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0월9일 聖女사라, 聖디오니시오님..등

H-Simon 2010. 10. 8. 18:14

 

 

10월9일(토)

聖女사라, 聖디오니시오님..등

 

 

 

 

 

 사람들을 안고 있는 성조 아브라함, 14세기, 채색 삽화,

그라카니카 정교회 수도원, 그라카니카, 세르비아

16.jpg
                                     
          
 
 
 
 
 
  ▶사라(10.9)
 
성인명 사라(Sara)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구약인물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아브라함의 환대>, 템페라, 14세기, 베나키 박물관, 아테네, 그리스

성화해설


구약의 성조인 아브라함과 부인 사라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세 천사에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시중을 들며 환대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명의 천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즉 성부·성자·성령을 표현한 것이다.

천사의 붉은색 옷과 바닥의 녹색, 그리고 배경의 황금색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생명·진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2008년 5월 18일 삼위일체 대축일 서울주보 1면]

 


   성조 아브라함(Abraham)은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들에게
믿음의 모범 또는 믿음의 조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셈의 후손이며 데라의 아들이고 사라의 남편이며,
이사악의 아버지로서 히브리 민족의 선조이다.
그리고 아들인 이스마엘을 통하여 퍼지게 된 다른
셈족들의 선조이기도 하다(창세 17,5; 25,10-18).
그의 삶에 관해서는 주로 창세기(11,26-25,10)에 소개되어 있고,
사도행전 7장 2-8절에 요약되어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그의 이름은 ‘아브람’과 ‘아브라함’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언급되어 있다.
즉 창세기(11,26-17,4)와 일부 다른 성서의 구절 (1역대 1,27; 느헤 9,7)에서는 아브람으로, 그리고 그밖의 부분에서는 모두 아브라함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브람’은 ‘아브’(아버지)와 ‘룸’(높다, 존귀하다)에서 파생된 ‘람’의 합성어로,
‘존귀하신 아버지’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나의) 아버지는 존귀하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어원론적 해석은 불투명하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었다(창세 17,4-5).
여기에서 하느님은 약속 성취의 징표로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부여하신다. ‘아브’는 아버지를 의미하며 ‘라함’은 많은 민족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에 대한 성서의 해석은 유음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적인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르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동생인 나홀과 하란,
아내인 사라와 조카 롯과 함께 하란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1,26-32).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75세였다(12,1-4).
그가 세겜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약속의 땅의 중심인 그곳에서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다(12,6-7).
그러자 그는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친 뒤 그곳을 떠나 베델 동쪽에 있는
산악지대로 옮겨가,
서쪽으로는 베델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도 제단을 쌓고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가 흉년이 들자 이를 피하여
이집트로 갔다(12,8-10).
그리고 다시 베델 쪽으로 와서(13,3) 롯이 분가를 한 다음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쳤으며(13,18),
그 후 브엘세바에 정착하였다(20,1-2. 14-15; 21,22-34; 22,19).
 
 
그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분가하여 소돔 근처에 살게 되었을 때
소돔 지역의 왕들과 북쪽 지역의 왕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롯은 북쪽 왕들에게 끌려가게 되었다(14장).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기 위하여 북쪽 왕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공인된 지도자로서 행동하였다.
그리고 이집트와 그랄과 브엘세바에서도 한 집단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많은 목축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13,20), 부하들도 많았다
(14,14)
또 가나안족과 브리스족(12,6; 13,7)과 함께 어울려 살았으며,
블레셋 사람들(21,34)과도 어울려 살았고,
헷 사람들과 거래를 하기도 하였다(23장).

   우르와 하란을 떠나기 전에 도시를 배경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하란에 살고 있는 그의 친척들이 천막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24,10-11),
유랑하는 반유목민적 인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12,8-9; 13,18; 18,1).
그러나 그는 마므레, 브엘세바, 블레셋 지역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으며(13,18; 18,1; 22,19; 21,3-4). 그곳 정착민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23,10. 18).
이 지역 왕들과도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였을 만큼 그는 상당한 세력을 가진 외국인 거주자였던 것 같다(15,13; 23,4).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특별한 체험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우선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해줄 것을 약속하였는데(12,1-3),
이 약속은 13장 16절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 약속 실현의 첫 번째 과제는 그가 아들을 얻는 것이었다.
아직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환시 중에 하느님을 만났고(15,1), 여기에서 다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다(15,5-6).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고, 이로써 “주님께서 그것을 정의로 인정해 주셨다”(15,6).
그리고 하느님은 그와 언약을 맺었다(15,7-21).
 
