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3월 30일 聖 베르톨드님..등

H-Simon 2011. 3. 29. 22:28

 

 

3월 30일(수)  

 

 

 

 
성 베드로 레갈라토(Petrus Regalatus)
              

 

 

 

 

 

    ▶베드로 레갈라토(3.30)  
 
 
성인명 베드로 레갈라토(Peter Regalatus)
축일 3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390-1456년
같은이름 레갈라또, 레갈라뚜스, 레갈라투스, 발리솔레타노, 발리솔레타누스,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레갈라토(Petrus Regalatus)


   성 베드로 레갈라투스 발리솔레타누스
(Petrus Regalatus Vallisoletanus, 또는 베드로 레갈라토 발리솔레타노)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부유하고 신심 깊은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아기 때에 부친을 잃었고 10살 때부터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려고 하였다.
결국 그는 13살 때 고향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해도 좋다는
허락을 어머니로부터 받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곧 수도자들 가운데서 인정을 받았고, 사제품을 받은 후
1415년 아귈레라(Aguilera) 수도원의 원장,
1422년 트리불로스(Tribulos) 수도원의 원장직을 차례로 맡았다.
그는 매우 엄격한 보속의 생활과 열정적인 기도 생활을 하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져들었고,
가끔 땅에서 공중으로 떠올랐을 정도로
온전히 하느님과 일치된 상태에서 살았다.
 
그는 작은 형제회 개혁 수도원을 지도하던 중
1456년 3월 30일 아귈레라에서 선종하였다.
1782년 그의 유해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되어 이장되었는데,
그날을 기념하여 5월 13일에 축일을 지내기도 한다.
그는 16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746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도도(3.30)
 
 
성인명 도도(Dodo)
축일 3월 30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아슈(Asch)
활동연도 +1231년
같은이름  

 

아슈의 복자 도도(Dodo)


   도도 자신은 수도성소가 있다고 확신하였지만
그는 부모의 강권에 의하여 결혼하였다.
그의 부친이 운명하자 그는 자신의 희망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아내와 어머니를 수도원으로 보내고, 자신은 프레몽스트레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원장의 허락을 받고서 홀로 외로운 곳에서
4년 동안이나 독수생활을 하였는데, 사악한 악마가 그를 괴롭히므로
그곳을 떠나, 네덜란드의 프리슬란트(Friesland)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그는 극도로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그가 십자가 앞에 엎드려 있는데,
그 십자가에서 “너도 오랫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여러 번 들려 왔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치유의 은사를 받았는데,
그가 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많도록 오랜 동안 살다가 벽이 무너져 운명하였다.
그의 사후에 시신을 조사해 보니 주님의 다섯 상처가
그의 몸에 박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오상을 받은 프란치스코와 비슷한 연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레오나르도 무리알도(3.30)
 
성인명 레오나르도 무리알도(Leonard Murialdo)
축일 3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토리노(Torino)
활동연도 1828-1900년
같은이름 레너드, 레도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무리알도

 

알폰소 파노초의 성 레오나르도 무리알도(Leonardus Murialdo)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인
성 레오나르두스 무리알도(Leonardus Murialdo, 또는 레오나르도)는 교구 사제였으나,
청소년과 노동자의 복지 향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다가
‘젊은 노동자들을 위한 집’을 세운 뒤 ‘성 요셉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1963년 복자품에 올랐으며,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조시모(3.30)  
 
성인명 조시모(Zosimus)
축일 3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시라쿠사(Siracusa)
활동연도 +660년경
같은이름 소시모, 조시무스, 조씨모, 조씨무스

 

시라쿠사의 성 조시모(Zosimus)


   성 조시무스(조시모)의 부모는 시칠리아(Sicilia)의 대지주였다.
그의 부친은 성녀 루치아(Lucia) 신심이 지극하여
일곱 살인 그를 인근에 있는 성녀 루치아 수도원에서 살게 하였고,
그는 성녀의 유해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 임무보다 그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놀고 싶었기 때문에
수도원장의 허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야단을 맞은 그날 밤에 그는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는데,
이때부터 수도자가 될 마음으로 인근의 다른 수도자들을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거의 30년 동안 수도자로서는 잊혀진 인물로 살았다.

   그곳의 산타 루치아 수도원의 원장이 서거했을 때,
조시무스 수사가 그의 후임으로 뽑혔다.
그 후 며칠 뒤에 주교가 그에게 사제품을 주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지혜로 산타 루치아 수도원을 다스렸고
선대의 원장들을 모두 능가한다는 평을 동료들로부터 들었다.
649년 시라쿠사 교구의 주교좌가 공석이 되었을 때
바네리오란 사람이 천거되었으나 주민들이 모두 반대하자
교황 테오도루스 1세(Theodorus I)는 조시무스를 주교로 축성하였다.
이 거룩한 사람은 주교인지 수도자인지 모르게 겸손하게 살면서도
정통교리를 수호하며 성실히 지도하였다.
그는 항상 가난한 수도자로서 일생을 보내다가
90세의 나이로 선종하는 은혜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