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Sicilia) 섬 지르젠티(Girgenti, 오늘날의 아그리젠토)의
마태오(Matthaeus, 2월 3일)가 메시나에서 설교할 때
칼라파토(Calafato)의 젊은 백작 부인인 마틸다(Matilda)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이 되었다.
얼마 동안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드린 응답인지
딸 아이 하나를 갖게 되었는데,
어떤 행인이 백작 부인을 만나서 그 아이는 구유에서 낳아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지라
이름을 스메랄다(Smeralda)로 지었다.
어릴 때부터 열심이던 이 아이는 아버지 베르나르두스(Bernardus)가
적임자를 골라 결혼 서명까지 하였으나 그녀 자신은 동정서원을 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결혼 상대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부친이 사망하자 스메랄다는 바시코(Basico)에 있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수도원에서 클라라회 수도복을 받고
이름을 에우스토키아(Eustochia)라고 하였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가난 정신이 뛰어났고,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과 통회 정신이 극히 열렬하여
전 수녀회의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바시코에서 11년을 살고난 뒤 그녀는 더욱 엄격한 규칙을 원하였는데,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가
성 프란치스코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 설립을 인가하였다.
그래서 柳石?몬테 베르지네(Monte Vergine)에 수도원을 세우?
회원을 모집하였으나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1485년 베르지네 수도원에서 선종하였고,
1782년부터 공경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1782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8년 6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메시나에서 시성되었다.
그녀는 에우스토키움(Eustochium)으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