이집트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모든 땅을
그의 후손에게 줄 것을 약속하셨다(15,18).
여기에서 하느님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만일 그가 약속을 어기면 이 제물처럼 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다(15,8-17).
즉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약속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200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종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5,13-16).
이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것이 성취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초월적인 신앙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깊은 감정적 움직임이 동반된 것이었다.
이 순간 그는 분명히 하느님의 약속을 완전히 믿었고, 이러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믿음도 훗날 흔들렸다.

   그의 아내 사라는 아직 아이가 없었으므로 당시의 관습대로
남편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주어 아이를 갖게 하였다(16,1-16).
결국 아브라함과 이집트인 여종 하갈 사이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때 그의 나이 86세였다(16,15-16)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느님은 다시 언약을 하셨고(창세 17장),
이때 그의 나이는 99세였다(17,1).
여기에서 하느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줄 것이며
후손을 번창하게 해줄 것을 약속하고(17,1-8),
이 새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지시하였다(17,9-14).
이 약속과 함께 부인 사라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뀌었다.
이는 고대인들의 사고에 따르면 그의 운명이 바뀌는 것으로,
결국 사라가 하느님의 역사(役事)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의 약속은 사라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다시 확인되었다(18,1-19).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이사악이 태어났고, 이로써 약속 실현의 결정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21,1-7).
그러나 이사악을 매체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시험대 위에 놓이게 된다(22,1-14).
모리아 산에서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증거하였다.
 
그의 아내 사라는 127년을 살고 죽어서(23,1) 헤브론 맞은편 막벨라 밭에 있는
동굴에 안장되는데(23,17-20), 이 땅은 헷 사람 에브론에게 산 땅이었다(23,3-16).
아브라함 역시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오자 엘리에젤에게 하란 지역에 사는
자신의 친척 중에서 이사악의 아내를 구해 주도록 하여
리브가를 며느리로 맞이하였다(24장).
아브라함이 늦은 나이에 크투라와 결혼하여 얻은 자식들은 드단과 미디안 부족의 조상이 되었고(25,1-6),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25,7-11)

   신약성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도 13,26).
 아브라함은 레위 제사장들의 선조로 언급되며(히브 7,5),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라고 선포된다(마태 1,1).
그러나 신약에서는 아브라함의 혈통과 관련하여 새로운 이해가 선포되었다.

   세례자 요한과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느님의 복을 받는 조건이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중적 믿음을
부인하였다(마태 3,9; 로마 9,7).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새로이 선택된 민족,
왕다운 제관들,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 곧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1베드 2,9-10).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다짐한 맹세(루가 1,73)와 약속하신 축복(갈라 3,14)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다(창세 22,1-19)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

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디오니시오(10.9)  
 
성인명 디오니시오(Dionysius)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파리(Paris)
활동연도 +258년?
같은이름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원래 성 디오니시우스는 이탈리아 태생 주교였으나
250년에 선교사로서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6명의 주교들이 프랑스로 갔다고 한다.
그는 파리의 초대주교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불과 몇 년을 선교하다가
자신의 사제인 성 루스티쿠스와 부제 성 엘레우테리우스와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 세 성인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파리 근교에서
참수되었는데,
참수된 곳을 사람들이 몽마르트르 곧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렀다.
이곳이 오늘날의 몽마르트르 거리이다.
 
 
그들의 유해는 센(Seine) 강에 던져졌으나 곧 찾아냈으며,
그들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생 드니의 베네딕토 수도원이 되었다.
 성 디오니시우스는 데니스(Denis) 또는 드니로도 불린다.
 
