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9월12일(土-복되신 동정마리아 성명) 福者유베날리스 안키나님..등

H-Simon 2009. 9. 11. 09:15

 

 9월12일(土-복되신 동정마리아 성명)
              福者유베날리스 안키나님..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으신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귀도  Guy 9월 12일 평신도 안더레흐트(Anderlecht) +1012년
2 레온시오 Leontius 9월 12일 순교자   +300년
3 마체도니오 Macedonius 9월 12일 순교자   +362년
4 발레리아노 Valerian 9월 12일 순교자   +300년
5 사체르도스 Sacerdos 9월 12일 주교 리옹(Lyon) +551년
6 세라피온 Serapion 9월 12일 순교자   +300년
7 셀레시오 Selesius 9월 12일 순교자   +300년
8 스트라톤 Straton 9월 12일 순교자   +300년
9 실비노 Silvinus 9월 12일 주교 베로나(Verona) +550년
10 아우토노모 Autonomus 9월 12일 주교,순교자 비티니아(Bithynia) +300년
11 아일베  Ailbe 9월 12일 주교 엠리(Emly) +6세기
12 성녀 에안스위다 Eanswida 9월 12일 수녀원장 포크스턴(Folkestone) +640년
13 복자
   안키나 **
Juvenal Ancina 9월 12일 주교,의사 살루초(Saluzzo) 1545-1604년
14 쿠로노토 Curonotus 9월 12일 주교,순교자 이코니움(Iconium) +258년
15 타시아노 Tatian 9월 12일 순교자   +362년
16 테오둘로 Theodulus 9월 12일 순교자   +362년
17 히에로니데 Hieronides 9월 12일 부제,순교자   +300년
총 17 성인

 

 

    ▶유베날리스 안키나(9.12)
 
성인명 유베날리스 안키나(Juvenal Ancina)
축일 9월 12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주교, 의사
활동지역 살루초(Saluzzo)
활동연도 1545-1604년
같은이름 안치나, 주베날리스

      

살루초의 복자 유베날리스 안키나(Juvenalis Ancina)


   유베날리스 안키나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포사노(에서 지방 귀족 가문인 두란도 안키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례 받을 때에 포사노의 수호성인인 나르니의 성 유베날리스의 이름을
따서 요한 유베날리스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그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몽펠리에대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사보이아의 몬도비로 갔고 부친의 사망 후에는
파도바대학교를 다녔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토리노에서 철학과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자신의 평소 소망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인술을 펴기 시작하였다.

   그는 게임이나 오락을 해본 일이 없다. 그의 유일한 오락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시를
쓰는 것이 고작이었고, 교회와 국가 간의 중대사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성 특히 토마스 모어(6월 22일)에 관한 두 편의 풍자시를 썼고,
‘그날 분노의 날’에 대한 메시지에 매료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도와 묵상에 더욱 몰두하고
세상일을 경시하기 시작했으며 하느님을 위한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사보이아 공작의 주치의로 초청받고 1575년에 로마에 갔다가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5월 26일)를 만나 오라토리오 회원이 되면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595년 그는 거의 10여 년 동안 나폴리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봉쇄생활을 갈구하였으나
살루초의 주교직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참으로 마지못해 주교직을 수행하다가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그는 1890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 성명 축일***

 

1. 성서에 있는 9명의 마리아 이름


마리아란 이름은 히브리 구약 성서에서 "미리암(MYRIAM)"이란 형식으로

나오고, 아라마이어로는 "마리암(MARYAM)"이며, 구약 성서의 희랍어

번역본에는 "마리암(MARIAM)"이나,

신약 성서의 희랍 어본은 "마리아(MARIA)"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 이름을

가진 여인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외에도 성서에 8명이 더 있다.


1) 모세의 누이. 그녀는 흔히 미리암으로 불리며,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를

   건넌 뒤에 찬미가를 불렀다(출애15,20-21). 그러나 나중에는 모세를

   반대하여 벌을 받았다(민수12).


2) 유다의 후손 미리암(1역대4,17)


3) 막달라 여자 마리아. 그녀는 "일곱 마귀에 시달렸던"(루가8,2) 여인인데,

    예수의 일행을 도왔다.


4) 라자로와 마르타의 누이인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충실히 듣는

    여인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칭송받았다(루가10,38-42).


5)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 그녀는 예수께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사실에 대한 증인이며, 또 빈 무덤의 증인이다(마르 15,40-47)


6) 클레오바의 아내 마리아(요한19,25)는 위의 번호 5)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7)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인 마리아, 베드로가 예루살렘 감옥에서 풀려나온

    뒤에 이 마리아 집으로 가서 기도드렸다(사도12,12)


8)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안해 달라고 부탁했던,

   로마의 여신도 마리아, "여러분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한 마리아에게 문안해

   주십시오"(로마16,6).


2. 이 이름의 의미.


  마리아란 이름은 언어학적이기 보다는 신심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해 왔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칭호에 따라 해석이 구구하다.

마리아 이름을 처음으로 해석했던 분은 성 예로니모인데,

그는 "바다"(YAM)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을 기초로하여

스틸라 마리스(STILLA MARIS)가 나왔고, 의미는 "바다의 물방울"이며,

여기선 바다는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필사가의 잘못에 의하여 스틸라 마리스가

"스뗄라 마리스(바다의별)" 가 되어 버렸다.

그 이후 "바다의 별"이 마리아의 의미가 되어버렸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설명 역시 예로니모가 했는데, 그는 아라마이어로 "주님"을 뜻하는

마르(MAR)에 근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해석이 더 타당하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졌고, 현대어로 "귀부인"이란 뜻으로 해석되어 마리아께

적용하는 통상적인 의미가 되었다.

이리하여 이탈리아어로는 "나의 귀부인" 마돈나(MADONNA)이고,

프랑스어로는 같은 뜻으로 노뜨르담(NOTRE DAME)이라고 한다.


  현대 언어학에 따르면 마리아의 이름은 세 가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첫째는 "만족하다, 풍만하다 혹은 뚱뚱하다"는 에집트어 "마라(MARA)"와

관련시켜서, 즉 근동 여성미를 보는 관점에 따라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다.

 두 번째 해석은 에집트어로 "사랑스럽다, 귀엽다"는 뜻이 있는

마리(MARI)와 마리아를 결부시킨 것이다.

 세 번째를 마리아를 팔레스티나 원주민들의 말과 결부시킨 해석인데,

이것이 오늘날 가장 타당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1929년에우가릿에서 발견된 한 석판의 "므림"(MRYM)이란 글자를

합당한 증거물로 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동사 RWM에서 나왔고,

자의적인 뜻은 "가장 높다" "존귀하다"이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는 "존귀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분" "존엄하신 분"이란

의미를 갖는다. 신앙적으로 보더라도 이 해석이 타당한 것은 마리아께서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3. 성모 성명 축일


성모 성명의 전례적인 축일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었고, 1513년에 성좌로부터

승인되었다. 그리고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은 비엔나를 점령하고 사방 세계를

위협하던 터키인에 대해 폴란드 왕 요한 소비에스키가 거둔 승리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축일을 전 교회가 지내도록 명하였다(1683년),

따라서 성모 성명 축일의 날짜는 이 승리일인 9월 12일에 확정되었다

(성모 탄생 축일 후 4일째 되던 날),

그리고 1970년의 전례 개혁 이전까지의 로마 교회력에는 이 축일을 엄수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9월 8일의 성모 성탄 축일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교회력에서 삭제되었다.


                                                                  『마리아 사전』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