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2월1(화) 聖女 나탈리아, 聖 엘리지오님..등

H-Simon 2009. 11. 30. 16:14

 

 
12월1(화) 聖女 나탈리아, 聖 엘리지오님..등

                   

          

                     사랑하는 예수님,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이웃을 통해 찾아 오시는 당신을 알아 볼 수 있게, 

                    저희의 눈을 밝게  해 주시옵소서,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나탈리아 ** Natalia 12월 1일 과부,순교자 니코메디아(Nicomedia) +304년경
2 나훔 ** Nahum 12월 1일 구약인물,예언자   +7세기BC
3 디오도로 Diodorus 12월 1일 신부,순교자   +283년
4 랄프 셔윈 Ralph Sherwin 12월 1일 순교자 영국(UK) +1581년
5 로가토 Rogatus 12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6 루치오 Lucius 12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7 복자 리카르도 랭리 Richard Langley 12월 1일 순교자   +1586년
8 마리아노 Marianus 12월 1일 부제,순교자   +283년
9 아나니아 Ananias 12월 1일 순교자 아르벨라(Arbela) +연대미상
10 아제리코 Agericus 12월 1일 주교 베르됭(Verdun) 521-588년
11 안사노  Ansanus 12월 1일 순교자 시에나(Siena) +304년?
12 복자 Anthony Bonfadini 12월 1일 수사   1400-1482년
13 Alexander Bryant 12월 1일 신부,순교자 영국(UK) +1581년
14
    캠피언 **
Edmund Campion 12월 1일 신부,순교자 영국(UK) +16세기경
15 에바시오 Evasius 12월 1일 주교,순교자 아스티(Asti) +362년
16 엘리지오 ** Eligius 12월 1일 주교 누아용(Noyon) 588-660년
17 올림피아데 Olympiades 12월 1일 집정관,순교자 로마(Roma) +303년
18 복자 요한  John 12월 1일 수도원장 베르첼리(Vercelli) 1205-1283년
19 복자 요한 베체  John Beche 12월 1일 수도원장,순교자   +1539년
20 우르시치노 Ursicinus 12월 1일 주교 브레시아(Brescia) +347년
21 카스트리시아노 Castritian 12월 1일 주교 밀라노(Milano) +137년
22 카시아노 Cassian 12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23 성녀 칸디다 Candida 12월 1일 순교자   +연대미상
24 투드발  Tudwal 12월 1일 주교 트레귀에(Treguier) +6세기경
25 프로쿨로 Proculus 12월 1일 주교,순교자 나르니(Narni) +542년
총 25 성인

 

 

 

  ▶나탈리아(12.1)
 
성인명 나탈리아(Natalia)
축일 12월 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니코메디아(Nicomedia)
활동연도 +304년경
같은이름 나딸리아

 


   소아시아 니코메디아의 궁중 관리였던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9월 8일)는
일단의 신자 무리들의 인내심과 열렬한 믿음에 감동하여, 비록 자신이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는 즉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그의 아내인 성녀 나탈리아는 옥중의 남편을
찾아다니며 신앙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방문객의 면담이 금지되자, 아내는 소년 복장으로 위장하고
관리들을 매수하여 남편의 온갖 고통을 위로하고 신심을 굳게 해 주었다.
그가 죽는 현장에 아내도 참석하여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였다.
그의 축일은 순교한 날인 3월 4일에 지내기도 하나, 로마 전례에서는 그의 유해가
로마(Roma)로 이장된 9월 8일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한편 성녀 나탈리아는 자신과 강제로 결혼하려는 니코메디아의 어느 궁중 관리의 손아귀를
벗어나 콘스탄티노플로 피신하여 여생을 지냈다. 성 하드리아누스는
군인들과 푸주한의 수호성인이다.

 
 
 
 
 
 
   ▶나훔(12.1)
 
성인명 나훔(Nahum)
축일 12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7세기BC
같은이름  

 


   엘코시(Elkosh) 출신의 예언자 성 나훔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남긴 조그마한
예언서밖에 없다. 그나마 이 예언서까지 숱한 주석상의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추정은 그가 유대 출신의 예언자라는 사실 뿐이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유다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시에 유다에 구원을 선포하고
외적의 공략이 없으리라는 보장(2,1)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8에 있는 시편으로 인해 나훔이 '성전(聖殿)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나훔이 성전의 제 의식(儀式)과 활동에 정통한 예언자로서 성전 주변에 머무르며
자기 예언직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나훔서는 주님의 분노를 알리는 알파벳 순서의 '시편 - 예언자의 반성 - 역사적 사건의 회고'라는
도식으로 짜여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 중, 이 찬미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야훼의 지상 통치권을 찬양하였다.
비록 나훔서의 서두에 나오는 이 시편이 예언자 나훔의 생존 당시보다 훨씬 후대에
작시(作詩)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지만, 아직 확증할 방도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훔이 직접 이 시편을 작시했거나, 아니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를 인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찬양시를 봉독하며 우주를 지배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찬미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주제하는 하느님의 정열과 그분의 선하심과 권능에 대한 신앙을 견고케
할 수가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살들은 하느님이 가지 나라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괴롭히는 이방민족까지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앙고백과 찬미로 시작하는 이 예언자의 반성은 그가 선포한 메시지를 역사적 현실을 들어
예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하느님은 원수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요 외로운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나 불경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는 하느님이다. 물론 여기서 의인(義人)이란 이스라엘 백성이고 악인이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아시리아인이다.
예언자는 기도문으로 사용된 이 예언서에 풍부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죄악의 도성(都城)
니느웨가 멸망하리라 예고하였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례 때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니느웨의 함락을 목적의 현실처럼 절감하고,
오랜 시일 동안 신앙과 희망을 고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훔서의 저자는 의(義)와 불의(不義)에 대해서 정열적으로 작품을 썼다.

