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서 태어나 차드(Chad)로도 불리는
성 체아다와 그의 동생 성 체드(Cedd, 10월 26일)는
린디스파른(Lindisfarne)에서 성 아이다누스(Aidanus, 8월 31일)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은사인 성 아이다누스가 운명하자 성 체아다는
아일랜드의 성 에그베르투스(Egbertus, 4월 24일)와 함께 수년을 생활하다가
동생 성 체드가 세운 요크셔(Yorkshire)의 라스팅햄(Lastingham)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잉글랜드(England)로 돌아갔다.
그 다음 해에 성 체아다는 오스위(Oswy) 왕에 의하여 요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구 내에 여러 개의 수도원과 피정의 집을 세워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같은 교구인 요크의 주교로 임명된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669년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가 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9월 19일)는 성 체아다를 머시아의 주교로 임명하였고,
이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성 체아다는
그의 주교좌를 리치필드(Lichfield)로 정했다.
그는 여러 수도원을 설립하고 활발히 복음을 전하며,
이교도인 머시아인들에 의해 수없이 순교한 순교자들의 순교지에
주교좌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는 리치필드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버밍엄(Birmingham)에 안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