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의 해

['바오로 해' 특집]

H-Simon 2008. 7. 30. 13:13

 

 

 

['바오로 해' 특집]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영성

 

세상 곳곳에 전하였다‘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이방인들의 사도라 불리는 바오로 사도. 그는 세 차례에 걸쳐 광범위한 전도 여행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민족적·지역적 종교가 인류 전체를 향한 세계 종교로 탈바꿈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삶을 철저히 산 그리스도인이면서 지중해 곳곳에 예수를 널리 전한 사도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인생을 관조한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학계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A.C. 5~1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독실한 유다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철저한 바리사이로 처신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 예루살렘에 유학해 힐렐 율사의 손자이며 당대 최고의 율사였던 가믈리엘 1세 아래서 율법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태생 로마 시민으로 시민권에 따르는 특전을 누렸다.

33년경 바오로는 다마스커스 교회를 박해하러 가던 도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인 및 사도가 되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앞날을 좌우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율법과 성전에 대해 비판적인 신앙 노선을 따르며 유대 민족 테두리를 넘어 이방인들을 활발히 전도, 스스로를 이방인들의 사도로 자처하곤 했다.

회심 후 그는 다마스커스 교회를 방문해 세례를 받고 설교했다고 한다. 아라비아로 떠났다 미움을 사 다마스커스로 피신했고 36년경 예루살렘으로 상경해 보름 동안 베드로와 함께 지냈다.

그 무렵 스테파노의 순교를 계기로 흩어진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에서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도해 유다인과 이방인의 교회를 창립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그 교회를 돌볼 책임자로 키프로스 섬 출신인 사제 바르나바를 파견했다. 바르나바는 바오로 사도를 초빙해 만 1년(44~45년경)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를 돌봤다. 그 뒤 바오로 사도는 세 차례에 걸쳐 지중해 동부 지역으로 광범위한 전도 여행을 했다.

제1차(45~49년경) 제2차((50~52년경) 제3차(53~58년경) 전도 여행을 통해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참석 ▲갈라티아, 그리스 등에 교회 설립 ▲다수의 유다인 전도 ▲데살로니카서, 로마서 등을 집필 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그는 전도하면서 스스로 생계비와 전도비를 조달했다. 자신이 신자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돈 때문에 전도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으나 51~52년경 고린토에서 전도할 당시 천막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필립비 신자들이 주는 도움은 받아들였다. 이는 그들이 바오로 사도의 무사무욕(無私無欲)한 본심을 늘 믿었기 때문이다.
64년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나서 여론이 좋지 않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4년(64~68년경) 동안 모진 박해를 했다. 이 때 바오로 사도가 순교했다. 그는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당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교 율법은 폐기됐지만 율법의 기본 원리인 ‘이웃 사랑’만은 영구히 유효하다고 했다. 그는 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 재림에 관한 전승들을 자신의 서한집에 수록했다. 이는 그가 물려받은 그리스도 전승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하느님의 의로움, 속량, 자유, 하느님의 사랑·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주제로 구원론을 마련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품성인 ‘하느님의 자비’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사도들이 복음 선포해 선민과 만민에게 알려졌으며, 인간은 복음선포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써 그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속량(사들임, 값)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을 뜻하고 그 희생으로 그분은 율법의 노예들을 하느님의 양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유는 바오로의 친서에 여러 차례 언급된다. 이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 의롭게 된 사람은 죄와 율법,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때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두고 바오로 사도만큼 심사숙고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사랑’의 관점에서 예수 사건을 풀이하며 하느님은 사랑의 원천이라고 했다.

‘책과 미디어’로 배우는 바오로 사도

성인의 삶을 소개한 책 가운데 ‘사도 바오로’를 주제로 다룬 책은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많다. 바오로가 그리스도교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며,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바오로의 사상에 숨어 있다는 뜻도 된다. 2008 ‘바오로 해’를 맞아 바오로 사도의 삶과 영성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책들을 소개한다.

‘오늘 함께 걷는 바오로’(카를로스 메스테르스/김수복 옮김/바오로딸/188쪽/9500원)는 바오로 사도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연대기적 나열에 따라 사도 바오로의 생애와 행적을 다루고 있지만, 책은 기존의 성인전과는 다른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당시 공동체와 시대상황을 오늘날의 세상에 반추시켰다는 점도 흥미롭다.

