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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土-복되신 동정마리아), 포르투갈의 聖女엘리사벳님..등

H-Simon 2009. 7. 3. 13:06

 

7월4일(土-복되신 동정마리아),

        포르투갈의 聖女 엘리사벳님..등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의 기도와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사랑과 평화로 강복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나아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남파니온 Namphanion 7월 4일 순교자   +180년
2 라우리아노 Laurian 7월 4일 주교,순교자 세비야(Sevilla) +544년
3 복자 베드로  Peter 7월 4일 추기경 룩셈부르크(Luxemburg) 1369-1387년
4 성녀 베르타  Bertha 7월 4일 과부,수녀 블란지(Blangy) +725년경
5 복자 빌리암  William 7월 4일 수도원장 히르사우(Hirsau) +1091년
6 성녀 세바스티아 Sebastia 7월 4일 순교자   +연대미상
7 안드레아 Andrew 7월 4일 주교,시인 크레타(Creta) 660-740년
8 복자 에드워드 풀트롭 Edward Fulthrop 7월 4일 평신도,순교자   +1597년
9 성녀 엘리사벳 ** Elizabeth 7월 4일 여왕,3회원 포르투갈(Portugal) 1271-1336년
10 오도  Odo 7월 4일 주교 캔터베리(Canterbury) +959년
11 복자 요한 고르넬리오 John Cornelius 7월 4일 순교자   +1594년
12 울다리코  Uldaricus 7월 4일 주교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890-973년
13 복자 윌리엄 앤들비 William Andleby 7월 4일 신부,순교자   +1597년
14 유쿤디아노 Jucundian 7월 4일 순교자 아프리카(Africa) +연대미상
15 인노첸시오 Innocent 7월 4일 순교자   +연대미상
16 테오도로 Theodore 7월 4일 주교,순교자 키레네(Cyrene) +310년
17 복자 토마스 와콥 Thomas Warcop 7월 4일 평신도,순교자   +1597년
18 하깨 ** Haggai 7월 4일 구약인물,예언자   +6세기BC
19 복자 헨리코 Henry 7월 4일 수도원장,순교자   +1597년
20 호세아 ** Hosea 7월 4일 구약인물,예언자   +8세기BC
총 20 성인

 

    ▶엘리사벳(7.4)
 
성인명 엘리사벳(Elizabeth)
축일 7월 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여왕, 3회원
활동지역 포르투갈(Portugal)
활동연도 1271-1336년
같은이름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이사벨, 이사벨라

 


   에스파냐 아라곤의 왕 페드로 3세와 시칠리아의 왕 만프레디의 딸인
콘스탄스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11월 17일)을 따라 같은 이름을 지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포르투갈의 왕 디니스 1세와 결혼하여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하다가 결혼 7년째 되던 해에 자녀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디니스 1세는 능력 있는 강력한 통치자였지만 남편으로서는 칭찬받지
못할 사람이었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불신앙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낳지
않은 서자들의 교육까지 담당하였으며, 끊임없이 기도와 경건한 삶을
추구하여 병원, 고아원, 매춘 여성들의 보호소, 양로원 등을 설립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남편의 냉대와 불신앙을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였다.
그리고 1297년 이복형제들에게 관대한 아버지의 행동에 분개하던 아들
아폰소 4세와 남편 디니스 1세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고 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오해를 받아 한때 알랑케로 추방되기도 했던
그녀는 1324년 남편 디니스 1세가 병을 얻자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었다.
극진한 그녀의 정성에 감동한 남편은 회심하였지만 이듬해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이 사망한 후 성녀 엘리사벳은 쿠임브라의 집으로 은거하였는데,
그곳에는 자신이 세운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가 있어서 인근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펴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녀는 수녀가
되겠다는 이상을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엄격한 보속생활과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1336년 7월 4일 에스트레모스에서 사망하여 쿠임브라의 수도회
성당에 묻혔다. 성녀 엘리사벳은 1516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복녀로
선언됨으로써 쿠임브라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공경 예절이 허락되었으며,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1630년 로마 순교록에 성녀의 축일이 7월 4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169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가 7월 8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두 날을 모두 축일로 인정하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념하도록 하고 있다. 그녀는 흔히 포르투갈의 이사벨라로 알려져 있다.