   나훔서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을 찬양하자는 외침이다.
예언자가 전례나 설교에서 역사의 하느님을 상기시키는 의도는 현재 생황의 의미를 깨닫고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목표가 어디 있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자의 전갈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든 인류의 '절대 미래'는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에드문도 캠피언(12.1)
 
성인명 에드문도 캠피언(Edmund Campion)
축일 12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6세기경
같은이름 에드먼드, 에드몬드, 에드문두스, 에드문드, 켐피온

            


   런던의 한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난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 또는 에드문도)는
가톨릭 신자로 성장하여, 불과 15세의 나이에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세인트 존스 대학을 다녔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그 당시의 석학이던 레스터(Leicester)의 얼(Earl),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심지어는 엘리자베스(Elizabeth) 여왕까지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영국 교회의 으뜸으로 인정하는 수장령에 맹세하고,
1564년에 영국 교회의 부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테스탄트 세력이 증대되는 사실에 의혹을 품고, 1569년에 아일랜드로 건너가서
공부한 후에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가톨릭으로 되돌아 왔다.

   교황 비오 5세(Pius V)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단죄함으로써 영국 내의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시작될 때, 그는 프랑스의 두에(Douai)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예수회원이 되어 보헤미아(Bohemia)의 브르노(Brno)로 갔다.
그는 프라하(Prague)에서 대학 강단에 섰으며, 1578년에는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와 로버트 퍼슨(Robert Persons) 신부가 영국 선교사로 가는 첫 번째 예수회원이 되어
1580년 영국으로 떠났다.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그의 활동, 옥스퍼드의 대학 성당에서 행한
그의 연설 ‘데쳄 라시오네스’(Decem Rationes), 그리고 유명한 브라그(Brag)의 간행은 그로 하여금
영국사에 한 획을 긋게 하였다.
그는 옥스퍼드 근교 리포드(Lyford)에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고,
자신의 변호를 거부한 채 심한 고문을 받다가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그는 진정한 사제였으며,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엘리지오(12.1)
 
성인명 엘리지오(Eligius)
축일 12월 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누아용(Noyon)
활동연도 588-660년
같은이름 엘로이, 엘리기오, 엘리기우스, 엘리지우스

   좌~ 성 요한 복음사가, 성 아우구스티노, 성 예로니모, 성 엘리지오


   엘로이(Eloi)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성 엘리기우스(또는 엘리지오)는 프랑스계 로마인의 아들로서
프랑스의 리모주(Limoges) 근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에우케리우스(Eucherius)는 금속 세공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유명한 금 세공인인
압보(Abbo)에게 아들을 보내어 공부하도록 안배하였다. 압보는 리모주의 조폐국 책임자였다.
그가 도제 수업을 마친 뒤에는 궁중 재무관 봅보(Bobbo) 수하에서 일을 하다가
국왕 클로테르 1세의 조폐국 책임자가 되었다.

   성 엘리기우스는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는 한편 국왕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성 엘리기우스의 신심과 끊임없는 설득에 의하여 국왕은 가난한 이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으며,
수많은 노예들의 보석금을 대납하였고 또 여러 교회를 세웠다.
또 632년에 그는 솔리냑(Solignac)에 수도원을 세웠고, 클로테르의 아들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의 도움으로 파리(Paris)에 수도원까지 세우는 등 참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였다. 그래서 국왕은 그를 자신의 주요 고문으로 삼았다.

   또 엘리기우스는 브르타뉴(Bretagne)로 가는 외교사절이 되어 활약한 결과 브르타뉴 국왕을
설득하여 프랑크 왕의 권위를 인정하게끔 하는 큰 공을 세웠다.
또 그는 640년에 서품되어 누아용의 주교가 되었다가 투르네(Tournai)의 주교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중에 안트베르펜(Antwerpen)
지역에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는 금세공 기술자, 대장장이, 모든 금속 장인들의 주보성인이며,
택시 운전기사들도 주보로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