‘타르수스의 바오로’(박태식 지음/바오로딸/224쪽/7000원)는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사상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눠, 1부 에서는 바오로라는 이름부터 시작해 출생지와 가족 관계, 성품, 직업, 시대적 사회적 배경, 회심과 회심 이후 행적, 3차례의 선교 여행과 죽음까지 생애 전체를 다룬다. 2부에서는 그의 수사학과 그리스도론, 인간론, 종말론, 구원론, 신론과 창조론, 교회론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 전반을 살펴본다.

‘바오로 스케치’(최광복/도서출판 빅벨/173쪽/7000원)는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업적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오늘, 새롭게 보는 사도 바오로’라는 부제의 이 책은 바오로 성인을 연구하는 성경학자들의 최근 결과물들을 스케치하듯이 소개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도 있다. ‘바오로야 땅 끝까지 가볼까’(김유미 글/김옥순 그림/9000원)는 바오로 사도의 삶과 신앙을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민 창작 그림동화다. 바오로딸 성서이야기 시리즈의 열세 번째 권이다. 4~8세 어린이용. 이밖에 ‘최초의 선교사 사도 바오로’(가톨릭출판사), ‘바오로의 편지들-성서 길잡이 4’(가톨릭출판사), ‘바오로’(성서와함께) 등도 바오로 사도를 소개하는 양서들이다.

‘책 읽기’가 지루하다면 ‘영상 매체’를 권한다. ‘바오로, 타르수스에서 세계로’(바오로딸/3만원)는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 여정과 생애, 사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DVD로 출시된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 초창기 인물들의 생애를 기록하는데 활발한 활동을 펼친 알베르토 카스텔라니 감독의 역작이다. (곽승한 기자 paulo@catholictimes.org)

사진설명
▶다마스커스로 교회를 박해하러 가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개하는 바오로 사도를 표현한 그림.
▶성 바오로 대성당. 로마의 4대 대성전 중의 하나로 사도 바오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유재우 기자 jwyoo@catholictimes.org

 

기사입력일 : 2008-01-01

 

 

 

바오로 해 특집-사도 바오로 영성을 따라서 3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

새하얀 성당내부는 눈의 궁전을 연상시키고…

고도(古都) 로마 시내 곳곳에는 천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러나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넓은 평야가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지며, 두메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도 그런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수도원 앞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굳게 닫힌 육중한 철문이었다. 무언가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다가 살짝 철문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고 수도원임을.

미리 약속을 한 터,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한국인 박미애(데레지타) 수녀가 총총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것 같지 않던 그 철문이 박수녀의 등장으로 정말 요술처럼 열렸다.

언덕 숲길을 따라서

지도를 펼쳐들었을 때 한낮 점으로 표현되던 수도원은 그 곳에 발을 들여놓자 어느덧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 공간으로 바뀌었다. 고요하다. 여유와 아늑함이 있다. 발을 디디는 순간 바깥세상의 소란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언덕 숲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길가에 늘어선 나뭇가지들이 아담한 길을 만들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선 나무들이 여기는 수도원 가는 길이니 마음을 가다듬으라 주문하고 있는 듯하다.

언덕길이 끝날 무렵, 대나무 숲으로 꾸며진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한정된 공간에 자연을 담아낸 인공의 아름다움. 이국에서 만나는 대나무는 더욱 반갑다.

성 바오로딸 수도회의 역사는 성 바오로 수도회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성 바오로딸 수도회는 알베리오네(Giacomo Alberione, 1884∼1971) 신부가 사회 홍보 수단을 이용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1915년 6월 15일 테클라 메를로(T. Merlo, 1894∼1964) 수녀와 협력해 이탈리아 알바시에 설립한 활동 수녀회다.

이후 사도직에 매진하던 성 바오로딸 수도회는 1926년 1월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뜻을 따라 성 바오로 수도회와 함께 로마로 옮겨왔고, 그때부터 로마는 수도회의 총본부가 됐다. 지금의 수도원 자리는 30여 년 전 ‘천주의 섭리회’가 운영하던 대학생 기숙사 자리에 새롭게 마련한 것이다.

박미애 수녀와 이귀영 수녀, 25년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사라 스케나 수녀의 안내로 수도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현재 총본원에는 총장 M. 안토니에타 브루스카토 수녀를 비롯해 전세계 11개국에서 온 70명의 수도자가 상주하고 있다.

총본원 건물은 거대하고 웅장하기 보다는 여성적이며 섬세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심코 지나치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수도원 곳곳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단층 건물이지만 총본원 안에는 수도원 성당을 비롯해 강의실, 숙소, 식당, 시청각실, 박물관 등 있을 것은 다 들어서 있다.

