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월2일(토) 聖바실리오, 聖그레고리오主敎학자님..등

H-Simon 2010. 1. 1. 16:06

 

 
1월2일(토) 
     聖바실리오, 聖그레고리오主敎학자님..등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부팔로**
Gaspar del Bufalo 1월 2일 신부,설립자   1786-1837년
2 그레고리오** Gregory 1월 2일 주교,교회학자,교부 나지안주스(Nazianzus) 329/330-389/390년
3 나르치소 Narcissus 1월 2일 순교자   +320년
4 마르첼리노 Marcellinus 1월 2일 소년,순교자   +320년
5 마르티니아노 Martinian 1월 2일 주교 밀라노(Milano) +435년
6 마카리오** Macarius 1월 2일 신부,수도원장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394년
7 문킨 Munchin 1월 2일 수도원장,주교 아일랜드(Ireland) +7세기경
8 바실리오(대)** Basil the Great 1월 2일 주교,교회학자,교부   329-379년
9 복자 벤티보글리오 Bentivoglio 1월 2일 수사 보니스(Bonis) +1232년
10 빈첸시아노 Vincentian 1월 2일 은수자   +672년?
11 세라핌** Seraphim 1월 2일 수도승,은수자,신비가 사로프(Sarov) 1759-1833년
12 복녀
   퀸차니**
Stephana de Quinzani 1월 2일 3회원   1457-1530년
13 시리디온 Siridion 1월 2일 주교   +연대미상
14 아달하르도 Adalhard 1월 2일 수도원장 코르비(Corbie) 753-827년
15 아르제오 Argeus 1월 2일 순교자   +320년
16 아벨** Abel 1월 2일 구약인물   +연대미상
17 아이랄도 Ayraldus 1월 2일 주교 모리엔느(Maurienne) +1146년?
18 이시도로 Isidore 1월 2일 주교,순교자 안티오키아(Antiochia) +4세기?
19 이시도로 Isidore 1월 2일 주교 니트리아(Nitria) +4세기경
20 복자
   코뇰리**
Gerard Cognoli 1월 2일 수사   +1345년
총 20 성인

 

 

  ▶가스파르 델 부팔로(1.2)  
 
성인명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786-1837년
같은이름 가스발, 가스팔

 


   이탈리아 로마(Roma) 태생인 성 가스파르는 요리사의 아들이었으나,
콜레지오 로마노에서 교육받고 1808년에 서품되었다. 그는 교황 비오 8세(Pius VIII)의 추방 이후
나폴레옹 보나팔트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했기 때문에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5년 동안
코르시카(Corsica)로 유배당하였다.

   그가 귀향할 때에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회를 설립하여 1815년에 교황 비오 7세로부터 보혈선교회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성 가스파르는 스폴레토(Spoleto) 부근 지아노(Giano)와 알바노(Albano)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나폴레옹의 통치 기간이었기에 이런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의 선교회는 날로 발전하였다. 그는 또 자선사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임하였으며, 세상의 복음화가 자기 선교사들의 목표임을 늘 주지시켰다.
그는 알바노에서 콜레라에 희생되어 운명하였다. 그는 1904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54년 6월 12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레고리오(1.2)
 
성인명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나지안주스(Nazianzus)
활동연도 329/330-389/390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봉직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의 나지안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공부하던 중에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를 만났고,
그 후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를 다녔으며, 아테네(Athenae)에서도
10여 년을 성 바실리우스(Basilius)와 미래의 황제 율리아누스 배교자와 함께 공부하였다.
30세 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즉시 바실리우스와 함께 이리스 강변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2년 후부터 부친을 돕던 중, 362년에 사제로 서품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의 주교로 임명받았다.

   이 교구는 아리우스(Arius) 지역이었으므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게 될 때,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초청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8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임명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켜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까지 열려 문제가 심상치 않게
발전하므로, 그는 교회 내의 평화를 위하여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다가 고향 땅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에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의
선언문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교회학자’로 불린다.
 
 
 
 
 
 
 
  ▶마카리오(1.2)
 
성인명 마카리오(Macarius)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수도원장
활동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394년
같은이름 마까리오, 마까리우스, 마카리우스

 


   알렉산드리아의 시민인 성 마카리우스는 과자장수를 하다가 하느님께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세상을 멀리하고, 6년 동안 사막에서 고행과 관상으로 지냈다.
그의 첫 은수처는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였다. 그리고 373년에는 이집트 남부로 가서 스케티스(Scetis)와
니트리아(Nitria) 사막에 움막을 지었다.
그 당시의 은수자들은 각각 자기 움막에서 독수생활을 하였다.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극도로 엄격한 규율을 지켰으며 기적도 수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 그는 자신의 스승인 성 마카리우스(1월 15일)와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아리우스파(Arianism) 총대주교인 루키우스에 의하여 나일 강의 한 섬으로 추방된 적도 있으나
결국은 귀향이 허가되어 돌아왔다.
그는 니트리아에 있는 수도원을 위하여 회헌을 집필하였는데, 이 중의 여러 규칙이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인용하고 자신의 회칙에 삽입하여
그 맥이 지금도 이어온다.
 
