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0월21일(수) 聖말쿠스, 聖女우르술라님..등

H-Simon 2009. 10. 21. 06:31

 

 
10월21일(수)
          聖말쿠스, 聖女우르술라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다시오 Dasius 10월 21일 군인,순교자   +303년
2 말코 ** Malchus 10월 21일 수도승,은수자   +4세기경
3 복자 베드로 Peter 10월 21일 수사 티페르노(Tiferno) 1390-1445년
4 비아토르 Viator 10월 21일 독서자,은수자 리옹(Lyon) +390년
5 아스테리오 Asterius 10월 21일 신부,순교자 오스티아(Ostia) +223년
6 요한 John 10월 21일 수도원장 브리드링턴(Bridlington) +1379년
7 성녀 우르술라 ** Ursula 10월 21일 동정 순교자 쾰른(Koln) +연대미상
8 조티코 Zoticus 10월 21일 군인,순교자   +303년
9 성녀 칠리니아 Cilinia 10월 21일 부인 랑(Laon) +458년경
10 카이오 Caius 10월 21일 군인,순교자   +303년
11 콘데도 ** Condedus 10월 21일 은수자   +685년경
12 투다 Tuda 10월 21일 주교 린디스파른(Lindisfarne) +664년
13 핀타노 Fintan 10월 21일 수도원장 태그몬(Taghmon) +635년경
14 힐라리온 ** Hilarion 10월 21일 수도원장 가자(Gaza) 291-371년
총 14 성인
 
 
 
 
 
 
    ▶말코(10.21)
 
성인명 말코(Malchus)
축일 10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승,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4세기경
같은이름 말쿠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의 말에 의하면 성 말쿠스는 니시비아 출신으로서
부모의 결혼 강요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을 나왔다.
이윽고 그는 안티오키아 교외의 칼키스에 이르러 은수자들의 그룹에 끼어들어 수도자가 되었다.
그의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수도자로서의 삶을 허락받으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알레포와 에데사 사이를 오가는 대상들을 따라 가다가 베두인족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때 그와 어느 한 처녀가 노예로 팔렸다.
그런데 그의 주인이 함께 팔려온 그 처녀와 자신을 결혼시키려 하자 그는 자신은 이미 결혼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후 둘은 도망쳐서 성 말쿠스는 수도원으로 돌아가고, 그 여자도 집으로 가기로 하고 어느 동굴
속에서 숨어 살았다.
그러나 사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죽을 고비를 잘 넘긴 후 성 말쿠스는 칼키스로 갔고,
그 처녀는 고향으로 갔으나 가족을 만나지 못하여 말쿠스의 움막으로 찾아왔다.
그녀 역시 그곳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들의 높은 덕은 비길 데가 없었다고 찬양하였다.
 
 
 
 
 
 
   ▶우르술라(10.21)
 
성인명 우르술라(Ursula)
축일 10월 2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쾰른(Koln)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우루술라, 우술라

  St Ursula (중) 과  그녀의 동료들(중)

교황 Ciriacus (좌) 와 성녀 Catherine of Alexandria(우)

   성녀 우르술라는 4세기경 독일 쾰른에서 11,000명의 소녀들과 함께 순교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들의 순교에 얽힌 이야기들은 중세기 때 “황금 전설”(Golden Legend)에 수록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우르술라는 영국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어느 왕의 딸로 태어났다.
우르술라는 이교도 왕의 아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결혼을 하지 않고 동정녀로 살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3년이란 말미를 얻어서 귀족 가문의 처녀 10명과 함께 여행길에 나셨다.

   우르술라와 10명의 처녀들은 각각 1,000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황해를 떠나 바다 건너
유럽 대륙의 쾰른에 도착하였으며, 그 다음에 육로로 로마까지 갔다.
그들은 다시 쾰른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훈족의 족장이 우르술라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부당했다.
그러자 화가 난 족장이 우르술라와 그 일행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며 고문을 하였고,
우르술라의 지도를 받은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모두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1,000이란 숫자는 ‘XIMV’을 후대에 필사자가 잘못 읽은 데서 기인한다.
본래 이 표기는 ‘11명의 동정 순교자’(11 Martyres Virgines)라는 의미인데,
이를 ‘11,000명의 동정녀’(11 Milla Virgines)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1535년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1월 27일)는 우르술라 성녀의 이름을 딴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콘데도(10.21)
 