특히 수도원 성당은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동경해 봤을 정도로 아름답다.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부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나보다. 흡사 새하얀 눈밭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성당 지붕 곳곳의 틈새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차갑고 흰 대리석을 화려하게 감싼다. 외관의 규모는 단출하고 소박하지만 이곳은 세계 80여 개 관구를 통솔하는 수도회의 본부다. 총본원에서는 6년마다 전 세계 관구장 대표들이 모여 새 총장 선출이 이뤄지며, 2년에 한 번씩 원로 수도자들을 초청해 ‘카리스마 투어’도 진행한다. 해마다 국제적 차원의 ‘바오로 대피정’도 이곳에서 열리며, 종신서원을 앞둔 수도자들을 위한 ‘국제종신수련’도 총본원의 몫이다. 인터넷사도직을 담당하는 박수녀는 “지난해에는 전세계 인터넷 관련 커뮤니케이션 담당 수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갖고 발전상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바오로 사도 영성에 가까이

수도회는 2008년 ‘바오로 해’를 맞아 ‘바오로 가족 수도회’ 산하 10개 공동체와 함께 다양한 기념행사를 기획, 준비하고 있다. 특별히 바오로 서간을 연구하고, 사도직에 매진함으로서 바오로 사도의 영성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한해가 될 것이란 것이 전언이다.

세 명의 수녀와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도원을 나선다. 곧이어 숲으로 우거진 언덕길과 다시 만났다. 청정하고 차가운 공기가 신체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것이 짜릿하다.

누군가 그랬다. 로마에 가면 바티칸 곳곳을 둘러본 뒤 꼭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콜로세움’을 가보라고. 기자는 로마에 가면 꼭 수도회 총본원을 방문하라 제안한고 싶다. 특별히 연인이나 부부들에게 더욱 권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 훗날 꼭 한번 다시 와 보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취재에 협조해 주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로마 총본원’ 이귀순 수녀님, ‘성 바오로 수도회 로마 총본원’ 김태훈·황인수 수사님, ‘성 바오로딸 수도회 로마 총본원’ 이귀영·박미애·사라 스케나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진설명
▶사라 스케나 수녀와 한국인 두 수녀가 밝게 웃고 있다.
▶아담하고 소박한 총본원 건물 외관.
▶성 바오로딸 수도회 관구가 진출한 국가가 표시된 지도.
▶이국에서 만난 대나무 숲은 더욱 인상적이다.

곽승한 기자 paulo@catholictimes.org

 

기사입력일 : 2008-01-20

 

 

사도 바오로는 어떤 분이신가?

 

사도이며, 순교자이신 바오로(Paul)의 축일은 6월 29일이다.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사도 성 바오로는 해외에 거주하는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킬리키아 지방의 수도 타르수스에서 구세주 탄생 후 7년에서 10년 사이에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4)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사울은 그의 유다식 이름이고, 바오로는 희랍식 이름입니다.

 

이방인 지역에 살던 유다인이었던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명한 스승인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교육을 받았습니다(사도 22,3).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타르수스의 공용어였던 희랍어에도 능통하였습니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사도 성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 전에 초대 교회의 신자들을 박해했음을 여러 번 고백하고 있습니다(1코린 15,8-9; 갈라 1,13-14; 필리 3,5-6).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은 회심의 길이었다.

 열정에 싸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바오로는 열정에 싸여 그리스도를 온 세계에 알리는 사도가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바로 바오로의 인생을 바닥부터 뒤집어 놓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e)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그림설명] 로마 시외, 아르데아로 가는 길가에서 집행되었다. 그곳에는 오늘 트레 폰타네(Tre Fontane: '세 개의 샘'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형리의 칼에 베어진 바오로의 목이 땅에 떨어지면서 세 번이나 튀어 올랐고 목이 떨어졌던 자리에서 각기 샘물이 샘솟았다고 한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바오로의 해] "나는 하느님 교회를 몹시 박해했습니다" "  
 


다마스쿠스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나?


서기 35~36년 어느 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2~3년쯤 지난 시점이다.
유다 율법을 신봉하는 바리사이파 바오로는 나자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예루살렘에서 200㎞ 떨어진 지금의 시리아 땅)로 말을 몰았다.

예수는 이미 두 해 전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뒀다. 그런데도 부활이니 오순절 성령강림이니 하는 괴소문(?)이 끊이지 않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디아스포라(이스라엘 밖 유다인 집단거주지)로 달아나 비밀집회를 열고 있었다.

