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7월30일(木) 聖베드로 크리솔로고主敎學者님..등

H-Simon 2009. 7. 29. 11:33

 

 
7월30일(木) 聖베드로 크리솔로고主敎學者님..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의 아름다운 삶을 통해,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에게,

            아버지의 한 없으신 사랑으로 강복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도나틸라 Donatilla 7월 30일 동정 순교자   +304년
2
만딕 **
Leopold Mandic 7월 30일 신부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1866-1942년
3 루피노 Rufinus 7월 30일 순교자 아시시(Assisi) +1세기
4 복자 Richard Fetherstone 7월 30일 순교자   +1540년
5 성녀 막시마 Maxima 7월 30일 순교자   +304년
6 복자 만네스 Mannes 7월 30일 수사   +1230년경
7 복자 베드로 Peter 7월 30일 수도원장 모글리아노(Mogliano) 1442-1490년
8 Peter Chrysologus 7월 30일 대주교,교회학자 라벤나(Ravenna) 380-450년
9 성녀 세쿤다 Secunda 7월 30일 동정 순교자   +304년
10 센넨 ** Sennen 7월 30일 순교자   303년?
11 복자 아르칸젤로 Archangelo 7월 30일 수도원장 칼라타피미(Calatafimi) 1390-1460년
12 압돈 ☞10 Abdon 7월 30일 순교자   303년?
13 복자
포웰  ☞4
Edward Powell 7월 30일 순교자   +1540년
14 복자 에버라드 한스 Everard Hanse 7월 30일 순교자   +1581년
15 올라보 Olav 7월 30일 스웨덴(Sweden) +1024년
16 우르소 Ursus 7월 30일 주교 오세르(Auxerre) +508년
17 성녀 율리타 Julitta 7월 30일 과부,순교자 카이사레아(Caesarea) +303년경
18 타트윈 Tatwin 7월 30일 대주교 캔터베리(Canterbury) +734년
19 복자 토마스 아벨 Thomas Abel 7월 30일 순교자   1497-1540년
총 19 성인
 
 
 
 
   ▶레오폴도 만딕(7.30)
 
성인명 레오폴도 만딕(Leopold Mandic)
축일 7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활동지역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
활동연도 1866-1942년
같은이름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1866년 5월 12일 달마티아의 카스텔누오보에서 태어난 성 레오폴두스 만딕은 매우 작은 키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겸손함, 침착함, 하느님의 현존 앞에 자신의 전부를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지녔었다. 그는 우디네의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1884년 수련기를 보내고, 이탈리아의
파도바와 베네치아에서 수학한 후 1890년 사제품을 받으며 레오폴두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동유럽에서 선교를 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네치아 지방에서 소임을
받았으며 파도바에서 40년 동안 살게 되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지역에서 성장한 그는 교회의 완벽한 일치로의 재건을 꿈꾸고
노력했다.
유명한 아르스(Ars)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처럼 성 레오폴두스의 특별한 은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했듯이 그는 고해신부와 영적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1962년 성 레오폴두스의 복자품에 관련된 결의문에서 라라오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분의 일상은 이러했다. 아침 일찍 미사를 지낸 후 고해소에 하루 종일 앉아 고백을 들었다.
어떠한 불만도 없이 40년 동안 이 소임을 충실히 해냈다.”

   그는 용서와 평화를 증진하는 중심이 되었고, 그의 삶은 화해의 성사(고해성사)의 중요성과
이 성사를 통해 지상 여정에서 얻게 되는 안식의 중요성에 대해 사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그의 시복 시성은 단기간에 추진되었다. 당시 교회법은 후보자가 복자품에 오르기 전에 50년이
경과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성 레오폴두스의 성덕이 너무도 명백해서 30년이 조금 지난
197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983년 10월 16일
같은 교황에 의해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리카르도 페터스톤(7.30)
 
성인명 리카르도 페터스톤(Richard Fetherstone)
축일 7월 30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40년
같은이름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에드워드 포웰은 웨일스 출신으로 옥스퍼드의 오리얼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150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523년 그는 루터를 반박하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은 옥스퍼드 대학뿐만 아니라 솔즈베리의 주교로부터 큰 칭찬을 받을 만큼 비중 있는
논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높았기 때문에 그는 국왕의 결혼 무효소송 문제에 있어서
카타리나 측의 법률가로 뽑혔다.
1529년에 열린 재판정에서 그는 왕에게 반박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였고
이를 책으로 펴냈다. 그의 놀라운 이론과 웅변은 헨리 8세 측의 미움을 샀으며,
1534년에 도체스터 감옥에 갇혔다가런던탑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거의 6년 동안이나 옥중생활을 하면서도 국왕의 수장령을 끝까지반대하여 순교하였다.

