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덕이 뛰어난 로마의 사제였던 성 히폴리투스(또는 히폴리토)는
리옹의 주교인 성 이레네우스(6월 28일)의 제자이며 초대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교황 성 제피리누스( 8월 26일)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에서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론적 이단,
특히 모달리즘(삼위일체 하느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양태설)과
사벨리우스주의(사벨리우스의 이단적인 삼위일체설)에 대한
교황의 관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10월 14일)가 217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성 히폴리투스는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대립교황으로 등극하고
성 칼리스투스의 후계자인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 5월 25일)와
교황 성 폰티아누스( 8월 13일)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그는 235년 막시미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교황 성 폰티아누스와 함께
사르데냐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과 화해하였다.
그는 사르데냐에서 운명하였는데, 갖은 고문 끝에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반이단 총론”이란 저서이다.
이외에도 그는 "다니엘서 주석"과 "아가서 주석"도 저술하였고, “사도 전승”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그리스 교부의 한 사람으로 교회 저술가이자 최초의 대립교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