 
 
 
 
 
  ▶군터(10.9)  
 
성인명 군터(Gunther)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니데랄타크(Niederaltaich)
활동연도 +1045년
같은이름 꾼터

 

니데랄타크의 성 군터(Gunther)


   성 군터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누스의 사촌이고 성 헨리쿠스 황제와도
집안간이다.
 따라서 그는 덕스러운 친척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났지만,
15세 때까지는 야심만만한 귀족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성 고데하르두스의 큰 영향을 받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희사하고는
로마를 순례하였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니데랄타크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불완전했기 때문인지, 자신의 낮은 신분에 만족하지
못하고 괼딘겐의 원장이 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그는 온전히 하느님께 신뢰하고 높은 덕을 쌓게 되면서부터는
스스로 낮은 신분과 은수 생활을 갈망하게 되었다.
1008년 그는 라딩 숲 속의 은둔소로 갔으나 그의 명성을 듣고 제자들이
몰려들므로 다시 바이에른의 린크나크로 가서 살았다.
그는 은수생활을 하면서도 문전걸식을 하였고,
남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90세를 일기로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
 
 
 
 
 
 
    ▶루도비코 베르트란도(10.9)
 
성인명 루도비코 베르트란도(Louis Bertrand)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교가, 선교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526-1581년
같은이름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제로니모 자친토 데 에스피노사의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도(Ludovicus Bertrandus)의 죽음 

   에스파냐의 발렌시아 태생인 성 루도비쿠스 베르트란두스는
18세 되던 해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1547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
약 30년 동안 수련장으로 일하였다.
그는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1557년에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
10월 15일)를 만나 그녀의 카르멜 개혁운동을 적극 격려하였다.
1557년 그는 발렌시아에 흑사병이 만연했을 때 영웅적인 활동을 하였다.

   1562년 그는 선교사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콜롬비아로 갔다.
그는 인디언들이 보다 나은 인간 대접을 받도록 노력하여
많은 개종자들을 얻었다.
그는 예언과 기적 그리고 언어의 능력을 선물로 받았다고 전해졌다.
1569년에 그는 발렌시아로 귀향하여 여생을 지방 수도원의 원장으로 지내면서 설교교육을 하였다.
그는 1581년 사순절에 발렌시아 대성당에서 설교를 하던 중 졸도하여
그 길로 병석에 누워 그해 10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1608년 7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671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성되었다.
 
 

 

 

 

 

  ▶아타나시아(10.9)
 
성인명 아타나시아(Athanasia)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5세기경
같은이름 아따나시아
 

   성 안드로니쿠스그는 성녀 아타나시아란 예쁜 처녀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며, 사업도 날로 번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두 아이가 같은 날에 죽게 되면서 불행이 닥쳤다. 
 
   아타나시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두 아이가 천상에 있다는 말을
어느 방문객으로부터 전해 들으면서부터 세상을 등지기 시작하였다.
안드로니쿠스도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여 이 부부는 집을 떠났다.
그들은 이집트로 가서 그 당시에도 유명하던 성 다니엘 은수자를 찾아
나섰다.
이리하여 성 다니엘은 안드로니쿠스는 타벤니시공동체로 보냈고,
아타나시아는 광야의 회수도자들에게 보냈다. 이들은 12년 동안
수도생활을 계속하였다.
후일 수도자들은 이들 부부 수도자의 유해를 합장하고 
큰 성인 성녀로 공경하였다.

 
 
 
 
 
 
     요한 레오나르디(10.9)
 
성인명 요한 레오나르디(John Leonardi)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41-1609년
같은이름 레오나르도,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이탈리아의 루카 지방의 디에치모에서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성 요한 레오나르디는 약학을 공부하여 약사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그 후 콜룸바누스회에 입회했으며,
고해사제이던 도미니코회 파올리노 베르나르디노의 지도를 받아
인문학과 철학, 신학을 공부하여 1572년 12월 22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성당에 부임하여 어린이와 성인의 교리교육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그는 병원과 감옥의 사목활동에 정열을 쏟아서
수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자 후원자들과 협력자들이 쇄도하였다.

   그때 마침 트렌토공의회가 열리고, 프로테스탄트가 기세당당하게 활동하므로
요한과 그의 후원자들은 새로운 교구 사제회의 구성을 계획하여
프로테스탄트와 대항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1574년 9월 1일 ‘복되신 동정녀의 개혁 사제회’를 결성했다.
이 사제회는 1619년 8월 14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라 개칭되어 승인받았다.
이들은 초기에 루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도미니코 회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루카 지방에서 발생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강력한 반격을 가한
요한의 사도적 열정과 개혁은 교황의 도움으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1584년 그는 로마에 있는 친구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
(Philippus Neri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그의 소개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를 알현하였다.
그와 동료 사제들은 이탈리아에서 프로테스탄트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609년 로마에 독감이 퍼지자 요한은 독감에 걸린 14명의 동료 수도자들을
간호하던 중에 감염되어 그 해 10월 9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1861년에 시복되었고, 1938년 4월 17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