   리카르두스 페터스톤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는 교구사제로서
케임브리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식한 사제였다.
그의 뛰어난 신심과 학식 때문에 그는 메리 공주의 라틴어 가정교사가 되었다.
1529년에 열린 재판정에서 그도 역시 카타리나 왕비의 결혼은 정당하다는 편에
투표함으로써, 요한 피셔 추기경과 에드워드 포웰 박사 및 다른 동료들과 함께 런던탑에
갇혔다가 순교하였다.
그는 1886년 레오 13세(Leo XIII) 교황이 시복한 영국 순교자 54명 중의 한 명이다.
☞13번 성인님과 같은 내용....함께 참조하세요.
 
 
 
 
   ▶베드로 크리솔로고(7.30)
 
성인명 베드로 크리솔로고(Peter Chrysologus)
축일 7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대주교, 교회학자
활동지역 라벤나(Ravenna)
활동연도 380-450년
같은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이몰라(Imola) 출신인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는 이몰라의
주교 코르넬리우스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부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3세에 의하여 라벤나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이 같은 엉뚱한 일은 교황이 환시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베드로는 규율이
극도로 이완된 교구를 크게 일신하였음으로 교황의 환시는 증명되었다.

   그는 자선활동으로 매우 유명하였고, 또 뛰어난 설교를 하였으므로 ‘크리솔로고’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은 황녀 갈라 플라시디아는 그를 여러 방면으로 도왔다.
또한 그는 에우티케스를 권고하여 콘스탄티노플 시노드의 파문 결정에 대하여 자신을 변호하지
않게 하였으며, 오세르의 성 게르마누스의 장례식을 집전하였다.
그는 1729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센넨(7.30)
 
성인명 센넨(Sennen)
축일 7월 3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303년?
같은이름 세넨, 쎄넨, 쎈넨

    Sts Abdon and Sennen


   성 압돈(Abdon)과 센넨 두 사람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치하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던페르시아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료들을 위로 격려하였고, 순교자들의 시신을 모아
장례지내는 등 힘든 일을 많이 하였다.
그들이 로마(Roma)로 압송되어 이방의 신 앞에 희생을 드리라는 명을 거절하다가
야수들의 밥이 되었다. 이 야수들은 사자나 곰이 아닌 바로 검투사들이었다.
로마의 신자들은 이 페르시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이들의 유해를 티베르 강가 포르토로 옮겼다.
☞12번 성인님과 같은 내용....함께 참조하세요!
 
 
 
 
 
 
  ▶에버라드 한스(7.30)
 
성인명 에버라드 한스(Everard Hanse)
축일 7월 30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81년
같은이름 아벨라두스, 에버라트, 에벨라도
 
   에버라드 한스는 영국 잉글랜드 노샘프턴셔의 어느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한 후에 선교사가 되어 가장 훌륭한 삶을 전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대중 설교자가 되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1579년에 프랑스의 랭스로부터 영국
선교단으로 파견된 동생 윌리엄의 개종과 호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나,
때마침 중병을 앓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늘이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이상한
두려움으로 가득하였다.
한편으로는 그의 동생이 보여주는 뛰어난 표양과 말이 그로 하여금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기회를 만들어 마침내 스스로 굴복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가 영국 교회로부터 은전 받기를 거절함과 동시에 그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 후 그는 랭스에서 9개월 동안 공부하였는데, 특히 윤리신학에 뛰어난 적성을 보였다.
1581년 3월 25일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4월 24일에는 에반스 둑켓으로 추정되는 다른
사제와 함께 영국 선교사로 출발하였다.

   그는 겨우 3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하다가 가톨릭 사제임이 발각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 동생에게 편지를 썼는데, “하느님은 자비하시다”는 말이
가장돋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를 기억하고, 자신이 빚진 돈을 갚아 주며 또 빌린 책을
돌려주라는 부탁이 있었고, 죽는 날을 기다리면서 그날은 ‘행복한 날’이라고 하였다.
그는 런던의 사형 집행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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