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상식

새로 시복을 추진하는 124위 순교자는 누구인가?

H-Simon 2009. 7. 9. 05:17

새로 시복을 추진하는 124위 순교자는 누구인가?

   처음 시복을 추진하려 할 때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중요한 의문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성인이 103위나 계시는데 그분들이나 잘 공경하면 되지 또 무슨 시복을 추진하는가?’, ‘순교자들을 그냥 공경하면 되는 것이지 번잡스럽게 시복시성은 왜 하는가?’, ‘오래된 조선시대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은 그만두고 이제는 6. 25 때 순교하신 분들을 시복시성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들이었 다. 심지어 나중에 124위 순교자를 시복추진 대상자로 선정하였다고 하니까 103위 성인에다 21위 순교자를 추가해서 새롭게 시복을 추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로이 시복을 추진하는 124위 순교자들은 103위 시복시성을 추진할 때 제외된 분들이다. 그러니까 103위 성인과 합쳐서 다시 시복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빠진 이유는 차츰 설명하기로 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103위 시성이 이루어짐으로써 어떤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미 시성이 된 103위 순교자는 기해박해(1839) 이후에 순교한 분들이다. 하지만 기해박해 이전에도 박해는 있었고 순교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사정에 의해 기해박해 이후에 순교한 103위를 먼저 시성했다. 기해박해 이후 순교자들을 먼저 시복시성하다보니 103위 순교자들의 조상이나 스승, 선배들이 성인 명부에 들지 못하게 되었고, 후손이나 제자, 후배들이 먼저 성인이 되어 공경받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 시복을 추진하는 124위 중에는 기해박해 이후의 순교자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많은 분들이 그 이전에 순교한 분들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려 한다. 성(聖)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신부 집안이 좋은 예이다. 김대건 신부 집안의 첫 순교자는 김신부의 증조부 김진후(金震厚, 1738~1814)이고, 김신부의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金宗漢, 1768~1816)도 순교하였다. 두 분은 모두 기해박해 이전에 순교하였다. 그런데 이 두 분은 현재 성인품에 오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분들의 후손인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金濟俊, 1796~1839)과 김신부의 당고모(堂姑母) 김데레사(1796~1840)와 김대건 신부는 기해박해 이후에 순교하였고, 현재 모두 성인품에 올려져 있다.

   한 마디로 김대건 신부 집안에서 기해박해 이후에 순교한 3위는 현재 모두 성인이 되었고, 기해박해 이전 박해 때 순교한 조상들은 모두 성인품에는 물론 복자품에도 올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현재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와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을 시복하기 위해 그들을 124위 시복후보자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다른 성인 집안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 또 굳이 어느 한 집안이 아니더라도, 먼저 순교한 분들이 오히려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불균형을 속히 바로잡기 위해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윤민구(도미니코) 신부 손골성지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