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월14일 노바라의 복자 오도님..등

H-Simon 2011. 1. 13. 19:29

 

 

114일(금) 

노바라의 복자 오도님..등

   

 

노바라의 복자 오도(Odo)

   

   
                                                        테너 최성욱 스테파노

 

 

 

 
 
 
 
 
 
 
   ▶오도(1.14)
 
성인명 오도(Odo)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도승, 은수자
활동지역 노바라(Novara)
활동연도 1105-1200년
같은이름  

 

노바라의 복자 오도(Odo)


   12세기 말 이탈리아의 카르투지오 회원 가운데 노바라의 오도가
그 성덕에 있어서 가장 뛰났다?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고,
다만 몇 사람의 증언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는 그의 시복 준비로 질문서를 작성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오도는 진실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밤낮으로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 속에서 지냈고, 끊임없이 성경을 읽었으며,
손수 일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었다.
한 번은 대주교인 오데리시오가 그를 방문했는데
는 거의 알몸으로 맨땅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는 주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주교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그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때 오도의 나이는 거의 100세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59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니노(1.14)
 
성인명 니노(Nino)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소녀, 노예
활동지역 그루지야(Georgia)
활동연도 +340년경?
같은이름 니나

 

그루지야의 성녀 니노(Nino)


   고대 이베리아(Iberia, 오늘날의 그루지야 지역)의 전쟁 포로 노예였던
성녀 니노는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Cappadocia) 출신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뛰어난 성덕과 신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그녀가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질병을 퇴치함으로써
그루지야 황녀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그녀는 황후의 병을 낫게 했으며 사냥 길에 오르는 국왕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왕과 왕비는 그녀로부터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한 노예 소녀의 힘으로 큰 이변이 일어난 것이었다.

   국왕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사람을 보내어 주교와 사제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여 그루지야 왕국은 마침내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다.
이런 큰 성공을 거둔 성녀 니노는 궁중을 물러나서 보드베(Bodbe) 산중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그곳에서 여생을 지냈고 묻혔다.
그루지야의 사도로서 존경을 받는 성녀 니노는 니나(Nina)로도 불린다.
그리고 그녀의 축일은 12월 1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마크리나(1.14)
 
성인명 마크리나(Macrina)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개종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70-340년
같은이름 마끄리나

 


   성녀 마크리나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
니사(Nyssa)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의 할머니로서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마크리나 부부는 소시아?네오카이사레?font size="3">(Neocaesarea)
폰투스(Pontus) 등지에서 살年? 갈레리우스와 막시미누스의 황제의
박해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들은 박해자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숲 속에서 7년이나 은거했으므로
수없이 굶주렸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마크리나가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
(Gregorius Thaumaturgus, 11월 17일)의 제자였다고 한다.
 
 
 
 
 
 
    ▶말라키(1.14)
 
성인명 말라키(Malachy)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말라기, 말라끼, 말라끼아스, 말라키아스

 

Malachi


   성 말라키(Malachias, 말라기)는 구약성서 열두 편의 소예언서 중
 말라키서는 “야훼께서 말라키를 시켜 이스라엘에 내리신 경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키서는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가치있는 증언을 수록하고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함께 유배 시대 이후의 예언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말라키’라는 이름은 말라키서 1장 1절 표제에만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말라기는 ‘나의 특사’ 또는 ‘나의 천사’라는 뜻이다.

   4세기의 유대 전승들을 모은 “예언자들의 삶”(Lives of the Prophets)에는
말라키가 즈불룬의 소파(Sopha) 출신으로 레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승에는,
말라키가 신앙심이 깊고 온유하여 백성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는데,
‘보는 것이 공정하여’ 말라키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한다.
가(假)에피파니우스(Pseudo-Ephiphanius)와 다른 교부들은 이 전승을 받아들였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전승들이 기원이 늦고 비현실적이어서
예언자의 생애에 관한 증명으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만 예언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인간 죄의 심각함(2.17-3,4; 3,6-7. 13-20)을 파악한
인격적인 신앙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와 이혼(2,10-16), 사회 불의(3,5)에 반대한
매우 헌신적이고 통합적인 인물이었다(A.E. Hill).
그는 성전과 사제와 희생 제사 등 종교의 형식에 대한 외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설교하였지만,
단지 형식주의자나 예식주의자가 아니고
윤리적, 영성적으로 알려져 있다.
 
 
 
 
 
 
 
    펠릭스(1.14)
 
성인명 펠릭스(Felix)
축일 1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증거자
활동지역 놀라(Nola)
활동연도 +260년경
같은이름 펠리체

 

놀라의 성 펠릭스(Felix)

   시리아인으로서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인 놀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성 막시무스(Maximus, 1월 15일)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성 막시무스 주교의 보좌로 활약하다가 그의 스승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으로 갔을 때 스승 대신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 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마침내
그는 주교에게 갈 수 있었다.
 성 펠릭스가 성 막시무스 주교를 찾아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데키우스 황제 사후에도 성 펠릭스는 수배 인물이었으나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에 박해가 그치자 다시 사제 직무로 돌아왔다.
성 막시무스 주교가 서거했을 때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주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자신의 선배 사제인 퀸투스(Quintus)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260년 1월 14일에
선종하였는데, 서거한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성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중 대표적인 곳이 놀라에 세워진 성당으로,
 이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선임자인 성 펠릭스의 무덤 위에 큰 성당을 지어
성서 내용의 벽화로 내부를 장식하였고,
성인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수집, 정리하여 이후에 만들어진
전기의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