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여행

캄보디아 앙코르왓

H-Simon 2008. 3. 27. 23:36

 

 

앙코르왓의 웅장한 모습

 

 

캄보디아 서북부에 있는 고고학 유적지.


앙코르톰 /캄보디아 앙코르톰에 있는 폐허화된 ...

지금의 시엠레아브 북쪽 6㎞ 지점에 있다. 9~15세기에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가장 눈에 띄는 기념물은 수리아바르만 2세(1113~50경 재위)가 12세기에 지은 앙코르와트와 자야바르만 7세가 1200년경에 지은 앙코르톰이다.

앙코르 시는 왕가의 중심지로서, 크메르 왕조는 이곳에서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크고 번성하고 발달한 왕국을 다스렸다. 890년경 야소바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옮긴 때부터 13세기초까지(수도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잠시 동안과 외세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시를 제외함) 앙코르의 왕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끝부분에서 북쪽으로 윈난[雲南]까지, 또 베트남에서 서쪽으로 벵골 만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통치기간에 지배자들은 자신들과 수도를 찬양하기 위한 일련의 거대한 건축사업을 실시하기 위해 막대한 노동력과 부를 이용했다. 자야바르만 7세(1181~1215경 재위) 이후 왕국의 권력과 활력은 점차 쇠퇴하여 1431년 타이 군대에게 앙코르를 점령당하여 약탈당한 다음 마침내 버려졌다. 앙코르에서 위대한 건설과 축조는 300년이 넘게 계속되었는데 이 동안 건축과 예술양식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종교의식은 시바 신과 비슈누 신을 섬기는 힌두교에서 점차 관세음보살신앙이 퍼져나갔다(→ 불교).

근대 이전에 세워진 동남아시아의 많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앙코르도 통치의 중심지이자 신격화한 왕을 숭배하던 곳으로서, 인도에서 들여와 지역적 전통에 맞게 고쳐친 종교적·정치적 개념에 의거해 계획·건설되었으며 여러 번 재건되었다. 이 도시에 '야소다라푸라'라는 원래의 이름을 붙인 야소바르만 1세 때부터 앙코르는 인도의 전통적 우주론이 제시한 모델에 따라 세워진 하나의 상징적 우주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 도시는 중심부 산, 즉 피라미드형 사원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는데, 이것은 인도의 우주론에 등장하는 메루 산과 동일시되었으며 동시에 왕국의 번영이 달려 있는 토양의 힘을 집중시킨다고 믿었다. 야소다라푸라로 명명되었을 당시의 중심부 산의 사원은 그 지역에 있는 자연 언덕인 프놈 바켕을 적절히 변형시켜 만든 건축물이었으나 후대에 와서 전적으로 인공적인 건축물, 즉 피라미드 사원이 되었다. 이런 후대의 사원으로는 자야바르만 5세(968~1001 재위)의 피메아나카스 사원, 우다야디티아바르만 2세(1050~66 재위)의 바푸온 사원 및 불교사원인 바욘 등이 있다. 특히 바욘은 자야바르만 7세 때의 중심사원이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이 도시를 지금과 같은 거의 완벽한 형태로 건립했는데 이무렵에 도시는 앙코르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 이때에는 앙코르의 주요특징인 방대한 저수지·운하·해자 등이 만들어졌는데, 이것들은 수량조절과 관개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우주론에서 우주 중심부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의 상징이기도 했다.

우주론적 사고와 도시 자체의 관계는 도시의 주요거주민과 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설정되었다. 중심부의 산 또는 피라미드나 사원은 '데바라자'라고 불리는 신격화한 왕이 주재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왕은 위대한 절대적 신격의 하나로 동일시되었고, 이런 동일시는 왕이 죽었을 때 중심부 사원을 왕의 개인 장례용 사원이나 무덤으로 삼음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앙코르에 있는 다른 많은 사원들 역시 인도의 우주론과 신화적 주제를 표현하고 있으며, 중심부 사원을 새로 짓지 않은 왕이나 실질적 통치자가 아니었던 왕가 구성원, 또는 몇몇 경우에 특정 귀족들이 시바 신이나 왕국에서 섬기던 다른 주요신과 자신들을 동일시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숭배장소로 세워졌다. 예를 들면 앙코르 유적의 사원 가운데 가장 거창하며 유명한 앙코르와트는 수리아바르만 2세가 자신의 유해를 안치하고 상징적·종교적으로 비슈누 신과 자신을 영원히 동일시할 수 있는 거대한 소우주의 건축물로 세운 것이다.

13세기말 이 곳을 찾은 중국의 무역사절 주달관(周達觀)의 생생한 기록에 따르면 앙코르는 그때까지도 번영을 누리던 거대한 도시였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장엄한 수도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이 무렵에는 자야바르만 7세의 재위기간 동안 극에 달했던 거대한 규모의 건축열이 확실히 끝나고, 상좌부로 대표되는 새롭고 보다 절제된 종교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 서부에 세워진 타이 왕국의 군대도 이미 크메르의 심장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16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도시의 폐기라는 형태로 절정에 이르렀고, 밀림으로 뒤덮인 고대 사원의 유해와 한때는 장대했던 저수지와 수로망의 폐허만 남게 되었을 뿐이다.

