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11월11일(수) 聖마르티노, 聖테오도로님..등

H-Simon 2009. 11. 10. 13:27

 

 11월11일(수) 聖마르티노, 聖테오도로님..등
          

                     하느님 아버지,

                    성인 성녀님들의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아멘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같은 내용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마르티노 ** Martin 11월 11일 주교 투르(Tours) 316?-397년
2 멘나 Mennas 11월 11일 군인,순교자 이집트(Egypt) +303년?
3 멘나 Mennas 11월 11일 은수자   +6세기
4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w 11월 11일 수도원장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 +1055년
5 발렌티노 Valentine 11월 11일 순교자   +304년
6 베라노 Veranus 11월 11일 주교 리옹(Lyon) +5세기
7 빅토리노 Victorinus 11월 11일 순교자   +304년
8 아테노도로 Athenodorus 11월 11일 순교자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304년
9 테오도로 ** Theodore 11월 11일 수도원장,신학자   759-826년
10 펠리치아노 Felician 11월 11일 순교자   +304년
총 10 성인

 
 
 
 
 
 ▶마르티노(11.11)
 
성인명 마르티노(Martin)
축일 11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투르(Tours)
활동연도 316?-397년
같은이름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헝가리 판노니아의 사바리아태생인 성 마르티누스는 이교도 장교의 아들로 부모가 파비아로
전속될 때에는 15세였다. 이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로마(Roma)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예비자가 되었다.

   아미앵에서 지내던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는데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를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신비 체험 후 마르티누스는 18세 때 세례를 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고,
일리리쿰으로 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싸움으로써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였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이던 밀라노의 주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는 잠시 갈리나리아 섬에 숨어 있다가 360년에 프랑스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푸아티에의 주교인 성 힐라리우스로부터 도움을 받고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이윽고 다른 은수자들이 그에게 몰려오므로 이 공동체는 갑자기 큰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수도 공동체가 되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낸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개인생활은 마르무티에에서 은수자로서 계속 생활하였다. 

   그가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하니 이교 신전의 파괴와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또 계시와 환시로도 유명하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또한 그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프랑스 지방의 최고의 성인이며, 성 베네딕투스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인 마르티누스의 경당은 유럽의
주요 순례지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⑪ 성 마르티노 (상)
 
걸인에게 망토를 잘라주는 마르티노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구걸하는 자에게 망토를 준 마르티노 - 작품 해설 : 시모네 마르티니, 265 x 230 cm,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 성 마르티노 경당, 프레스코 벽화.
 

‘열세 번째 제자’‘갈리아의 사도’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큰 사랑
 
 
성 마르티노(약 336-397)는 예수님의 ‘열세 번째 제자’
, 혹은 ‘갈리아의 사도’라 불릴 만큼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수호성인이다.
많은 성인들이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전설과 구전에 의존하는 것에 반해
마르티노 성인은 술피치오 세베로(Sulpizio Severo)라는 제자가
‘마르티노의 생애(Vitae Martini)’라는 전기를
남겼기 때문에 비교적 소상히 생전의 행적을 알 수 있다.
 
마르티노 성인은 336년 헝가리의 사바리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제국의 군인이었던 부친이 호민관으로 승진 발령을 받는 바람에
 어린 마르티노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의 파비아로 건너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모는 이교도였으나 마르티노는 10살 경 하느님의 뜻에 이끌려 교회를 찾게 되었고,
예비신자가 되었다. 부친은 아들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부친의 대를 잇던 당시의 관행에 따라 마르티노도 15살에 군인이 되었다.
 
성인이 아미안에서 근무할 때 일어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추운 겨울날 기사였던 마르티노는 성문 앞에서 덜덜 떨며 구걸하던 한 걸인과 마주친다.
마땅히 줄 것이 없었던 마르티노는 칼을 꺼내 자신의 망토를 잘라 그 절반을 걸인에게 주었다.
그날 밤 마르티노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났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인 마르티노가 이 망토로 나를 덮어주었다.
 
예수님은 낮에 걸인에게 준 그 망토를 걸치고 계셨다. 그 걸인은 실은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이 꿈을 꾼 후 마르티노는 세례를 받기 위해 날아가듯 달려갔다고 전기는 전하고 있다.
 
성 마르티노의 일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의 으뜸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지하 성당의 성 마르티노 경당에 그려진 시모네 마르티니의 벽화 시리즈이다.
그곳에는 마치 그림으로 읽는 성인전인 양 성인의 생애를 벽면 가득히 아름다운 벽화로 그려 놓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이 그림이 그려졌던 14세기는 단연 시에나 화가들의 황금기였으며,
그 중에서도 으뜸은 시모네 마르티니였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그림을 주문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이 장면에서 마르티노 성인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위의 망토 사건을
그리고 있다. 젊은 기사로 그려진 마르티노가 말 위에 앉은 채 헐벗고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에게 주기위해
자신의 망토를 장검으로 자르고 있다. 맨발에 다 헤진 천 조각 같은 옷 한 벌을 달랑 걸친 이 걸인은
한 손으로는 망토를 자르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추위에 떠는 듯 목을 감싸고 있다.
배경은 아미안의 성문이다. 꼭 필요한 요소들만 그렸으면서도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단숨에 알아보도록
그린 것은 화가의 능력이다.
앞 발을 살짝 들고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말은 화면에 생동감을 주고 있으며,
공간에서는 입체감이 감지된다.
화가들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말과 같은 사물에 눈을 돌려 막 관찰을 시작한 무렵에 그려진 그림으로써
순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가톨릭신문, 2009년 7월 5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s/simone/3assisi/martin_1/10cloak.jpg]
 
 
 
 
 
   ▶테오도로(11.11)
 
성인명 테오도로(Theodore)
축일 11월 1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원장, 신학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759-826년
같은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난 성 테오도루스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 올림푸스 산의 성인인
플라토(Plato) 원장의 조카이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비티니아의 사쿠디움에 세운 수도원의
수련생으로 공부하던 중 삼촌인 성 플라토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고 794년에는 플라토를 계승하여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와 플라토는 본처를 버리고 테오도타와 재혼하는 콘스탄티누스 6세 황제의 행위를 맹렬히
비난한 결과 테살로니카로 유배당하였다.
그래서 그의 공동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로마인이 세운 수도원에 정착하였다.
그의 지도로 이 공동체는 비잔틴 수도원의 신기원을 수립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두 차례나 유배당하였으며, 더욱이 레오 5세 황제는 성상파괴 정책을 재개하는 등
온갖 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한 위대한 성인이었다.
성 테오도루스는 속권과 교회의 권리를 구분지어 교회의 독립을 주장했던 인물이며,
성상공경의 정당성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의미에서의 수도회 개혁자였다.
그는 교의에 관한 논쟁적인 글을 비롯하여 교리서, 강론집 그리고 찬미가 등을 남겼고,
뛰어난 서예가로 알려졌으며 수도자들에게 예술을 장려했던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