성인명 콘데도(Condedus)
축일 10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85년경
같은이름 꼰데도, 꼰데두스, 콘데두스
 

   프랑스어로 콩데 혹은 콩데드라고 부르는 성 콘데두스는 잉글랜드 사람으로 일찍이 프랑스로
건너가서 퐁텐-생-발레리라는 곳에 정착하였다. 얼마 후 그는 퐁트넬 수도원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하룻밤을 지낼 방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헤맸는데,
날씨가 매우 나빴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부인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밤새도록 폭풍우가 휘몰아침으로 그 부인은
걱정이 되어 창문을 들러보니 콘데두스가 자는 방에서부터 거대한 불빛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 성인은 그 후 폰테넬리에서 잠시 머물다가 벨치낙이라 부르는 곳에서
독수생활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의 성덕을 익히 알고 있던 국왕 시에리 3세는 조그마한 섬을 하사하여 수도원도 짓고
또 그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그 후 성인의 유해는 퐁트넬(Fontenelle)로 이장되었다.
 
 
 
 
 
 
   ▶힐라리온(10.21)  
 
성인명 힐라리온(Hilarion)
축일 10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가자(Gaza)
활동연도 291-371년
같은이름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팔레스티나의 가자 남쪽 타바타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온의 생애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이교도 부모에게서 출생한 성 힐라리온은 15세가 되어
문화와 지식의 위대한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던 중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막의 성 안토니우스(Antonius, 1월 17일)를 만나
테베로 가서 두 달을 함께 산 뒤 가자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의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유산을 형제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뒤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고 사막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악과 육신의 유혹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기도와 금욕, 고독의 삶을 살았다.
그가 은둔하던 장소는 마주마로부터 6-7마일 떨어진 바다 근처의 습기 많은 저지대였다.
그는 갈대와 골풀 등으로 만든 오두막에서 살았다.
나중에 작은 방을 지었지만 그것마저도 그가 편히 눕기에는 좁을 정도였다.
그는 일 년에 한 번, 부활절에만 머리를 깎았으며 작은 정원에서 직접 기르는 몇 개의 무화과와
약간의 야채를 먹으며 생활하였다.
그의 엄격한 생활 방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추종자들이 그의 근처에서 생활하고자 모여 들었고,
그가 행한 몇 차례의 치유 기적으로 인해 많은 병자들도 찾아왔다.
그는 강론과 삶의 모범으로 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다.

   65세까지 성 힐라리온은 마주마에 살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말보다는 삶의 실천을 통해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끝났다는 생각과 자신이 없어도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기도와 고통 속에 숨어 지내고자
하였으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실질적인 감금 상태에 있던 그는 단식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들을 떠날 수 있었다.
360년경 마주마를 떠나 이집트로 향한 그는 먼저 40명의 제자들과 함께 테베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의 무덤을 참배하였다.

   성 힐라리온의 만년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이집트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체포 명령으로 인해 리비아의 사막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 후 그는 침묵과 낮은 자리에서 생활하기를 갈망해 두 명만을 동반한 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Sicilia)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장작을 패다 팔아 생활하던 중 그의 초기 제자인 헤시키우스(Hesychius)를 만났다.
곧 그의 명성이 널리 퍼져 또다시 많은 순례자들과 병자들이 그를 찾아 몰려들었다.
성 힐라리온은 쉴 틈조차 없을 만큼 바빠지자 제자 헤시키우스의 도움으로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달마티아 해안에 있는 에피다우루스로 갔다.
그러나 또 같은 일이 반복되자 어둠을 틈타 헤시키우스와 함께 키프로스의 파포스로 갔다.
그곳에서도 그의 기적은 계속되었고, 병자들과 신심 깊은 사람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를 방문하러 왔다.
그래서 성 힐라리온은 다시 헤시키우스의 도움으로 높은 산에 있는 접근 불가능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372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죽음을 앞두고 헤시키우스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재산의 전부인 성경과 짧은 망토의 상속인으로 정하였다.
그는 사망 후 파포스 근처에 묻혔으나 헤시키우스가 비밀리에 그의 시신을 마주마로 옮겨
안장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힐라리온은 당나귀를 타고 악마나 용, 도마뱀을 십자가로
제압하는 늙은 은수자로 표현된다. 그는 키프로스와 시칠리아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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