고대도시가 멸망한 15세기초부터 19세기말까지 400년이 넘는 동안 앙코르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앙코르와트에 모아졌는데, 앙코르와트는 상좌부 승려들에 의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순례지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캄보디아를 찾았던 초기 유럽의 방문객들은 '잃어버린 도시'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나타냈으며, 1863년 프랑스의 식민정부가 세워지자 이 유적 전체는 학문적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재능있고 헌신적인 프랑스의 고고학자와 언어학자들은 처음에는 독자적으로, 이후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프랑스 극동학교의 후원을 받아 이 지역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앙코르의 역사와 생활을 이끈 흥미진진한 종교와 정치체계에 대해 오늘날 알려진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고생스럽고 힘든 복원계획을 실행함으로써 고대의 사원·저수지·운하망을 원래의 장관에 어느 정도 가깝게 복구했다.

1960, 1970, 1980년대초에 일어난 캄보디아의 정치적·군사적 소요 기간에 앙코르의 사원들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고 도굴당하기도 했으나 가장 큰 문제는 방치되었다는 점이었다. 적절한 관리 부족으로 건물들은 급속하고 무성히 자라는 식물과 침식을 유발하는 물, 기타 자연현상으로 황폐해졌다.

F. E. Reynolds 글

 

 

 

 

앙코르 왓의 웅장한 모습.

 

앙코르 유적지 유일의 불교 건축물

 

앙코르 톰의 입구입니다

 

실물 코끼리와 똑같은 크기의 코끼리 테라스 사진.

 

수백개의 거대한 얼굴들

 

바깥에서 본 바이욘 사원

 

벽에는 수많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선녀 압쌀라. 참 개구지게 춤을 추고 있지요.

 

앙코르의 미소

 

비슈누에게 바치기 위한 사원

 

왕코르왓은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

 

천상계로 오르기 위한 계단.

 

내려오는 계단

 

문둥이 왕 테라스의 문둥이 왕 像.

 

너희들이 캄보디아의 미래이다.

 

강아지 한 마리씩 끽 바이욘 사원을 뛰놀던.....

 

 

자전거도 굉장히 큰 재산

 

  

        

                                                                             

         

                                                                                                                                                                                                                    

 

 

 

 

 

 

▲ 앙코르 왓의 중앙탑

 

 

 

 

▲ 앙코르 왓의 압살라 부조

 

▲ 보일듯 말듯한 바욘의 미소

▲ 나무가 삼켜버린 사원 따프롬

 

▲ 반띠아이 쓰레이

 

 

 

▲ 동양의 베니스, 톤레삽

 

 

 

▲ 압살라 쇼 공연 모습

 

 

 

 

 

▲ 프레아칸

>>>폐허 속에 묻힌 지난 영광의 시간들
● 앙코르 유적 둘러보기
앙코르 유적군은 크기도 크고, 종류도 많으며,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는데다 하나 하나의 유적들이 역사적, 건축적인 면이 뛰어나 관람시간이 적잖이 걸린다. 루트를 짜고 여행하는 게 시간의 낭비가 적다.
여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앙코르 왓을 구경하고 앙코르 톰 남문을 통해 바욘과 코끼리 테라스 등의 유적을 구경한다. 나무가 휘감아 올린 따프롬을 관람하고 조금 멀리가면 반띠아이 쓰레이를 보기도 한다. 하자만 아버지를 위해 지은 프레아 칸, 순례자들이 몸을 씻은 니악뽀안, 따께우, 쓰라쓰랑, 반띠아이 끄데이 등 수 많은 유적이 있어 하루 이틀에 쉽게 끝날 여정은 아니다.

앙코르는 아직 무척 많은 숙제를 해야 한다. 유적지 치고 멀쩡한 곳이 없으며 발굴이 끝난 곳이 없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벽돌들이 유적 옆에서 제자리 찾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렇게 허물어진 것을 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 앙코르의 중심, 우주의 중심 앙코르 왓
한 프레임에 담기 벅찬 큰 구조의 사원. 앙코르 유적을 대표하면서 가장 중심이 되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해자를 건너 앙코르 왓의 가장 외부의 문을 통과하고 쭉 뻗은 길을 따라 가면 중앙 사원을 둘러싼 사각형의 회랑이 나타난다. 회랑에는 신화와 역사에 관련된 서사시가 빼곡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 가만히 보고만 가는 것으로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원의 가장 중앙에 있는 중앙사원은 가파른 계단을 지나 올라갈 수 있는데 그 가파른 경사로 인해 높이가 더욱 돋보인다. 신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가파른 경사는 앙코르 유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네발로 기어 올라 간 중앙 사원 역시 사각형의 대칭 구조이며 내려다 보이는 앙코르 왓 역시 네모 반듯한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정상에서 보이는 모습이 시원하다.

