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8월13일(木) 聖폰시아노교황과 聖히플라토司祭순교자님..등

H-Simon 2009. 8. 12. 14:01

 

 
8월13일(木) 聖폰시아노교황과
               聖히플라토司祭순교자님..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한 없으신 사랑으로 강복해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복자 노벨로네** Novellone 8월 13일 은수자   +1280년
2 성녀 라데군다 ** Radegund 8월 13일 왕후,수녀원장   518-587년
3 막시모  Maximus 8월 13일 수도원장,증거자   580-662년
4 베닐도 ** Benildus 8월 13일 교사,수사   1805-1862년
5 비그베르토  Wigbert 8월 13일 신부,수도원장 프리츨라(Fritzlar) +738년경
6 John Berchmans 8월 13일 증거자   1599-1621년
7 복자 윌리엄 프리먼 William Freeman 8월 13일 순교자   1558-1595년
8 복녀 제르트루다  Gertrude 8월 13일 동정녀 알텐베르크(Altenberg) +1297년
9 성녀 첸톨라 Centolla 8월 13일 순교자   +304년
10 카시아노  Cassian 8월 13일 순교자 이몰라(Imola) +연대미상
11 카시아노 Cassian 8월 13일 주교,순교자 토디(Todi) +4세기
12 폰시아노 ** Pontian 8월 13일 교황,순교자   +235년
13 성녀 헬레나 Helen 8월 13일 순교자   +304년
14 히폴리토** Hippolytus 8월 13일 신부,순교자,교부 로마(Roma) 170/175?-235년
총 14 성인
 
 
 
 
      ▶노벨로네(8.13)
 
성인명 노벨로네(Novellone)
축일 8월 13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은수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280년
같은이름  
 
   노벨로네는 파엔그라 출신으로서 신기료장수로 지내던 사람이다.
그가 어릴 때에는 하느님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성장하였으나, 혼인성사를 받을 때부터
그의 무신론적인 생활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는 24세 때에 중병을 앓았는데 그는 이 병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였고,
회복되자마자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어 스스로 고행을 시작하였다.
그는 로마 순례 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할 때에는
맨발로 여행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책망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그의 아내가 문제였다.
가사는 돌보지 않고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만 돌보는 남편을 야속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아내가 죽자, 그는 은수생활을 꿈꾸고 의논한 결과
카말돌리회에 들어가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카말돌리 은수자들의 움막 곁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철저한 기도생활을 하여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는 46세의 일기로 운명하고, 파엔그라 대성당에 안장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라데군다(8.13)
 
성인명 라데군다(Radegund)
축일 8월 13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왕후, 수녀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518-587년
같은이름 라데군드, 라데군디스

 


   성녀 라데군다는 프랑크족의 침략으로 인하여 고향을 등지고 독일 중부 튀링겐으로 이주하였고,
20세 때에 클로테르 1세 왕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였다.
남편의 성격은 매우 난폭하였지만, 그녀는 인내하여 10여 년을 살다가
자기 오빠가 살해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왕을 떠났다.
그녀는 누아용에서 주교의 도움을 받아서 은신하다가 푸아티에에 수녀원을 세웠다.

   그녀는 이곳에 살면서 시인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12월 14일)와 우정을 나누었는데,
그는 나중에 이 수녀원의 고문이 되었다.
이 수녀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정되는 유물로써 유명한데,
성 베난티우스는 이 수녀원의 십자가를 보고 저 유명한 찬미가인 “왕의 깃발이 앞장서니…”,
“내 혀는 영광스런 승리를 노래하리…” 등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성녀 라데군다의 전기도 썼다.
 
 
 
 
 
     ▶베닐도(8.13)
 
성인명 베닐도(Benildus)
축일 8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사,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805-1862년
같은이름 베닐두스
 

   프랑스인들이 풍요의 땅이라고 부르는 리마뉴에는 투레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는 12세기의 로마네스크풍의 멋진 성당이 있다.
성 베닐두스(또는 베닐도)는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피에르 로망송이라 불렸다.
12년 후 그는 같은 성당에서 첫 영성체를 했으며, 영적인 기질도 뛰어났지만
지적인 면도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는 그 후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이 세운 ‘그리스도교 학교 수도회’에 입회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2년 동안 인내와 기도로써 더 준비하여 마침내 입회 허락을 받았다.

   그는 이 수도회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또 학교들을 세웠다.
36세 때 그는 프랑스 남부의 소그스에 학교와 수도원을 세운 후 그곳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오로지 사도직을 위하여 산다. 만일 내가 잘못을 행하면
아이들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으니,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그를 평한 어느 제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
"베닐도는 천사처럼 선하고 성인처럼 사신 분이다. 훌륭한 교사였다.
엄격했지만 항상 따뜻한 분이었다. 격려와 사랑을 주셨지만 고된 일은 스스로 하도록 시켰다."
그는 1948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폰시아노(8.13)
 
성인명 폰시아노(Pontian)
축일 8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35년
같은이름 본시아노, 본시아누스, 폰시아누스, 폰씨아노, 폰씨아누스, 폰티아노, 폰티아누스

 


   로마인 칼푸르니우스의 아들인 성 폰티아누스는 230년 7월 21일에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를
계승하여 교황위에 올랐다.
그는 232년 로마 교회회의를 소집하고 오리게네스 일파의 단죄를 확인하였다.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가 맨 처음으로 사르데냐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대립교황인 히폴리투스를 만나 교회와 화해토록 하였다.
 그는 235년 10월 29일 또는 30일에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히폴리투스의 시신과 함께 파비아누스 교황에 의하여 로마의 성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새로 마련된 교황 묘지에 묻혔다.
 
 
 
     ▶히폴리토(8.13)
 
성인명 히폴리토(Hippolytus)
축일 8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교부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170/175?-235년
같은이름 히뽈리또, 히뽈리뚜스, 히폴리또, 히폴리뚜스, 히폴리투스
 
   학덕이 뛰어난 로마의 사제였던 성 히폴리투스(또는 히폴리토)는
리옹의 주교인 성 이레네우스(6월 28일)의 제자이며 초대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교황 성 제피리누스( 8월 26일)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에서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론적 이단,
특히 모달리즘(삼위일체 하느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양태설)과
사벨리우스주의(사벨리우스의 이단적인 삼위일체설)에 대한
교황의 관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10월 14일)가 217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성 히폴리투스는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대립교황으로 등극하고
성 칼리스투스의 후계자인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 5월 25일)와
교황 성 폰티아누스( 8월 13일)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그는 235년 막시미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교황 성 폰티아누스와 함께
사르데냐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과 화해하였다.
그는 사르데냐에서 운명하였는데, 갖은 고문 끝에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반이단 총론”이란 저서이다.
이외에도 그는 "다니엘서 주석"과 "아가서 주석"도 저술하였고, “사도 전승”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그리스 교부의 한 사람으로 교회 저술가이자 최초의 대립교황이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