바오로는 율법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그들을 보고 분개했다. 그의 손에는 대사제가 발행한 그리스도인 체포령이 들려 있었다.

# 주님은 누구십니까? 
태양이 작열하는 끝없는 사막을 가로 지를 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같은 빛이 쏟아지더니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말이 놀라서 앞발을 들고 날뛰는 바람에 그는 땅으로 나자빠졌다. 그는 섬광같은 빛에 눈이 멀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잠시 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도 9, 1-19 참조).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그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그와 동행한 사람들은 소리는 들리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멍하게 서 있었다. 사람들은 얼이 빠진 그를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그는 예수가 보내준 하나니아스에게서 안수를 받고 난 뒤에야 눈에서 비늘 같은 게 떨어져 다시 볼 수 있었다.

▲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을 묘사한 카라바조의 '성 바오로 회심'(캔버스에 유화, 230x175㎝, 1601년 작,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성당). 강렬한 빛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는 두 다리와 팔을 벌린 채 무기력한 상태다.


유다교 이탈자들을 색출하러 가는 길에서 만난 봉변, 이 다마스쿠스 사건으로 그는 교회 박해자에서 열렬한 복음 선포자로 변신한다. 기운을 차린 뒤 즉시 다마스커스 회당에 뛰어 들어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은 그가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받은 사도"(로마 1, 1-2)라고 고백하는 근거가 된다.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이 사건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회심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 차원에서 봐야 하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충격에 빠진 바오로에게 하나니아스를 보낼 때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고 일러줬다. 바오로도 "(하느님은)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갈라 1,16)라며 이 사건이 계시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밝혔다.

그럼 주님은 왜 교회를 없애버리려고까지 한 바오로를 '그릇'으로 택했을까? 더구나 과장된 겸손인지 모르겠으나, 스스로를 "칠삭둥이 같고, 사도로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1코린 15, 8)이라고 하는 자를 말이다.
그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살펴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 "나는 하느님 교회를 몹시 박해했습니다" 
그는 소아시아 킬리기아 지방 타르수스(사도 21, 39 현재의 터키) 사람이다. 집안 전통에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다인이었다. 율법이 명하는 대로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다.

그는 회심 이전에 예루살렘을 몇 차례 방문했을 것이다. 흠잡을 데 없이 충실한 율법 엄수(嚴守)자였기에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동경하지 않았을 리 없다. 아예 이주해서 살은 적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사도 22, 3).

가말리엘은 매우 유명한 바리사이 율법교사다. 바오로는 스승의 영향으로 율법 열광자가 됐다.

또한 타르수스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깃발 아래 있던 그리스 로마 도시였는데, 산업과 교역이 번창했다. 특히 소아시아 그리스 문화(헬레니즘 문화)와 근동의 셈족문화(히브리 문화)가 교차한다.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두 문화를 접하며 타문화에의 개방성을 익혔을 것이다. 두 문화권에서 성장하며 헬라어와 히브리어 두 언어를 구사하는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운 주님 섭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그는 구체적 정황은 밝히지 않았으나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했다"(1코린 15, 9)고 털어놨다. 스테파노가 모세와 율법을 모독한 죄로 성 밖에서 돌팔매질을 당해 죽는 광경도 목격했다. 그는 그때 여느 유다인들처럼 스테파노의 메시아 증언에 노발대발하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

스테파노 순교는 역으로 복음의 씨앗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난과 박해에 놀란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와 다마스쿠스까지 흩어졌기 때문이다.
바오로의 회심 사건은 이들을 붙잡아 들이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는 거기서 한 순간에 그리스도에게 사로 잡혔다. 그러자 전에는 이롭던 것이 모두 해로운 것이 되고 말았다(필리 3,7).

불 같은 성격의 바오로는 그때부터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되려는 주님의 종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평화신문, 김원철 기자

▲ 사도 바오로


   ▨ 사울과 바오로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사도 13,9)
사도행전에 사도의 이름은 바오로, 사울 두 개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중간에 개명(改名)을 한 것은 아니다.
사울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다사회 전통에 뿌리를 둔 이름이다. 그리고 바오로는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통용된 이름이다. 두 이름은 사도가 두 문화권에 속해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이다.
바오로는 자신의 유다인 혈통을 강조한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필리 3, 5).

