 성령의 불이

그를 타오르게 하는 순간들과 메마름의 순간들을 구별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의 삶이 끝나고 소멸되는 모든 것이 사라질 때면,

각 영혼은 '그 영혼이 알려져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서 그 영혼이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게 됩니다.

 


즉 하느님이 그 영혼을 창조하신 그대로,  또 그것을 위해 창조하신 영혼으로,

특히 오로지 그 영혼으로만 자신을 알게 됩니다.


 

 

또한 영혼은, 자연과 은총의 차원에서 자신이 무엇이 되었는지를 압니다.

그리고 영혼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서 무엇이 본질적으로 그의 것이 되었는지를 압니다.

 

 

우리들은, 각자가 영광 속에서 그 존재가 완성되면,

그에게 주어졌지만 발전되지 못했던 모든 가능성들이

또한 꽃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원히 하느님 앞으로 받아들여졌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말로 표현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삶 전체를 포괄하는 인간의 지성은 마지막 일들을 목전에 두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고찰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인간 존재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가장 진정한 가능성들을 실현시키고,

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때때로 부합되는 그 순간의 요구들을

실현시킨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눈앞에서 단 한 번도 영원을 보지 못한 채,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이 문제가 되지도 못한 채로 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사실의 상태가 능력 밖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 결정적인 시간이

저 세상의 어떤 곳에서 오지 않는가의 여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에게 그것이 정말 그렇다고 말해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는 제한이 없다고 믿으면,

그것이 만인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증명해줍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은총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으로 인하여 영원한 천벌도 가능한 것으로 남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자유에 의하여 규제를 받을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습니다.

 

 

 

 

 

국화차 한 잔 드시지요!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의 영혼 위로 내려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자유롭게 부여되는 것이며,

그것의 확장에는 아무런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사슬과 가면들이 떨어져 나가는 영원의 평화는 모든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