 
 
 
 
 
 
  ▶세라핌(1.2)
 
성인명 세라핌(Seraphim)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승, 은수자, 신비가
활동지역 사로프(Sarov)
활동연도 1759-1833년
같은이름 쎄라핌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성 세라핌은 1759년 7월 19일 러시아 쿠르스크(Kursk)의 동방교회
가문에서 프로코르 이시도레빅 모쉬닌(Prokhor Isidorevic Moshn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건축업자인 아버지 이시도레빅 모쉬닌이 일찍 사망하자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완성하지 못한
교회 건축을 도맡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기적적인 사건을 체험한 그는 상인이 된 형을 돕던 중 마음속으로
수도생활로의 부르심을 깨달아 1776년 동료들과 함께 키예프(Kiev) 순례를 떠났다.
수도생활에 대한 확신을 가진 그는 1778년 19세의 나이로 사로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 후 1786년에 서원을 하고 히브리어로 ‘열정’이라는 뜻의 세라핌이라는 수도명을 받았으며,
1793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듬해 그는 사로프에서 몇 마일 떨어진 숲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떠났는데,
자신의 수도원을 비롯하여 많은 수도원으로부터 원장직을 의뢰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804년에는 세 명의 강도들에게 심한 매를 맞아 곧 수도원에 옮겨졌으나
성모 마리아에 의해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숲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그 뒤 그는 절대적인 침묵과 고요 속에서 전세계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하며 생활하였다.
당시는 나폴레옹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1810년 질병과 수도원장직을 수행해야 할 의무 때문에 사로프의 수도원으로 되돌아왔지만
그는 수 년 동안 격리된 작은 방에서 완전한 은둔생활을 하였다.
1815년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한 후부터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자들에게
영적 상담을 해주었다. 그리고 66세 되던 1825년 숲속의 은둔소로 되돌아가 영적 사부
혹은 영성 지도자로서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다.

   1832년부터 죽음이 가까워짐을 깨달은 성 세라핌은 영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묘 자리를 미리 정해 놓고 자신의
 방 입구에 놓인 관 앞에서 묵상에 잠겨 있다가 종종 졸도하기도 하였으며,
 이때 많은 기적적인 행적을 남겼다고 한다.
이듬해 1월 2일 그는 수도원에 있는 그의 방에서 성화 ‘우리의 부드러운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의 옷은 그의 손에서 떨어진 촛불에
불타 버린 상태였다.

   성 세라핌이 사망한 후 그의 무덤을 참배하던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1903년 1월 29일 러시아 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교령을 반포한데 이어
그 해 7월 19일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스테파나 드 퀸차니(1.2)
 
성인명 스테파나 드 퀸차니(Stephana de Quinzani)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3회원
활동지역  
활동연도 1457-1530년
같은이름 스테파냐, 스테파니

 


   이탈리아의 브레시아(Brescia) 교외에서 출생한 스테파나 드 퀸차니는 15세 때에
손치노에 있던 도미니코회 3회에 입회한 후부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 후 그녀는 손치노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녀는 자주 탈혼하였는데, 특히 예수 수난의
각 단계에 직접 참여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치유의 은사로 자신의 신심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스테파니 드 퀸차니(Stephanie de Quinzani)로도 불리며,
1740년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그녀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아벨(1.2)
 
성인명 아벨(Abel)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활동지역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카인과 아벨(창세 4,1-16)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16  카인은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살았다.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창세 4,2)로 밭을 가는 농부인 형 카인(Cain)과는 달리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아담의 가족은 하느님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때 우발적인 사건으로 아벨은 형 카인에게 죽임을 당하여 인류 최초로 살해당한 인물이 되었다. 기르던 양떼 가운데에서 맏배를 잡아 기름기를 봉헌한 아벨의 예물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졌으나
카인이 드린 곡식 예물은 반기시지 않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카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꼬여 죽였던 것이다(창세 4,3-8).

   창세기에서는 아벨에 대하여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지만, 복음서에서는 아벨은 무죄하다고
평가되었다(마태 23,35; 루가 11,51). 복음서는 아벨의 죽음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원인이 되어 빚어진 예언자 내지 순교자의 죽음과 유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산 첫 번째 인물로 ‘아벨’을 꼽았다(히브 11,4).
아벨의 예물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은 믿음으로 형 카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풀이함으로써 아벨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살해된 인물로 평가하였다.
 
 
 
 
 
 
   ▶제라르도 코뇰리(1.2)
 
성인명 제라르도 코뇰리(Gerard Cognoli)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345년
같은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게라르두스 코뇰리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어느 귀족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10살 때에 부친을 여의였고 그 얼마 후에는 모친마저 잃었다.
친척들은 결혼하기를 강요하였으나 그는 모든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40세 때까지 순례와 은수자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황량한 시칠리아(Sicilia) 섬을 떠나지 않았다. 
   이때 그는 프랑스 앙주(Anjou)의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8월 19일)의 성덕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평수사로서 놀라운 단순 덕과 겸손을 보였다.
가끔씩 부엌일을 하던 중에 기도에 몰두하여 물의를 일으킨 때도 있었다. 한 마디로
그의 성덕은 아주 높은 단계였다. 그의 식사는 빵과 물이 전부였고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잤다. 그는 너무나 자주 탈혼에 빠졌는데 그 때에는 그의 주변에 광채가
빛났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8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