그러나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 이후 그는 거의 대부분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유다사회 안에서 시작된 그의 선교활동이 그리스 로마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도가 자신의 이름을 사울이라고 직접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도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사도 바오로의 해)

                                                                                    전 합 수 가브리엘 신부


1. 사도 12, 1-11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 하느님의 신비한 힘 체험.

2, 디모 후서 4,6-8. 17-18.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

3. 마태 16,13-19.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

 

주제: 성서를 통해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

서 론

어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 전일부터 앞으로 일년동안 사도 바오로의 해를 지내게 된다. 여러 가지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는 줄 알지만, 정작 바오로 사도의 영성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다른 어떤 것 못지 않게 중요할 것이다. 오늘 대축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급한대로 거칠게 성서를 통해서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정리하여 보았다.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평소에 성서만 보고 바오로 사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해왔고, 또 그것의 전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기에 다른 사족을 달지 않고, 거의 성경 내용을 인용하며 그 영성을 살펴보았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성서를 통해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

1) 회개(회심)의 영성

2) 변치않는 신심의 영성. .. .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가는 영성

3) 증거하고 전교하는 영성

4) 십자가의 영성

5) 신자(백성)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영성 - 교회의 영성

6) 성령의 영성

7) 끝까지 달려가는 순교의 영성.

결 론- 끝까지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영성.



 본 론 그러면 간략히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1. 회개(회심)의 영성 :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의 가장큰 반대자, 박해자였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후 180∘변하여 그리스도의 가장 큰 증거자와 전파자가 되었다. 우리도 이같이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회심(회개)를 하여야 하겠다.

 

(사도행전 9장) 17 그래서 아나니아는 곧 그 집을 찾아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였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신도들과 함께 지내고 나서20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21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하여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못 살게 굴던 자로서 신도들을 잡아서 대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 온 자가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22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있게 전도하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므로 다마스쿠스에 있는 유다인들은 모두 당황하게 되었다.

 

2. 변치않는 신심의 영성 : 바오로 사도는 한번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한 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무를 수행한후 그는 결코 이를 포기하거나 놓아버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끝까지 달린 사람이며, 뒤를 돌아보거나 두리번거리고 헷갈림이 거의 없이 오직 주님만을 보고 나아간 분이시다. 주님의 뜻을 강하게 느끼고 은혜를 크게

받을 때는 정말 온마음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좇는다고 결심하고 말하고는, 상황이 좀 편해지고 달라졌을 때는 금방 다르게 행동하는 요즘 이 시대의 우리 신자들의 모습을 볼 때 정말

깊이 생각하고 본받아야 할 ‘변치않는 신심’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다.

 

(필립비 3장) 12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

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14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15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관해서 다른 생각을 품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것까지도 분명히 가르쳐주실 것입니다.16 어쨌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갑시다.17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

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3. 증거하고 전교하는 영성 : 바오로 사도의 삶 전체는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30살 정도에 예수님을 체험하고 64년경에 순교하기까지 바오로는 오직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심지어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참된 가르침에 대하여 증언하였고, 이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린 2서 1장) 8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리려

고 합니다. 그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을이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9그러나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0하느님께서는 과연 그렇게 어려운 죽을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내 주셨고 앞으로도 건져 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앞으로도 건져 내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 2서 11장)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24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25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26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의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27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28이런 일들을 제쳐 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9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력을 다해다갔음을 알 수 있다.

 


4. 십자가의 영성. . .자신의 약점안에 은총을 발견하는 영성, 십자가를 끌어안고 가는 영성.

바오로사도는 그리스도 복음의 신비가 십자가의 신비임을 통찰하고 있었고, 이는 바로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부터 드러남을 체험하고 있었다. 내 몸의 가장 약한부분, 숨기고 싶은 부분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 힘을 드러내 보이고 계시며, 공동체에도 시련과 고통을 통하여 성장시켜

주심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의 신비’가 바로 참된 지혜임을 말한다.

 

(고린 1서 1,22-25) 22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이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23우리

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24그러나 유다

인이나 그리이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25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

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

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고린 2서 11,30 ; 12,5-10)30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하며 나 자신에 관해서는 나의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내가 다른 것도 자랑할 마음이 있어서 자랑한다하더라도 사실대로만 말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고 한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게 될까봐 나는 자랑을 그만 하겠습니다.  7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8나는 그 고통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나에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

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5. 신자(백성)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영성.

