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복음 말씀 ♥
+.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오 11,25-30)
♥ 오늘의 묵상 ♥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시기 몇 해 전,
‘동성 중고교 개교 100주년 전’에 직접 그리신 자화상을 ‘바보야’라는 제목으로 출품하셨습니다.
동성 중고교는 추기경님의 모교입니다. 추기경님의 자화상은 어린이가 그린 듯한 그림이지만,
‘바보야’라는 글과 함께 추기경님의 모습만큼이나 천진난만해 보입니다.
추기경님은 적어도 한 시대 한 사회를 이끌었던 가장 아름다운 정신적 지도자이셨으면서도,
당신 한평생을 ‘바보’라고 결론 지으셨습니다. ‘바보’는 ‘밥보’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의견에 따르면, ‘밥’에 “그것을 특성으로 지닌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보’가 붙어
‘밥보’였던 것이 동음 ‘ㅂ’이 탈락하여 바보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곧 밥이나 축내면서 어리석고 미련스럽게 사는 사람을 가리킬 때 바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추기경님이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으시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더 잘살지 못했음을 스스로 꾸짖으시며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바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영악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잘나가는 시대가 되다 보니, ‘바보’라는 말이 오히려 그립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을 ‘밥보’처럼 겸손하게 표현하셨지만, 듣는 우리에게 바보는 시대에 영합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셨던 한 어른의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순수하고 천진한 철부지 같은 사람에게 드러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추기경님의 겸손하고 천진하신 마음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 하느님께서는 세상 곳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못나고 바보스러운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계십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7월 3일
H-Sim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