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말씀 ♥
+.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마태오 18,21-35)
♥ 오늘의 묵상 ♥
베드로도 참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그에게 만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제자들과 서로 자리다툼을 하던 것처럼
(마태 20,20-24 참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상처가 매우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참고 있던 베드로가 결국, 오늘 복음에서 보듯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예수님께 여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용서하기가 어려운데,
우리가 서로 용서하며 산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을 어떻게 수없이 용서하며 살 수 있는지요?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이해하면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주인에게 일만 탈렌트 빚진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 화폐 단위에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 받는 품삯에 해당합니다.
또한 한 탈렌트는 육천 데나리온, 곧 육천 일의 노동의 가치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만 탈렌트 빚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무한한 빚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께 무한한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을 바라보면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뿌리는 하느님에 대한 교만입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3월 29일
H-Simon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