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2월5(토) 聖女크리스티나, 聖니체시오님..등

H-Simon 2009. 12. 4. 21:06

 

 
12월5(토)
       聖女크리스티나, 聖니체시오님..등

                   

          

                    사랑하는 예수님,

                    대림절, 

                    저희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려운 웃을 통해 찾아 오시는 당신을

                    사랑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저희의 눈을 맑게  해 주옵소서,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그라토 Gratus 12월 5일 순교자   +302년
2 니체시오 ** Nicetius 12월 5일 주교 트리어(Trier) +566년
3 달마시오 Dalmatius 12월 5일 주교,순교자 파비아(Pavia) +304년
4 바소 Bassus 12월 5일 주교,순교자 니스(Nice) +250년
5 사바 ** Sabas 12월 5일 수도원장 팔레스티나(Palestina) 439-532년
6 아나스타시오 Anastasius 12월 5일 순교자   +연대미상
7 요한 John 12월 5일 주교 폴리보툼(Polybotum) +750년
8 요한 알몬드 John Almond 12월 5일 신부,순교자 영국(UK) 1577-1612년
9 유스티니아노 Justinian 12월 5일 신부,은수자,순교자   +6세기경
10 율리오 Julius 12월 5일 순교자   +302년
11 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a 12월 5일 수녀 마크게이트(Markgate) 1097-1160년
12 성녀 크리스피나 ** Crispina 12월 5일 순교자   +304년
13 크리스피노 Crispin 12월 5일 순교자   +302년
14 펠리노 Pelinus 12월 5일 주교,순교자   +361년
15 펠릭스 Felix 12월 5일 순교자   +302년
16 성녀 포타미아 Potamia 12월 5일 순교자   +302년
총 16 성인

 

 

 

   ▶니체시오(12.5)
 
성인명 니체시오(Nicetius)
축일 12월 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트리어(Trier)
활동연도 +566년
같은이름 니체시우스, 니체씨오, 니체씨우스, 니케티오, 니케티우스
 

   성 니케티우스(또는 니체시오)는 527년경에 수도원의 행정직을 맡고 있던 중에
독일 남서부 트리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가 부임지로 가는 길에 프랑크족 귀족의 호의를 받았는데,
그들이 농부의 밭을 가로질러 말을 모는 것을 엄하게 꾸짖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당시의 프랑크인들은 겉으로만 신자였지 야만인들이나 다름없었다.

   성 니케티우스는 자기 생활과 모범적인 덕행으로 그들을 가르쳤고,
또 겁 없는 당당한 자세 때문에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느슨한 규율을 바로잡기 위하여 다소 엄격하게 규율을 적용할 때가 많았고,
또 국왕 클로타르 1세의 파문 사건으로 인하여 귀양살이를 한 사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니케티우스는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의 프랑스계 로마 주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적어도 12차례 이상이나 지방회의를 소집하여 교회의 기초를 다졌다.
러메시아나의 성 니케타 전기는 그의 저술이며, 또 다른 저술은 시편 노래에 관한 내용이다.

 
 
 
 
 
 
   ▶사바(12.5)
 
성인명 사바(Sabas)
축일 12월 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활동지역 팔레스티나(Palestina)
활동연도 439-532년
같은이름 사바스, 싸바스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교외 무탈라스카에서 어느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성 사바는
부친이 알렉산드리아로 전근감에 따라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다.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그는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다른 삼촌에게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삼촌들이 집안 재산에 대한 소송 문제로 괴롭히자, 이번에는 고향에서 가까운
어느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18살 때인 456년 예루살렘의 파사리온 수도원으로 옮겨 성 에우티미우스(Euthymius, 1월 20일)의
제자가 된 성 사바는, 스승에 의해 와디 무켈릭에 있는 성 테옥티스투스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7년을 보냈다.

   478년부터는 예루살렘 남동쪽의 와디 엔나르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승인 성 에우티미우스가 운명하자 그는 예리코와 가까운 사막으로 가서 혼자 4년 동안 지냈는데,
이때부터 제자들이 모여 들기 시작해서 483년에는 일종의 수도 공동체인
'마르 사바 라우라'를 형성하였다. 150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이집트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제자들이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수도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팔레스티나 지방의 모든 은수자와 독수자 그리고 회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 권한을 행사한 사실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섭취했을 따름이었다.
또한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정통교리 수호를 위하여 헌신했는데,
오리게네스파와 그리스도 단성론을 특히 배격하였다.

   531년 고령인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사마리아인들의 봉기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후계자를 선임한 뒤, 532년 12월 5일 94세의 고령으로
마르 사바(Mar Saba)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초대 수도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며, 동방 수도회의 설립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크리스티나(12.5)
 
성인명 크리스티나(Christina)
축일 12월 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수녀
활동지역 마크게이트(Markgate)
활동연도 1097-1160년
같은이름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영국 잉글랜드 지방 헌팅던에서 앵글로색슨족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길드 상인 귀족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크리스티나는 15세에 성 알바누스 수도원을 방문하고
개인적으로 동정 서원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이를 반대하고 버크트레드(Berktred)라는 한 청년과 결혼을 계획하였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혼인문제를 로버트 블로에트 주교에게 가져갔고,
처음에 그녀의 편을 들었던 주교는 후에 뇌물을 받고 자신의 판결을 변경하였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약혼하고 결혼한 성녀 크리스티나는
부부관계를 거부한 이유로 결혼 첫 해를 죄수로서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에아드윈이라는 한 은수자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프램스테드로
피신해서 2년간 알프웬이라는 여성 은수자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 후 1118년에 마크게이트의 은둔소로 이주하여 복자 로제르 은수자의 영적 제자가 되었다.

   1122년 버크트레드는 요크(York)의 대주교로부터 혼인 무효판결을 얻어냈고,
또 다음 해에 블로에트 주교가 사망함으로써 마침내 성녀 크리스티나는 마크게이트에서
그녀의 남은 생애를 보낼 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녀의 거룩한 삶에 대한 명성은 곧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 그녀의 집은
베네딕토회의 작은 수녀원이 되었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요크, 퐁트브로(Fontevrault), 마르시니(Marcigny) 등의 수녀원 원장직을
제의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계속 마크게이트에 머물다가 선종하였다.
그녀는 종종 탈혼과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크리스피나(12.5)
 
성인명 크리스피나(Crispina)
축일 12월 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04년
같은이름 끄리스삐나, 크리스삐나
 

   성녀 크리스피나는 좋은 집안의 기혼 부인으로 자녀를 여럿 둔 다복한 부인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그녀는 황제 앞에 마련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물 드리는
예를 거부한 죄로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테바스테에서 아눌리누스에게 끌려갔다.
성녀 크리스피나와 아눌리누스 사이에 오갔던 대담 내용이 문서로 기록될 정도로
그녀는 확고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하였다.

   아눌리누스는 크리스피나에게 완력을 사용하지 않고 황제의 칙서를 따르도록 강요했지만
그녀는 끝내 이를 거절하였다.
“나는 오로지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칙서만 지킬 따름입니다.”
이 말을 듣자 아눌리누스도 인내심을 잃고, “이토록 불경한 크리스피나를 관대히 대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혹독한 고문을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단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녀 아녜스(Agnes, 1월 21일)와 견줄 정도로 유명하던
성녀 크리스피나의 생애를 수차례나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