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사촌으로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성 시몬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마르 6,3; 마태 13,55)
명단에서 등장한 시몬인 듯하다.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는 그의 “교회사”에서 성 시몬이 “주님의 삼촌인
클레오파(Cleopha)의 아들”이었으며,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가 노년에 순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로마 순교록”에서는 “주교이자 순교자로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성 시몬은 클레오파의 아들이며, 구세주와 육적으로 가까운 사이로 전해진다.
그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다음에 예루살렘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트라야누스의 박해 때 많은 고문을 받고 120세의 나이로 용감하고 당당하게
십자가 형벌을 견디어내는 것을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과 재판관 자신까지
놀라워하는 가운데 순교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에 기초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들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이모, 클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요한 19,25)는
성 시몬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 시몬은 예수님의 외사촌 형제였을 것이다.
성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된 것은 성 야고보(Jacobus, 5월 3일)가 순교한
62년으로 여겨진다.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중요 위치와 역할을 상실하였다.
또 야고보가 순교한 이후 예루살렘에는 반로마 메시아니즘이 등장하였다.
유대 민족주의를 거부한 대부분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요르단 강 서안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결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성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활동한 기간은 많은 박해와
어려움들로 얼룩진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