 

  ▶하깨(7.4)
 
성인명 하깨(Haggai)
축일 7월 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세기BC
같은이름 하가이, 하까이

 

예언자 하깨(Haggai)


   기원전 538년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첫 번째 귀향한 유태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우선 ‘번제의 제단’을 세웠다(에즈 3,1-6). 그리고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지방민’
(사마리아인과 아시리아의 식민지 주민)의 방해로 이 첫 번째 재건축의 시도는
좌절되었으니, 이 지방민들은 옛날 아시리아 왕들이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어온 이교도들의 후손으로, 야훼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우상숭배로 오염시킨
자들이다(에즈 3,7-13; 4,1-5 참조). 그래서 그 후 18년 동안 성전을 다시 짓는
공사는 중단된 채였다.

   그러던 중 522년 페르시아제국의 캄비세 왕이 죽고 다리우스 1세가 등극하게 되었는데, 귀향한 예루살렘의 유태인 공동체는 이 사건을 하느님의 간섭을
예고하는 징표로 보았다(하깨 2,21-22). 이러한 징표를 느끼던 유태인들 앞에
하깨와 즈가리야는 예언자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성 하깨는 6월의 신월제(新月祭)를 지내던 날, 정확히 말하면 기원전 520년
8월 27일에 설교를 시작하여 그 해 12월말까지, 그러니까 약 넉 달 동안 활약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하깨 1장 14절이 증언하듯 성공적이었고,
성전 재건축을 위한 예언활동은 즈가리야에 의해 계속되었다(에즈 5,1-2).
히브리어 ‘하깨’(Haggai)라는 말은 ‘나의 축일’이란 뜻인데 이 이름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하나의 열쇠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예언자가 예배와 성전에 큰 관심을 쏟고 성전 주변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깨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 예언자의 후계자로
보인다(1사무 10,9-10; 2열왕 4,38; 예레 35,4).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매우 가난하였다. 게다가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던 지방민들의 방해로 시달림을 받아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깨는 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설하며 귀향한 공동체가 겪는 가난의
원인은 바로 종교적 열성이 저하되고 성전을 짓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하며
이방민족들의 왕국이 뒤흔들리는 것은(2,7-22 참조) 하느님께서 또다시 당신
백성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증거라고 하였다.
예언자들의 전통적인 설교도식에 따라 하깨는 귀향한 유대 공동체가 평화를
선물로 받고(2,9) 이방민족들의 보화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며(2,7-9를 이사 60,5-13과 비교) 또한 즈루빠벨(2,20-23)이 다윗의 후예 메시아를 대변하고 있다고
예언하였다.

   하깨의 활동기간은 아주 짧았지만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예배를 정화시키고 희망을 진작시켰다. 그리고 솔로몬이 지은 첫 성전보다 더 영화로운 제2 성전과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할 왕적인 메시아에 대한 그의 예언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를 마지막 성전이자 종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인도한다.
비록 하깨와 즈가리야의 설교로 기원전 515년에 완공된 제2 성전은
사라졌지만 하깨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성전인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 신앙의 요구를 하고 있다.

 
 
 
 
 
    ▶호세아(7.4)
 

 


   구약성서 예언서의 하나인 호세아서는 예언자 성 호세아가 쓴 것이다.
히브리어인 호세아(hoshea)는 ‘야훼가 구하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호세아는 구약 소예언자 중의 첫 번째 사람으로 베리(Beeri)의 아들이다.
그는 오지아스(기원전 789-740), 요아탐(기원전 740-736), 아카즈
(기원전 736-728), 에제키아스의 유다의 여러 왕 및 예로보암 2세(기원전 783-743)의 이스라엘 왕이 통치했던 시대에 예언하였다.
그의 출생지, 생애 등에 대해서는 호세아서를 통한 것 이외는 알 길이 없다.
그는 디블라임의 딸인 고멜과 결혼하여 3명의 자식을 낳았다(호세아서 1,2-9).
그렇지만 이 결혼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상징적인 것인지는
현재까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사랑과 망은(忘恩)을 대조시키고 있다.
야훼는 그 백성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한다.
야훼의 노여움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분노이며, 전의 잘못을 뉘우친
자식들이 자기의 팔 안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호세아서는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에 영향을 주었으며 신약성서에서 곧잘
인용되고 있다(마태 2,15; 9,13; 12,7 및 루가 23,30; 9,25 · 26; 1고린 15,55;
1베드 2,10; 묵시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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