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2월25일-福者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노님..등

H-Simon 2010. 2. 24. 20:48

 

 
2월25일(목) 
福者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노님..등
                               

  

 

 

  

 

         복자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Sebastianus Aparicio)

 

 

 

 

16.jpg 

                          
 

 

 

 

 <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니체포로 Nicephorus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2 도나토 Donatus 2월 25일 순교자   +3세기
3 디오스코로 Dioscorus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4 성녀 발부르가 Walburga 2월 25일 수녀원장 하이덴하임(Heidenheim) +779년경
5 빅토르 ** Victor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6 복자 빅토르 Victor 2월 25일 증거자 장크트갈렌(Sankt Gallen) +995년
7 빅토리노 ☞5 Victorinus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8 세라피온 ☞5 Serapion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9 복자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

Sebastian Aparicio 2월 25일 3회원   +1600년
10 아베르타노** Avertanus 2월 25일 수사 리모주(Limoges) +1380년
11 성녀 알데트루다 Aldetrudis 2월 25일 수녀원장 모뵈주(Maubeuge) +696년
12 유스토 Justus 2월 25일 순교자   +3세기
13 성녀 이사벨라 Isabella 2월 25일 동정녀 프랑스(France) +1270년
14 제를란도 Gerland 2월 25일 주교 지르젠티(Girgenti) +1104년
15 체사리오 Caesarius 2월 25일 증거자 나지안주스(Nazianzus) 329-369년
16 복자 콘스탄티오 ** Constantius 2월 25일 수사 파브리아노(Fabriano) +1481년
17 클라우디아노☞5 Claudian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18 타라시오 Tarasius 2월 25일 주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806년
19 파피아스☞5 Papias 2월 25일 순교자 코린토스(Corinthos) +284년
20 성녀 헤레나 Herena 2월 25일 순교자   +3세기
총 20 성인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2.25)
 
성인명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Sebastian Aparicio)
축일 2월 25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3회원
활동지역  
활동연도 +1600년
같은이름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마리아노 마엘라의 복자 세바스티아노 아파리치오(Sebastianus Aparicio)의 환시


   세바스티아누스는 아파리치오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에서

가난한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양치는 일을 해왔다.

15세 때에 그는 살라망카의 어느 과부 집의 종으로 들어갔는데,

그 부인의 유혹이 심하여 즉시 나왔다.

그 후 그는 산 루카스에서 농부의 일을 거들었는데, 항상 기도와

묵상에 열중하며 8년 동안 일한 결과 여동생의 결혼 지참금을 넉넉히

벌게 되자 고향으로 왔다가 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는 멕시코의 푸에블라(Puebla)에 정착하여 농사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장사, 건축 등으로 성공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돈을 자기만의 소유로 생각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권위는 에스파냐 사람은 물론 인디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는 부유한 가운데서도 극도의 엄격과 절제를 실행했고, 매트 위에서

잠잤으며,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으로 만족하였다.

1552년 그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전원생활을 즐겼는데,

20년 동안이나 땅을 개간하고 소를 키웠다.

 

60세 때에 그는 어느 가난한 처녀와 결혼하였으나 부인이 곧

운명하였고 다시 재혼하였으나 그 생활도 오래 가지 않았다.

   70세가량 되었을 때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곧 있을 것으로 믿고,

모든 재산을 클라라회에 기증한 뒤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멕시코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서 수련자로 지냈고,

푸에블라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문전걸식을 하며 지냈다.

그는 동물을 극히 사랑하고 친하게 지낸 것은 유명하다. 그는 90세의 나이에

선종하였다.

그는 1787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빅토르(2.25)  

 
성인명 빅토르(Victor)
축일 2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코린토스(Corinthos)
활동연도 +284년
같은이름 빅또르, 빅똘, 빅톨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빅토르,

성 니케포루스(Nicephorus),

성 클라우디아누스(Claudianus),

성 디오스코루스(Dioscoru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파피아스(Papias) 등은 모두 코린토스 시민들로서 데키우스 황제

재임 초기에 테르티우스(Tertius)라는 집정관 앞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수없이 고문을 당한 뒤 이집트로 끌려갔다.

형리들은 성 빅토리누스를 큰 시멘트 배합 통 속으로 던지고서

“거기서 나와 보라”고 하였다.

이때 그는 “구원과 행복이 기다리는 곳으로…” 하고 외친 후 순교하였다.

 

☞  7, 8, 17, 19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아베르타노(2.25)
 
성인명 아베르타노(Avertanus)
축일 2월 2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활동지역 리모주(Limoges)
활동연도 +1380년
같은이름 아베르따노, 아베르따누스, 아베르타누스

 


   프랑스의 리모주 태생인 성 아베르타누스(또는 아베르타노)는

겨우 말할 수 있을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행동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주 기도하고 관상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천사의 환시를 보고 카르멜회에 입회하려고

마음을 먹고 부모를 설득하였다.

 

마침내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동의를 받은 뒤 카르멜회에 지원하였다.

수도원장은 그를 환영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가 서원할 때에는 천사들의 노래와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성모님께서 친히 이 평수사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수도원의 온갖 잡일을 하였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밤에는 수도원 언덕 위의 바위에 기어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한 번은 그가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동료인 로메우스(Romaeus, 3월 4일)

수사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이 겨울 알프스 산을 넘어 이탈리아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루카(Lucca) 성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만 성 아베르타누스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성 아베르타누스는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환시를 보며

웃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고, 로메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8일 동안 무작정 길을 가다가 운명하였다.

 

 

 

 

  콘스탄티오(2.25)
 
성인명 콘스탄티오(Constantius)
축일 2월 25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사
활동지역 파브리아노(Fabriano)
활동연도 +1481년
같은이름 콘스탄씨오, 콘스탄씨우스, 콘스탄티우스

 


   이탈리아 안코나의 파브리아노에서 태어난 콘스탄티우스

어릴 때 아주 비범한 일면을 보였다.

그의 부모들은 이 아이가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의 여동생이 의사들조차 고칠 수 없다고 판정한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졸라서 동생 옆에 앉아

기쁘고도 즐거운 듯 기도하기 시작하자 곧 치유되었다.

   15세 때 그는 산타 루치아의 성 도미니코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복을 받았다.

그 후 그는 피렌체의 산마르코 개혁 운동에 동참하여 활약하였으며,

그가 예언하는 은혜와 이면을 보는 눈을 특은으로 받았음이

 공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 자신도 기적을 행하는 어떤 힘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을 때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고

물은 일이 있었는데,

이때 그는 “나의 행위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지를 알 수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아스콜리(Ascoli) 수도원을 재건하였고, 그곳에서 살다가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11년(또는 1821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