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출신인 기욤 드 그리모아르드(Guillaume de Grimoard)는
프랑스 랑크도크(Languedoc)의 그리삭에서 태어나
시락에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으며,
몽펠리에(Montpellier), 툴루즈(Toulouse), 파리(Paris) 그리고 아비뇽(Avignon)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와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몽펠리에와 아비뇽에서 교회법을 가르쳤고 총장으로서도 봉사하였으며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에 의하여 수 개국의 외교 사절을 역임하였다.
1362년 9월 28일 그는 인노켄티우스 6세(Innocentius VI)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자 즉시 교회 개혁에 착수하는 한편
바르나보 비스콘티와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찰스 4세 황제의 요청에 따라 그는 아비뇽에서 로마(Roma)의 교황좌로
돌아왔는데, 이것은 반세기만에 이루어졌던 큰 사건이었다.
우르바누스(Urbanus, 우르바노) 교황은 성직자 규칙을 강화하고
신심 부흥에 심혈을 기울였다.
1368년 그는 찰스 4세의 배우자를 독일 왕비로 대관하였다.
그 후 페루자(Perugia)가 봉기함으로써 이탈리아가 전쟁에 휩쓸리게 되었을 때
성녀 비르지타(Birgitta)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비뇽으로 귀향하여 그곳에서 서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