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주님은 우리의 희망,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의 현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이 사실은 더욱 크게 부각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이 사실을 강하게 대변해 준다.
이스라엘 민족은 임금이 바뀌고 인접한 나라의 열강이 바뀔 때마다
최고의 전성기였던 다윗 왕국과 같은 막강한 나라로
다시 복원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으나
결국 남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유배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 유배 기간 동안, 오직 고통안에서만 희망이 가능하다는
역설적인 체험과 신념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고통과 절망에서 희망에로의 이 연결 작업은 그들만의 지성적인 노력과
그들이 물려받은 위대한 신앙에 의해서 가능하였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 기간 동안
이러한 희망의 성취도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미래 복원에 대한 희망은
늘 종말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스라엘 종말론의 골자는,
역사는 하느님에 의해서 어떤 목표를 향해 인도되고 있고,
하느님은 당신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이 종말론은 유다 묵시문학과 연결되면서
하느님이 우주의 멸망 후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리라는 희망으로 발전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미래, 우리의 희망,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전례 안에서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도들과 같이 우리도 성령을 기다리면서 주님 승천의 의미를
반추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하늘 나라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제 눈으로 직접 뵈옵는 신앙은 끝났다.
그대신에 시간과 공간을 영원히 초월하시는 분과 대화하게 되었다.
동시에 주님의 승천은 하나의 시작을 뜻한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실망하고 의기소침하여 떠난 것이 아니라,
큰 기쁨 중에 희망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바야흐로 기쁨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어떤 것도 살아 계신 주님과 헤어지게할 수 없다.
생활하다 보면 어두움과 빛, 절망과 희망이 주기적으로
어느 곡선을 그리며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 삶 안에서 기쁨과 슬픔, 희망과 번뇌는 늘 함께하는 것 같다.
오늘 축일의 의미는 우리를 둘러싼 잡다한 근심과 슬픔의 질곡에서
근본적인 희망을 남기고 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분께 희망을 두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겠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신 임마누엘의 하느님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희망과 용기를 주실 것이다.
그분의 평화와 기쁨이 우리의 봉헌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시기를 기원한다
- 출처 : 이기락신부님 저서 『엘 샷다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