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성지

루르드 성지

H-Simon 2008. 11. 20. 10:28

 루르드 성지


 

 

 

 



<프랑스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
1858.3.25(성모영보축일)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 라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 
("I am the Immaculate Conception") 

    동굴의 성모 1858년 루르드

성모님은 벨라데따의 입을 통해서 “통회하라! 통회하라!”고 
외치심으로써 당시 세계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보속의 필요성
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또한 라.살레뜨의 메시지를 반복하신 
것이기도 하다.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똑같은 뜻이다. 
이 말씀은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도 강조하셨다. 성모님은 
벨라데따와 같이 묵주의 기도를 하심으로써 묵주의 기도의 
가치를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성모송은 성모님 스스로에게 올리는 기도문이기 때문에 
통경하시지 않았지만 영광송은 벨라데따와 같이 통경하셨다.
성모님은 당신을 <하자없는 잉태>라고 칭하셨다. 그것은 이 중요한 
교리를 다시 강조함과 동시에 이를 선포한 교황 삐오 9세가 한 일을 
다시 확인하신 것이다. 
루르드의 놀라운 기적을 통해 성모님은 초자연적인 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신다. 
성모님은 또한 1년에 150만명이 순례하는 기념 성당을 남겨 놓으셨다. 
이 거대한 기도의 전당에서 일어난 영신적인 치료와 종교적인 열정은 
양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프랑스와 전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858년 이래 루르드 부근의 여러 지역에서는 순례자들이 끊임 없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곳이 전셰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정기 간행물 일람>을 보면 1924년과 1945년 사이에 쓰여진 수천 
가지의 기사 중 루르드에 관한 것은 단 세가지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중 한 필자는 루르드의 <심리적> 치료에 관해서만 썼을 뿐 
하느님이나 복되신 어머니께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쓰지 않았다.
신문 잡지도 그러하다.재미있고 중요한 기사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이 
본업인 기자들이라면 수많은 기적을 낳은 루르드는 당연히 그들의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무시해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생겼다.유태계 오스트리아인인 프란츠.
베르펠은 1840년 우연히 루르드에 가게 되었다. 그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프랑스는 이미 독일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베르펠은 나치스 독일군이 잡아 죽이려고 찾고 있는 유대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아내와 함께 스페인으로 
피신하려고 국경지대에까지 갔다. 그러나 경비가 철저해서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그 근처에 있는 
루르드에 숨어 있게 되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벨라데따와 성모님의 발현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후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비참하게 살던 어느날 나는 속으로 맹서했다. 내가 만일 
그 절망적인 상태를 벗어나 미국 땅에 발을 딛게 된다면 나는 만사
를 제쳐놓고 나의 모든 능력을 다 해 벨라데따의 노래를 부르겠다.”
그가 그러한 맹서를 한 것은 언제 독일군에게 잡힐지 모르며 또 
달아날 길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였다. 그러나 천만다행
으로 그는 그곳을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미국에 발을 딛게 
되자 자기의 맹서를 실천에 옮겼다. 원래 소설가인 
그는 <벨라데따의 노래>라는 소설을 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녀의 불길한 관계나 지저분한 성에 관한 
소설이 통상 베스트셀러가 되는 미국 사회에서 <벨라데따의 노래>
는 하룻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욱 그 책은 영화화되어 
미국과 전세계 곳곳의 영화관에서 상영되어 수백만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 책이나 영화를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적 같은 것은 믿지도 않는 소위 
<현대인>들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연이기엔 너무 우연이다.
프란츠 베르펠이 루르드라는 알지도 듣지도 못한 조그만 읍에 
가게된 것도, 신자도 아니면서 그리스도의 모친께 대한 얘기에 
그렇게 감명을 받아 소설을 쓰게되는 것도, 
그리고 비신자로서 그런 존경심을 가지고 얘기를 엮어나간 것도 
모두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마리.드.몽포르 
성인의 예언을 상기하면 대답은 어렵지 않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친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알려지시고 
더한 사랑과 더한 존경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아멘!
윗 내용은 돈.샤아끼 지음,오기선 역/『세기의 승리자』
에서 옮겼습니다. 
 


 

 

 

 



