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2011년 10월 12일[(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H-Simon 2011. 10. 12. 03:30

         오 늘 의   묵 상         H-Simon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복음 말씀 ♥

 

+.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46)

 

♥ 오늘의 묵상 ♥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중성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듯, 인간은 태어날 때 모태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두려움이 각인됩니다.

어머니와 하나 되어 지낸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이제 개별적인 존재가 되어 세상에 나오면서,

아기의 무의식 속에 자신이 내쳐질까, 버려질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는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본디의 ‘자기 모습이 아닌 자기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계발되고점점 자신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잃어 가게 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결국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면의 진정한 나’

사이의 간격이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홍윤숙 시인은 “가면”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썼지요.

 

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마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문다 /

부질없는 호감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짓는다 /

수치와 굴욕을 감추기 위해 큰소리로 떠든다 /

그러다 돌아와 자신을 향해 침을 뱉는다 눈물을 쏟는다 /

무거웠던 가면 전흔의 상처 남루한 /

또 하나의 얼굴이 쓸쓸히 누워 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처럼

두껍게 ‘내가 아닌 나의 얼굴’을 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착각하며 살기도 합니다.

늘 세심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주님 앞에서 정직한 나와 마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거짓의 나와는 함께하실 수 없으며,

진실한 나와는 늘 함께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10월 12일

                                               H-Simon

 

 


주님, 당신은 사람마다 행실대로 갚으시나이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구원이 오리니, 내 영혼 그분만을 고요히 기다리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주님, 당신은 사람마다 행실대로 갚으시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