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7월16일 (木-카르멜산의 복되신 童貞마리아),聖女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H-Simon 2009. 7. 15. 19:06

 

 

7월16일 (木-카르멜산의 복되신 童貞마리아)

         聖女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의 아름다운 삶을 배워,

             주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저희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평화로 강복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니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 함께 참조할 해당 번호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돔니오 Domnio 7월 16일 순교자 베르가모(Bergamo) +295년
2 성녀 라이넬다 Reineldis 7월 16일 동정 순교자   +680년경
3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 ** Mary Magdalen Postel 7월 16일 설립자,수녀원장   1756-1846년
4 복자 밀로 Milo 7월 16일 주교 테루안(Therouanne) +1158년
5 비탈리아노 Vitalian 7월 16일 주교 카푸아(Capua) +연대미상
6 비탈리아노 Vitalian 7월 16일 주교 오시모(Osimo) +776년
7 시세난도** Sisenandus 7월 16일 순교자 코르도바(Curdoba) +851년
8 아테노제네 Athenogenes 7월 16일 주교,순교자   +305년경
9 에우스타키오 Eustachius 7월 16일 주교,증거자 안티오키아(Antiochia) +340년경
10 파우스토 Faustus 7월 16일 순교자   +250년
11 풀라도 Fulrad 7월 16일 수도원장 생드니(Saint-Denis) +784년
12 헬리에르 Helier 7월 16일 순교자 통그레스(Tongres) +6세기
총 12 성인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7.16)
 
성인명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y Magdalen Postel)
축일 7월 16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756-1846년
같은이름 마들렌, 막딸레나, 메리, 미리암, 포스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ia Magdalena Postel)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1756년 11월 28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르플뢰르에서 요한 포스텔과 테레사 러발로 사이에서 태어나
율리아 프란치스카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보다 4년 먼저인 8세 때에 첫 영성체를 하였다.
그 후 지방 학교를 나온 후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생활을 소망하였으나 결국 사적인 서원만 발하였다.
바르플뢰르로 돌아온 뒤에 그녀는 여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프랑스
혁명 동안에 성직자법을 거부하는 교회 인사들의 지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혁명의 와중에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와 보속의 실천하던
그녀는 작은 형제회의 3회원으로 입회하였다.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 끝나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혁명의 후유증, 특히 신자들의 종교적 무관심을 치유하고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래서 여성 교우들을 모집하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이 계기가 되어 1807년 61세의
늦은 나이에 '자비의 그리스도인 학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새로운 이름을 수도명으로 선택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수녀회 설립 초기에 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하였다.
결국 1830년 생-소뵈르-러-비콩트에 본원을 개설하였고, 183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 후 이 수녀회는 날로 발전해 나갔고,
설립자는 거의 40여 년 동안 수녀회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다가
1846년 7월 16일 본원에서 사망하였다.
그녀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시세난도(7.16)
 
성인명 시세난도(Sisenandus)
축일 7월 16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코르도바(Curdoba)
활동연도 +851년
같은이름 시세난두스
 
   포르투갈 에스트레마두라의 바다호스에서 태어나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사망한 성 시세난두스(또는 시세산도)는 십자가의 사람이었다.
그는 십자가 표시를 자신과 모든 것에다 그렸다. 아침에 일어나 얼굴에 십자
표시를 하고 빵에다, 여행하는 길에다 십자표시를 했다.
걸음걸음과 각 귀퉁이마다 십자 표시를 했다. 땅에 십자가를 그리거나 제대 위에 십자가를 높이 긋기도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신심이 출중했던 그는 신앙으로부터 희망하는 법을 배웠고
십자가의 묵상을 통해 자비를 배웠다.
십자가에 이끌린 그는 코르도바로 가서 라틴어, 신학, 교회법, 전례 등 사제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과목을 배우고 나서 부제품을 받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의 순교자인 성 아키스클루스(11월 17일) 성당에
머무르던 그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성 아키스클루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다.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십자가가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도 성인에게 열정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십자가에 동참할 수 있도록 청했다.
그리고는 하느님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그의 믿음은 더욱
커지고 주저함은 적어졌다.
그는 코르도바에서 무어족의 왕인 아브탈 라흐만 2세에 의해 순교한 성 베드로, 성 발라본수스, 성 사비니아누스, 성 비스트레문두스, 성 하벤티우스, 성 예레미야,(이상 6월 7일)의 부르심에 두려움 없이 응답할 준비를 하였다.

   무어인들은 성 시세난두스를 앞서 순교한 이들과 같은 일행이라고 주장했고,
성 시세난두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겼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십자가가 열쇠인 그에게 잠긴 문이란 없었기에 감옥마저도 그의 자유를 빼앗아
가지는 못했다. 그는 다음날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았으며 간수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지만 끝까지 쓰지 못하고 십자가로 마쳐야 했다. 그는 자신을 사형에 처하기 위해 호송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그의 강한 힘과 용기를 보시고 죽음이 다가왔으며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셨다. 병사들이 와서 그에게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며 형장으로 끌고 갔으나 그는 오히려 성당에 들어가는 듯 십자가를
그었다.
 많은 군중들 앞에서 참수당할 때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십자가를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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