프랑스 루르드(Lourdes) 성모 발현지 

루르드는 프랑스 남부, 피레네산 기슭에 있는 인구 약 1만 7,000명의 마을이다. 
1858년 2월 11일, 이곳 가브 강가에 있는 동굴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셨다. 
벨라뎃다 수비르라는 한 가냘픈, 그러나 마음씨 곱고 효성스러우며 신앙심 
깊은 소녀 앞에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11일부터, 14일, 18일, 19일, 20일, 21일, 23일등 발현은 계속되었으며,열 한번 째 
발현 때 이곳에 성당을 세우라는 말씀이 있었다. 25일에는 발현하신 자리에 샘이 
솟았는데, 28일에 눈병을 앓던 남자가 그 샘물로 눈을 씻자, 당장에 깨끗이 나았다. 
7월16일에 열여덟번째의 마지막 발현이 있었는데, 샘물이 잇달아 기적을 나타냈다.
■ 성모 발현 
 벨라뎃다가 11-12세 무렵 집안이 기울어 땔감을 구하러 개울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는데, 갑자기 심한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리자, 동굴 입구에 
있는 찔레와 들풀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더니, 동굴 속에서 황금빛 구름이 피어
오르면서, 젊고 아름다운 귀부인의 모습이 똑똑히 떠올랐다. 
귀부인은 새하얗고 헐렁한 옷을 입고, 머리에서 어깨에 걸쳐서 흰 베일을 쓰고, 
옥색 띠를 매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에는, 금빛사슬에, 커다란 흰 구슬이 꿰인 
로사리오를 늘어뜨리고, 그녀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던졌다. 벨라뎃다가 열심히 
로사리오를 굴리며 기도를 하자, 귀부인도 로사리오를 하나씩 굴렸다. 
로사리오의 기도를 외고 있을 때, 귀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 발현 기간 동안 성모 마리아는 매번 벨라뎃다에게 메시지를 전하셨다.
8일째인 2월 24일 수요일에 "회개하시오. 죄인을 위해 기도하시오.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하였고, 그 다음
날에는 손가락으로 샘물의 원천을 가리키며 그 물을 마시고 씻도록 하였다. 
13일째인 3월 2일 화요일에는 "사제들에게 전해 이 곳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
오게 하고, 이곳에 성당을 짓게 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이야기는 곧 
여러 사람에게 알려져 이 '동굴의 여인'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자 
곧 사람들은 흩어져 갔다. 
3월 25일 목요일 아침, 벨다뎃다가 다시 동굴로 갔을 때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었
는데, 그때까지 네 번에 걸쳐 반복된 질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던 이 성모마리아는 열 여섯 번째의 발현 때 그녀에게 고했다.
(Immaculata Counceptio)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다." 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벨라뎃다는 곧바로 
마을의 주임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인 1854년에 이미 당시의 
교황 비오 9세는 동정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믿을 교리로 발표하였으나, 일반 신자
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써 벨라뎃다는 전세계에 루드르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녀의 전령자가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4월 7일 수요일과 7월 16일 금요일에 다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는데, 4월 7일에는 촛불이 벨라뎃다의 손가락에서 오랫동안 탔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기적이 있었고, 이 일은 7월 16일에 다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7월16일 발현에 대해서는 그녀가 자세하게 언급하기를 회피하여 아직까지 
비밀로 되어있다. 이러한 그녀의 증언, 기도와 회개를 통해 1862년 1월 18일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로랑스 주교는 교구 신자들에게 '루드르 동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허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소망에 응답하기 위한 성당을 
동굴 위에 건립할 것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성직자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벨라
뎃다와 동굴을 보기 위하여 루드르에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루르드에는 1868년 
5월에 첫 번째 지하성당이, 이어서 제2, 제3의 성당이 차례로 세워졌다. 
■ 메시지
○ 개인적인 메시지
"나는 15일 동안 여기에 즐겨 오겠다." "나는 네게 현세의 행복을 약속하지 못하지만, 
후세의 행복은 약속하마." 이 말씀대로,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그녀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메시지는 기도가 주 내용이고, 베르나뎃따가 결코 
알지 못했던 세 가지 비밀로 되어 있다.
○ 회개와 관계되는 메시지
"죄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여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땅에 입을 맞추어라."
"샘물을 마시고 씻어라."
"저기 있는 채소를 먹어라."
기도, 보속 행위 그리고 특히 회개의 증표가 보이는 생활의 회개가 이 메시지의 핵심
이다. 샘은 2월 25일에 동굴 발치에서 발견되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하는"(요한 4 : 14) 주님의 물과 정화를 상기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성모님은 
인간의 육신에게도 도움을 주려고 하셨다. 수많은 병자들이 이 물로 씻거나 
잠김으로써 원상태로 회복되고 치유되었던 것이다. 
○ 교회적인 메시지
"시람들이 행렬을 지어 이 곳으로 오게 하고, 이 자리에 성전을 세워야 한다고 사제들
에게 알려라."이것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성전을 세우라는 명이었다. 성전이라는 
외적 건물은 "살아있는 돌"로 완성되는 영적 건물, 곧 하느님의 집의 표시가 된다.
- 메시지의 확인 : 3월 25일, 베르나뎃따의 주장에 따라, 마사비엘의 부인이 당신의 
이름을 밝혔다 : "나는 원죄 없으신 잉태이다."
당신이 회개하도록 부르신 이들에게 동정녀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인 
당신 자신을 주셨다. 마리아는 교회의 표상이다. 마리아는 또한 교회의 어머니이시다. 
당신 아드님의 신비체 속에서 당신의 모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 마리아의 메시지는 복음서를 반향한다.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루가 18 : 1 참조)
"너희들의 생활을 고쳐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 :17).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 : 14)
"당신은 반석입니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마태 16 :18).
"나는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겠다."(마태 28 : 20) 
윗 내용은 http://blog.daum.net/whatayun/6350935 
블로그에서 옮겨온 내용으로 남은 내용은 내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