● 캄보디아의 미소, 바욘
보일 듯 말 듯, 웃는 듯 마는 듯한 바욘의 미소. 모나리자의 미소가 서양의 미소라면 동양엔 이 바욘의 미소가 있다. 바욘의 특징이라면 곳곳에 새겨진 미소 띈 석상. 크고 작은 얼굴이 사원 전체에 숨어있다. 겉으로 보이는 바욘은 그다지 크지 않고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라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바욘은 미로 같은 구조가 더 미로가 되었다.
바욘은 쌓여서 사원을 이루고 있는 돌이나 무너져 마당 한 곳에 쌓인 돌이나 그 양이 비슷해 보인다. 저 퍼즐이 다 맞춰져야 온전한 모습이 만들어질 텐데 아마 골치 꽤나 아픈 일 일거 같다.

● 나무가 삼켜버린 어머니를 위한 사원 따프롬
기괴한 사원 따프롬. 그렇지만 꼭 가봐야 할 따프롬은 앙코르 유적 중 가장 강한 이미지를 주는 곳 중의 하나다. 보전 된 것보다 무너진 것이 더 많은 사원 안에서 가장 압권은 나무가 삼켜버린 건물. 인간의 건축물을 나무가 뚫고 올라와 파괴하였지만, 이제는 그 나무가 사원을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라 나무를 베어버릴 수도 없다.
무너진 담과 조각들, 뒤엉킨 나무로 인해 사원은 정해진 보도도, 경로도 없다. 길이 있으면 가고 통로가 있으면 들어가다가 막혔으면 돌아 나오기를 몇 차례, 사원의 크기를 종잡을 수 없다.
따프롬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사원이다. 세월과 자연이 이렇게 집어 삼켜버렸지만 결코 어떠한 힘으로도 다시 복구하지 않아도 좋을 그런 곳이다.

● 반띠아이 쓰레이, 아름다운 장식의 사원.
이 붉은 사원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사원을 보자마자 그 이유를 알아차리겠지만 섬세하기 그지 없는 훌륭한 조각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찾는다면 다른 곳과는 다른 붉은 빛이 그 아름다움을 더 할지도 모르겠다. 사원은 돌로 만들어졌지만 그 화려한 조각들은 마치 나무를 유연하게 깎아 낸 듯 하다. 사원의 장소와 건물의 위치를 불문, 조각들이 가득하다. 조각의 주제는 주로 신화의 내용, 신화의 인물, 구름 문양등 기하학적인 것들이다. 이곳의 조각이 다른 곳과 다른 것은 앙코르 왓이나 바욘의 부조와 달리 깊숙하게 패여 양감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작지만 장시간 머물게 되는 이유가 된다.


● 캄보디아 내륙의 바다 톤레삽
호수지만 분명 바다와 같다고 느껴지는 톤레삽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다. 톤레삽에 도착하면 그 황량한 모습에 적잖이 실망할지 몰라도 이곳의 물고기들은 가난한 이 나라 국민에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톤레삽에는 이곳에 집을 짓고 사는 수상족이 있는데 그리 넉넉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물 위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필요한 나름의 시설을 다 갖추었다. 운동장은 없지만 학교, 교회, 주유소, 집 옆으로는 닭과 돼지를 키우는 우리까지. 배를 타고 프놈펜등의 도시로 가는 일도 있으니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음식을 파는 식당을 갖춘, 육지 못지 않은 곳이다.

 

 

● 정중동의 미학 압살라 전통무용
유적지 곳곳에서 새겨진 무희 압살라는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로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그들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자세. 그 다양성은 사원의 수많은 압살라 중 중복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다. 짖꿎은 관광객들이 압살라의 특정 부위를 맨들맨들하게 해놓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몇 백년 동안 사원에서 춤을 추고 있다.
씨엠립에서 압살라 전통무용을 보면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꽤 많은데 전문 식당도 있고 호텔야외에서 하기도 한다. 압살라 전통무용은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한 남녀가 나와 신화의 내용과 이들의 전통생활 양식을 춤으로 표현한 것으로 움직임이 그리 크지 않고 템포도 조금 느려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독특한 전통무용과 화려한 의상을 볼 수 있다.

 

>>>즐거운 탐험 여행 앙코르 유적지 여행 tips
1. 씨엠립 여행객이 증가하면서 크게 발전하였지만 아직 개발중인 곳이 많다. 따라서 밤이면 가로등이 없거나 혹은 외진 골목은 매우 어둡고 위험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다니지 않도록 하고 물은 반드시 사서 먹도록 한다.
2. 앙코르 유적은 힌두 신화와 역사에 기반을 두고있어 관련된 내용을 알고 가면 더욱 유익하다. 또한 유적은 넓게 퍼져있고 가파른 중앙 탑을 오르거나 걷는 일이 많으므로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게 좋다. 캄보디아는 열대지역으로 기온이 높은 한 낮에는 관광보다는 점심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건강한 여행이 된다.
3. 캄보디아는 비자가 필요한 국가로 입국시 국경이나 공항에서 취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유적지에 들어갈 때는 입장권에 사진을 붙여야 하므로 사진을 3-4장 준비한다.
4. 캄보디아의 화폐 단위는 리알이지만 앙코르 유적이 있는 씨엠립에서는 태국의 파트나 미국 달러가 많이 사용된다.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고액권 보다는 $1, $5 권을 여러 장 준비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