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6월29일(월-聖베드로와 聖바오로使徒대축일) 聖女 엠마님..등

H-Simon 2009. 6. 28. 20:00

 

 

6월29일(월-聖베드로와 聖바오로使徒대축일)
                聖女 엠마님..등

 

       

                <6 월   예 수 聖 心 聖 月                    

 

             하느님,  성인 성녀님들의 기도와 공로에 힘입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저희를,

             아버지의 사랑과 평화로 강복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리옵나아다....아멘

                                             ****     **** 

                           

<일 람>......** 표시는 성인 개별로 전기를 수록하신 분 

번호   성 인 명   영 어 명   축 일   신 분   지 역   연 도 
1 성녀 마리아 Mary 6월 29일 신약인물,예수의 제자,부인   +1세기경
2 바오로 ** Paul 6월 29일 사도,순교자   +67년경
3 베드로 ** Peter 6월 29일 사도,순교자   +64년경
4 성녀 살로메 Salome 6월 29일 공주,은수자   +9세기경?
5 시로 Syrus 6월 29일 주교 제노바(Genova) +380년
6 성녀 엠마 ** Emma 6월 29일 과부,수녀 구르크(Gurk) +1045년
7 성녀 유디트  Judith 6월 29일 과부,은수자   +9세기경?
8 카시오 Cassius 6월 29일 주교 나르니(Narni) +538년
총 8 성인

 

 

 
베드로(6.29)
 
성인명 베드로(Peter)
축일 6월 2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4년경
같은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바오로(6.29)
 
성인명 바오로(Paul)
축일 6월 2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7년경
같은이름 바울로,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레아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
(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 연안을 따라
로마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엠마(6.29)
 
성인명 엠마(Emma)
축일 6월 29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수녀
활동지역 구르크(Gurk)
활동연도 +1045년
같은이름 헴마


   성 헨리쿠스 2세(7월 13일) 황제의 친척으로 헴마로도 알려진 성녀 엠마는
황후인 성녀 쿠네군다(3월 3일)의 돌봄 속에 황제의 궁중에서 성장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오스트리아 프라이자흐의 빌리암 백작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 소유의 광산에서 발생한 폭동 중에 두 자녀를
살해당하고 말았다.
빌리암 백작은 극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복수를 결심하기도 하였으나,
아내의 만류와 인도로 복수 대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로마 순례를 결심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운명하였다.

   이때부터 성녀 엠마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기로 결심하였다.
성녀 엠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여러 곳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우는 한편 자신이 구르크에 세운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어
일생을 보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938년에 승인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