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기원과 유래
복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과 영광을 일관하는 그리스도 생애를 묵상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기도이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가 철저하게 예수님의 삶과 연관되어있음을 알려 주시는 기도이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00년 경 어느 수도원에서는 문맹의 수도자들을 위해서 시편 150편 대신에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150면 암송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시기 ‘성모송’ 은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찬양만이 합성된 것이었다.
12세기 파리 시노드 이후, ‘성모송’이 널리 암송되었다.
보조 수도자들이나 열심한 신자들은 성무일도 시간경에 맞추어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50번 씩 나누어 세 번에 걸쳐 기도했다
.
1483년 이후 후반부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 ’성모송‘에 첨가되어 암송되었다.
교황 비오 5세는 1586년 성무일도서를 발간하면서 그것을 규정화했다.
이때부터 ’묵주기도‘에 ’천주의 성모마리아님‘이라는 후반부가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14세기경 카르투시오 회원이었던 칼카르의 헨리코(Enrico 야 Kalkar, 1404) 는
이미 150번의 기도를 1단으로 구분하고
‘성모송’10번에 ‘주님의 기도’ 한 번의 암송하도록 했다.
이것은 물론 오늘날의 ‘묵주기도’와는 같지 않다.
거의 같은 시기에 ‘묵주기도’가 도미니코 성인이
성모 마리아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는 전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또 카루투시오 회원인 프러시아의 도미니코(Dominico di Prussia, 1461) 가
50번의 ‘성모송’을 10번 씩 나눠할 때이다.
주님의 신비-숨은 삶, 공적 삶, 수난, 부활, 그리고 영광의 신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단하게 묵상 구절로 도입했다.
이 때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라는 후반부가 없었다.
1470년 경 도미니코 회원인 알라노 데 라 로케(Alano de la Roche, 1428-1478)는
헨리코와 도미니코의 기도 방법을 조화시켰다.
이 전설은 확실하지 않지만, 도미니코 성인(1170-1221년)과
그의 형제들이 ‘묵주기도’를 바쳤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레오 10세(Leo x)는 회칙‘Pastoris Aeterni’(영원한 목자)에서
그 전설을 우리는 마치 역사처럼 읽는다고 말하고 있다.
비오 5세도 신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기도는 16세기에 와서 15가지의 신비에 대한 묵상과
15번의 ‘주님의 기도’,. 150번의 ‘성모송’이 합쳐지면서 발전했다.
1569년 교황 비오 5세는 회칙을 통하여 ‘묵주기도’의 형식을 축성했으며,
이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로사리오 축일은 도미니코회 출신 교황 비오 5세에 의하여 제안되었다.
레판토에서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연합 함대가 터키 해군을 물리친 승리를 기념하여,
1571년 10월7일을 로사리오의 마리아 축일로
지낼 것을 제안 했다. 그날 로마의 형제들에 의해서 ‘묵주기도’가 바쳐 졌다.
1573년 4월1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Grrgorius xIII)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매 10번의 ‘성모송’다음에 ‘영광송’이 첨가된 것은 그 다음 세기인 17세기 부터이다.
그리고 ‘영광송’ 다음에 연옥영혼을 위항 기도문이 첨가 된 것은
1917년 파티마의 성모발현 이다.
영적지도: 신기현(시몬)신부
출처 : 레지오 단원들의 쉼터
기적의 묵주
♬ 기적의 묵주
머리 위에 월계관 쓰고
두 손에는 기적의 묵주
입가에는 사랑의 미소
눈가에는 자비의 눈물
내 어머니 마리아여
내 어머니 마리아여
영원토록 당신만을
사랑하옵니다
기도 속에 장미 향기
은은하게 올라가네
묵주 알알 엮어 바쳐
이 마음을 바치나이다
내 어머니 마리아여
내 어머니 마리아여
영원토록 당신만을
사랑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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