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성 마르티노 주교는 316년 무렵 헝가리의 판노니아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의 부모는 이교인이었다. 성인은 이탈리아 파비아에서 교육을 받고 황제의 근위병으로 근무하였다. 성인의 일화 가운데 구걸하는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주었는데 나중에 그리스도께서 그 외투를 입고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런 체험을 한 다음, 성인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어 나중에는 사제로 서품되었다. 371년에는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복음 전파에 전념하였다. 그는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복음 말씀 ♥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루카 17,26-37)
♥ 오늘의 묵상 ♥
언젠가 TV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느 유명 인사가
난치병에 걸렸다가 살아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화려한 삶, 모든 이가 부러워하던 당시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세월과 병의 고통으로 늙고 지친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다 돌아온 그의 정신은 오히려 진실하고 맑아 보였습니다.
사회자가 그에게 병이 들기 전과 후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합니다. “병을 앓으면서 깨달은 것은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며, ……
결국 죽음 앞에서 살아온 순간을 돌아볼 때 가장 소중한 것은
‘내려놓음’, ‘나눔’, ‘섬김’이라고 생각한다. …….”
왜 이런 것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 다가오는지요?
더 먹지 못한 것, 더 누리고 더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나누고 사랑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마치 천 년도 더 살 것처럼 온갖 탐욕과 집착에 젖어 있을 때는 몰랐던 인생의 진정한 숨은 가치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각자가 가진 직업과 신분 안에, 사건과 만남 안에,
자기만의 고유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살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게 되지요.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온 사람은
죽음 저 너머의 세계도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 날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어도,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같은 옷을 입고 살아도, 또는 같은 일을 하며 살아도,
구원받을 사람과 그러지 못할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어떤 신분인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에 달려 있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11월 11일
H-Si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