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4월18일 福女강생의 마리아, 福者안드레아 이베르논님..등

H-Simon 2010. 4. 17. 11:42

 

 
4월18일(일)
福女강생의 마리아, 福者안드레아 이베르논님..등

 

 

 강생의 복녀 마리아(Mary of the Incar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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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람>   **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갈디노**  Galdinus 4월 18일 추기경,대주교 밀라노(Milano) 1100-1176년
2 라세리안 Laserian 4월 18일 수도승,주교 라이글린(Leighlin) +639년
3 복녀 마리아(강생의) **  Mary of the Incarnation 4월 18일 과부   1566-1618년
4 비테오 Bitheus 4월 18일 수도승,증거자   +6세기
5 성녀 아지아 Agia 4월 18일 과부 몽스(Mons) +714년
6 아폴로니오 Apollonius 4월 18일 원로원 의원,순교자,호교론자 로마(Roma) +185년경
7 복자 안드레아 이베르논**  Andrew Hibernon 4월 18일 수사   +1602년
8 성녀 안티아 **  Anthia 4월 18일 과부,순교자   +117-138년
9 엘레우테리오 ☞8 Eleutherius 4월 18일 주교,순교자 일리리아(Illyria) +117-138년
10 이데스발도 Idesbald 4월 18일 수도원장   +1167년
11 제노코 Genocus 4월 18일 수도승,증거자   +6세기
12 제부이노 Gebuinus 4월 18일 대주교 리옹(Lyon) +1080년
13 칼로체로 Calocerus 4월 18일 장군,순교자 브레시아(Brescia) +연대미상
14 코레보 Corebus 4월 18일 장군,순교자 메시나(Messina) +138년경
15 코지토소 Cogitosus 4월 18일 수도승 킬데어(Kildare) +8세기
16 페르펙토 Perfectus 4월 18일 신부,순교자 코르도바(Curdoba) +851년

총 16 성인
                    

   

 

     ▶마리아(강생의)(4.18)
 
 
성인명 마리아(강생의)(Mary of the Incarnation)
축일 4월 18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과부
활동지역  
활동연도 1566-1618년
같은이름 메리, 미리암

 

강생의 복녀 마리아(Mary of the Incarnation)


   바르바라 오리오는 정부 고위관리인 니콜라스 오리오의 딸로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아주머니가 있는 롱샴(Longchamps)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고

종교적인 생활을 원했지만 16세 때에 재정 관리인 피에르 아카리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신심이 깊고 또 애덕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바르바라 오리오는 모두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셋은 카르멜회

회원이 되었고, 한 명은 사제가 되었다.

   그러던 그녀의 집안에 큰 재앙이 다가왔다.

그녀의 남편은 앙리 4세에 대항하는 가톨릭 연합의 후원자였다.

그래서 앙리 4세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피에르 아카리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일종의 모반 혐의로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바르바라 오리오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축일;10월 15일)의 저작에 심취하고 애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녀의 이 모든 선한 일들은 결국 앙리 왕의 감탄과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맨발의 카르멜회를 프랑스로 불러왔고,

1604년부터 1609년 사이에 5개의 수녀원을 세웠다.

   1613년 47세의 나이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아미앵에 있는 카르멜회에

입회를 청하여 허락을 받고 강생의 마리아(Maria)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곳은 그녀의 큰딸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영적인 제자로

비록 만 4년밖에 수도자로서 살지 못했지만 기혼자로서 뛰어난 성덕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녀는 “주님, 제가 저지른 온갖 나쁜 표양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을 남기고 4월 18일 퐁투아즈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갈디노(4.18)
 
 
성인명 갈디노(Galdinus)
축일 4월 1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추기경, 대주교
활동지역 밀라노(Milano)
활동연도 1100-1176년
같은이름 갈디누스, 갈디모, 갈디무스
 


   이탈리아의 유명한 델라 스카라 가문 출신인 성 갈디누스(갈디노)

사제품을 받고 밀라노 교구의 주요 직책과 부주교를 역임하였다.

1161년 프레데릭 바르바로사가 쳐들어와서 밀라노를 탈출했을 때

그는 부재중임에도 불구하고 밀라노의 대주교로 선출되었다.

후에 알렉산데르 3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된 그는

밀라노로 되돌아온 후 바르바로사에 의해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고,

정열적으로 설교하러 다녔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또한 당대의 복잡한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주력하였다.

그의 지혜와 웅변은 매우 뛰어났으며 당시 교회를 어지럽히던

카타리 이단을 압도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그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와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와 더불어

밀라노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주교로 손꼽힌다. 그는 갈디무스로도 불린다.

 

   

    ▶안드레아 이베르논(4.18)  
 
 
성인명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w Hibernon)
축일 4월 18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602년
같은이름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히베르논

 


   에스파냐의 귀족 가문의 일원인 안드레아 이베르논은 무르시아 교외

알칸타릴라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누나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강도를 만나 모든 돈을 빼앗겼다.

허탈감에 빠진 그는 세상 재물의 헛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천상에 보화를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길로 그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겸손과 기도 그리고 관상에 뛰어났으며 숨은 생활을 즐겼다.

그는 무엇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지를 늘 지켜보고 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예언과 기적의 은혜까지 받았다.

 

성 안드레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을 예고하였으며,

간디아(Gandia)에서 수도원 개혁을 돕던 중 68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Paschalis Bailon, 5월 17일)과

성 베드로 데 리베라(Joannes de Ribera, 1월 6일)는

성 안드레아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데 크게 앞장섰다.

그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안티아(4.18)
 
 
성인명 안티아(Anthia)
축일 4월 18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17-138년
같은이름 안띠아, 안시아, 안씨아

 

일리리아의 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와 성녀 안티아(Anthia)


   성 엘레우테리우스는 로마인이며 과부이던 성녀 안티아의 아들로서

디나미우스란 어느 주교로부터 교육을 받고 18세에 사제가 되었으며,

20세에 달마티아(Dalmatia) 지방 일리리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궁중 관리를 여러 명 개종시킨 죄목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앞에 끌려갔다.

황제는 벌겋게 달군 철 침대 위에 수족을 묶어 두는 형벌을 가한 뒤에 아예

큰 석쇠 위에 그를 올려놓고 구워 죽이려 하였다.

   이렇듯 이 젊은 주교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여

순교의 영광을 받았는데, 황제의 모진 고문에도 그가 결코 죽지 않자

야생말들이 끄는 수레 뒤에 그를 묶고는 산 위로 말을 쫓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사냥꾼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성 엘레우테리우스를 황제군에게 넘겨 다시금

사자 우리에 던져졌다고 한다.

이때 그는 어머니인 성녀 안티아를 비롯하여 11명의 동료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녀 안티아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9........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