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5월10일 아빌라의 聖요한, 聖욥 님..등

H-Simon 2010. 5. 9. 22:56

 

5월10일(월)
아빌라의 聖요한, 聖욥 ..등

 

 
 
아빌라의 성 요한(Joannes)
16.jpg
 

 

 

<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가탈도 Cataldus 5월 10일 주교 타란토(Taranto) +685년
2 고르디아노 Gordian 5월 10일 순교자   +362년경
3 디오스코리데 Dioscorides 5월 10일 순교자 스미르나(Smyrna) +연대미상
4 복녀 베아트릭스 **  Beatrice 5월 10일 동정녀 에스테(Este) +1226년
5 성녀 블란다 Blanda 5월 10일 순교자 로마(Roma) +232년?
6 성녀 솔란지아 Solangia 5월 10일 동정 순교자 부르주(Bourges) +880년
7 심플리치오 Simplicius 5월 10일 원로원 의원,순교자 로마(Roma) +232년?
8 아우렐리아노 Aurelian 5월 10일 주교 리모주(Limoges) +1/3세기
9 안토니노 Antoninus 5월 10일 대주교 피렌체(Firenze) 1389-1459년
10 알피오 Alphius 5월 10일 순교자 렌티니(Lentini) +251년
11 에피마코 Epimachus 5월 10일 순교자   +250년경
12 요한 **  John 5월 10일 신부,영적 지도자 아빌라(Avila) 1499-1569년
13 **  Job 5월 10일 구약인물,예언자   +연대미상
14 윌리엄 William 5월 10일 은수자 퐁투아즈(Pontoise) +1192년
15 치리노  Cyrinus 5월 10일 순교자 렌티니(Lentini) +251년
16 칼레포디오 Calepodius 5월 10일 신부,순교자 로마(Roma) +232년?
17 콘레트 Conleth 5월 10일 주교 킬데어(Kildare) +519년경
18 콤갈 Comgall 5월 10일 수도원장 뱅거(Bangor) +601년경
19 콰르토 Quartus 5월 10일 순교자   +연대미상
20 퀸토 Quintus 5월 10일 순교자   +연대미상
21 팔마시오 Palmatius 5월 10일 집정관,순교자 로마(Roma) +232년?
22 펠릭스 Felix 5월 10일 순교자 로마(Roma) +232년?
23 필라델포   Philadelphus 5월 10일 순교자 렌티니(Lentini) +251년

총 23 성인

 

 

요한(5.10)
 
 
성인명 요한(John)
축일 5월 1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영적 지도자
활동지역 아빌라(Avila)
활동연도 1499-1569년
같은이름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후안

 


   에스파냐 알모도바르 델 캄포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요한은 14세 때에 법률 공부를 위하여 살라망카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부 대신에 오히려 수도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은수생활을 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3년 후에 그는 알칼라로 가서 도미니코 데 소토의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이때 베드로 게레로를 만나 사제로 서품되었다.

양친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고 운명하였으나,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후 그는 뛰어난 설교가로 이름을 떨쳤고,

안달루시아 지방의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는 겁 없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 등을 꼬집는

설교를 하다가 미움을 받았는데,

결국은 이런 일 때문에 투옥되었다.

 

그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석방되었고

그의 명성은 높아만 갔다.

그는 에스파냐 전역을 순회하는 설교를 계속하는 한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

성 프란치스코 보르자(Franciscus Borgia, 10월 10일)

그리고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의

영적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그는 1569년 5월 10일 에스파냐의 몬티야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894년 4월 6일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욥(5.10)
 
 
성인명 욥(Job)
축일 5월 1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성 욥은 구약성서의 시서(詩書)에 속하는 욥기의 저자로 흔히 불린다.


욥기의 목적은 불의한 고통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것이나,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한 하느님께

대하여 자리 매김하려는 시도에 대한 것이다.


욥기는 크게 산문과 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 부분의 바탕을 이루는 본래의 욥 이야기는 이미 기원전

2천년대 말기부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일종의 민간

설화로 두루 퍼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이 기원전 1천 년 이후에 이스라엘에도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에제 14,14 참조).

바빌론 유배 이후, 곧 6세기 말엽 이후, 그리고 3세기 전반

이전에(집회 49,9 참조) 팔레스티나에 살던 어떤 유대인 저자가,

성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욥 이야기를 자기의 의도에 맞게

각색하고 윤색하여 거기에 독창적인 운문 부분을 지어 붙였다.

그러나 이 문문 부분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저자가 대화 부분의 욥을 통해서 토로하는 말은,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직접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욥기는 욥이라는 특수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보편성이 이 책의 큰 특징을 이룬다.

욥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선택, 시나이 산 계약,

메시아 사상 등 선택된 민족의 특유한 사항이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아울러 유배 이후에 저술 되었음에도,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성서에서 일대 전환점을 이루는

“예루살렘 함락 - 성전파괴 - 유배”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암시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공통 현상을 바탕으로 자기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욥기는 출발점에서부터 보편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주인공 욥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그의 거주지도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욥’이라는 이름 자체도 당시 여러 나라에서 쓰이던

이름이라고 생각된다(1,1).

욥의 세 친구 역시 모두 외국 이름을 가진 이방인이다(2,11).

욥은 또한 대화를 시작하는 독백에서부터 이미 자기의

고통을 일반화한다.

고통에 처한 자신을 ‘고생하는 이들, 영혼이 쓰라린 이들’과

동일시하면서 그들을 대변하여 하느님에게 질문을 던진다(3,20-21).

물론 대화 중에 욥은 주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도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다른 이들과의 연대성 안에서 펼쳐 간다.

욥기의 저자는 자기의 직접적인 체험을 토대로 처음부터

보편성을 염두에 두면서 자기의 생각을 일반적으로 전개시킨다.


  성 욥에 대한 전례적인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인정되었지만,

단순하고 곧으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는 욥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모범이 된다.

 

 

 ▶베아트릭스(5.10)  
 
 
성인명 베아트릭스(Beatrice)
축일 5월 10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에스테(Este)
활동연도 +1226년
같은이름 베아뜨리체, 베아뜨릭스, 베아트리체

 


   베아트릭스(베아트리체)는 이탈리아 에스테의 왕실 가문에서 태어났다.

페라라(Ferrara)의 복녀 베아트릭스(1월 18일)의 아주머니인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였다.

그녀가 아직 아기였을 때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6살 때에는

아버지인 마르케제 아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보호자이던 큰 오빠마저 독살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10살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부터 그녀는 지극히 단순한 옷들만 입고

소녀들이 흔히 하는 온갖 장신구들을 모두 거부하였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그녀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유일한 혈육인 오빠 몰래 집을 빠져 나와서

파도바 부근 솔라롤로에 있는 산타 마르게리타 베네딕토회

수녀원으로 가서 수녀가 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1년 반 후 그녀는 보다 한적한 곳을 찾아 다른 열 명의 자매들과

함께 젬몰라로 갔다.

그곳은 아주 조용하여 기도생활에 더욱 보탬이 되는

한적한 은둔소였다.

베아트릭스는 그곳에서 불과 2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63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