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3월 2일 福者 가를로님..등

H-Simon 2011. 3. 1. 14:34

 

 

 3월 2일(수)

福者 가를로님..등

 

  

 
 

복자 가롤로(Carolus)

 
 

 

 

 
   ▶가롤로(3.2)
 
성인명 가롤로(Charles)
축일 3월 2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127년
같은이름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샤를,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복자 가롤로(Carolus)


   플랑드르(Flandre)와 아미앵(Amiens)의 백작인 카롤루스(Carolus, 가롤로)
매우 현명하고 자비롭게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의 부친은 덴마크의 왕 성 카누투스 4세(Canutus IV, 1월 19일)이다.
그는 불과 5세 때에 플랑드르의 백작 작위를 받았고,
그 후 장성하여서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십자군에도 참가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는 항상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가장 중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당으로
맨발로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중에 그에 대한 불길한 음모가 싹트고 있었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위험 중에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참으로 의롭게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시편 150을 외웠다.
그는 성당의 제대 앞에서 인간들의 추악한 악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통회하던 중 자객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자객은 그의 조카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는 높은 직책을 수행하였으나 항상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였으므로 이를 시기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었다.
그의 유해는 벨기에의 브뤼헤(Bruges)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고,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8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체아다(3.2)
 
성인명 체아다(Ceadda)
축일 3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승, 주교
활동지역 머시아(Mercia)
활동연도 +673년경
같은이름 차드, 채드, 케아다

 

머시아의 성 체아다(Ceadda)

 


   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서 태어나 차드(Chad)로도 불리는
성 체아다와 그의 동생 성 체드(Cedd, 10월 26일)
린디스파른(Lindisfarne)에서 성 아이다누스(Aidanus, 8월 31일)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은사인 성 아이다누스가 운명하자 성 체아다는
아일랜드의 성 에그베르투스(Egbertus, 4월 24일)와 함께 수년을 생활하다가
동생 성 체드가 세운 요크셔(Yorkshire)의 라스팅햄(Lastingham)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잉글랜드(England)로 돌아갔다.
그 다음 해에 성 체아다는 오스위(Oswy) 왕에 의하여 요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구 내에 여러 개의 수도원과 피정의 집을 세워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같은 교구인 요크의 주교로 임명된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669년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가 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는 성 체아다를 머시아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이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성 체아다는
그의 주교좌를 리치필드(Lichfield)로 정했다.
그는 여러 수도원을 설립하고 활발히 복음을 전하며,
이교도인 머시아인들에 의해 수없이 순교한 순교자들의 순교지에
주교좌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는 리치필드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버밍엄(Birmingham)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