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38년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첫 번째 귀향한 유태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우선 ‘번제의 제단’을 세웠다(에즈 3,1-6). 그리고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지방민’
(사마리아인과 아시리아의 식민지 주민)의 방해로 이 첫 번째 재건축의 시도는
좌절되었으니, 이 지방민들은 옛날 아시리아 왕들이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어온 이교도들의 후손으로, 야훼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우상숭배로 오염시킨
자들이다(에즈 3,7-13; 4,1-5 참조). 그래서 그 후 18년 동안 성전을 다시 짓는
공사는 중단된 채였다.
그러던 중 522년 페르시아제국의 캄비세 왕이 죽고 다리우스 1세가 등극하게 되었는데, 귀향한 예루살렘의 유태인 공동체는 이 사건을 하느님의 간섭을
예고하는 징표로 보았다(하깨 2,21-22). 이러한 징표를 느끼던 유태인들 앞에
하깨와 즈가리야는 예언자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성 하깨는 6월의 신월제(新月祭)를 지내던 날, 정확히 말하면 기원전 520년
8월 27일에 설교를 시작하여 그 해 12월말까지, 그러니까 약 넉 달 동안 활약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하깨 1장 14절이 증언하듯 성공적이었고,
성전 재건축을 위한 예언활동은 즈가리야에 의해 계속되었다(에즈 5,1-2).
히브리어 ‘하깨’(Haggai)라는 말은 ‘나의 축일’이란 뜻인데 이 이름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하나의 열쇠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예언자가 예배와 성전에 큰 관심을 쏟고 성전 주변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깨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 예언자의 후계자로
보인다(1사무 10,9-10; 2열왕 4,38; 예레 35,4).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매우 가난하였다. 게다가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던 지방민들의 방해로 시달림을 받아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깨는 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설하며 귀향한 공동체가 겪는 가난의
원인은 바로 종교적 열성이 저하되고 성전을 짓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하며
이방민족들의 왕국이 뒤흔들리는 것은(2,7-22 참조) 하느님께서 또다시 당신
백성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증거라고 하였다.
예언자들의 전통적인 설교도식에 따라 하깨는 귀향한 유대 공동체가 평화를
선물로 받고(2,9) 이방민족들의 보화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며(2,7-9를 이사 60,5-13과 비교) 또한 즈루빠벨(2,20-23)이 다윗의 후예 메시아를 대변하고 있다고
예언하였다.
하깨의 활동기간은 아주 짧았지만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예배를 정화시키고 희망을 진작시켰다. 그리고 솔로몬이 지은 첫 성전보다 더 영화로운 제2 성전과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할 왕적인 메시아에 대한 그의 예언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를 마지막 성전이자 종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인도한다.
비록 하깨와 즈가리야의 설교로 기원전 515년에 완공된 제2 성전은
사라졌지만 하깨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성전인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 신앙의 요구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