신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내 신자 뿐만이 아니

라 자신의 동족 유대인을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끊이 없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사랑. . .(로마서 10장)1형제 여러분, 나는 내 동족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2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여러 교회에 대한 사랑. . 27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28 이런 일들을 제쳐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29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30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그 외 (고린2서 9.1-18.)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거두어갈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고 지냈습니다.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14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내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는 이 긍지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16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7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입니다.18 그러니 나에게 무슨 보수가 있겠습니까? 보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낮아지며 같아지는 영성)

 

고린 2서 9장.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20 내가 유다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21 나는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실상은 하느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22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23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6. 성령의 사도. .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 생전에는 만났다는 기록이 없다. 다른 12사도처럼 그리고 그 외의 중요한 사도들처럼 예수님께서 생전에 만나서 교육을 시키거나 제자로 양성한 대상이 아님을 확실하다. 즉 바오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체험하고 그 가르침을 받은 것은 거의 전적으로 ‘성령의 힘과 작용’에 의하여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다마스쿠스의 하나니아 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보충해주고 전달해준 사람들의 역할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바오로는 절대적으로 성령의 가르침에 의존하고 영향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다른 어떤 사도들 보다도 성령의 역할과 작용, 그리고그 가르침에 대하여 정통하고 있고, 오늘날

교회에도 필수적인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성령의 역할과 은사에 대하여. . 고린 1서 12장 1-11절. 이상한 언어의 활용에 대하여 고린 1서 1

4장.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갈라디아 5장 22-26절.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와 이루시는 일에대하여 로마서 8장 26-28절.

(신비체험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음)

 

고린 2서 12장에는 천국에 들여올려진 듯한 체험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바오로 사도가 천국에

들여올려진 체험을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없지만, 그가 주님으로부터 신비스러운 영적 체험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2 내가 잘 아는 그리스도 교인 하나가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3 나는 이 사람을 잘 압니다.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4 그는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가서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러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신비스런 체험을 하고 주님의 현존

을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사도 9, 1-19; 22,4-21; 26,9-18) 그러나 루가 사가가 전하는 이러한 신

비스런 내용과는 달리 바오로 사도 자신은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회심내용을 전하고

있다. (갈라1,15-20) 고린 2서에 나오는 신비체험은 바오로 서간 전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신비

체험이지만 이역시 바오로는 체험당사자를 3인칭으로써서 최소한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

다. 그 내용도 자신이 체험한 천국 이야기를 장황하게 떠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

을 바탕으로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주님의 살아있는 음성(메시지)를 전달

하기 위함인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성령기도회나 그 외 신흥영성 등의 영향으로 ‘말씀’자체보다 신비스런체험 등에 많은 관심

을 가지고 그러한 현상에 쏠리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그러나 누구보다 더 많은 체험을 한 바오

로 사도가 항상 신비체험보다는 살아있는 말씀과 십자가의 신학에 충실하였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사도 바오로와 성령”. . .이 주제에 관하여는 교구 자료집<바오로의 해> 46-50.쪽. 교황 베데

디토 16세 성 베드로 광장 2006년 11월 15일 강론 참조.

 


 

7. 끝까지 달려가 순교하는 영성. . . 바오로 사도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전교하고 교회가 이루어지면 그곳에 정주하고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한 목표 즉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나는 사람이었고, 이는 그가 삶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디모 2서 4, 6-8.) 6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7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8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고린 1서 9장) 24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25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27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결 론 - 끝까지 나아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영성.

바오로 사도의 목표는 적당하게 주님말씀을 실천하고 적당히 열심한 또는 적당히 훌륭한 신자나

존경받는 사도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소리는 그에게 나아갈 길을 방해하

는 거추장스러운 쓰레기( 필립3,9)와 같은 것일 뿐이었다.

 

바오로 사도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온전히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이었다. 겉모양으로만 일치

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으로 온전히 일치하여, 아예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며, 그리스도

가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고린 2서 13,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만

일 깨닫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제한 것입니다.

 

(고린 1서 10,31; 11,1) 31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갈라 2,19-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필립비 3,7-9) 7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8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삶과 그 정신(영성)을 돌아보면, 이와같은 대단한 삶을 과연 한 인간이 살 수 있

을까 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한 인간을 이와 같이

복음의 위대한 사도가되게 한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의 가장

깊은 곳을 찾아 살펴볼 때, 그 힘의 원동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그분에 대한 사

랑과 열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

진리를 바오로는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낸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디모 2서 4장. 7절)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8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성 라자로 마을 내 사제 마을에서 전 합 수 가브리엘 신부. 2008.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