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4월27일 聖女 지타 님..등

H-Simon 2011. 4. 26. 15:53

 

 

4월27일(수)   

 聖女 지타 님..등

 

 

 
  

성녀 지타 (Zita)
 

     나는 길 잃은 나그네 였네 
  
 

 

 

   ▶지타(4.27)
 
성인명 지타(Zita)
축일 4월 2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녀, 하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218-1272년
같은이름 시따, 시타, 지따, 치따, 치타

 

성녀 지타(Zita)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Toscana) 지역의 루카(Lucca) 근처에 있는
몬사그라티(Monsagrati)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성녀 지타는 가난하지만 신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과 신앙 교육으로 인해 그녀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정도였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루카의 파티넬리(Fatinelli) 가문의 하녀가 된 그녀는
그곳에 평생 머물며 48년 동안 하녀로 일하였다.
그녀는 근면하고 열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고행을 실천한 관계로
주인 부부는 물론 동료들의 시기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노동이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일종의 보속행위라고 생각하고
감사와 순명의 정신으로 모두를 대해 끝내는 그들을 감동시켰다.
시간이 흐른 후 하인들의 책임자가 되고 주인 부부로부터도
많은 재산을 받았지만 그녀는 이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범법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많은 기적적인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성녀 지타는 신심이 매우 깊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지곤 하였다.
탈혼에 빠져 있는 동안 그녀가 하던 빵 굽는 일 등을
천사가 와서 대신 해 주었다고 한다.
성녀 지타는 죽음이 가까웠을 때 고통 속에서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되었고,
임종일이 되자 자청하여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272년 4월 27일 55세로 루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루카 지역을 중심으로
그녀를 공경하는 풍습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결국 영국까지 전해졌다.
특히 가사를 담당하거나 집사를 담당하던 이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성녀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몇 차례 성녀의 관을 공개할 때마다
시신이 썩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자 마침내 1696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는 지타의 시성식을 거행하고
그녀에 대한 공경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그리고 1748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는 성녀의 이름을
로마 순교록에 기입하였다.
그녀는 1953년 9월 26일 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래서 성녀 지타는 교회미술에서 주로 하인 복장을 하고
열쇠 꾸러미와 물 항아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영국에서 시타(Sitha) 또는 치타(Citha)로 불린다.

 

 

                가난한 가종에 태어 났으나

                신심 깊은 부모를 통해 주님 사랑 배우고

 

                하녀로 일하면서도

                탈혼에 이르는 기도의 기쁨에 사시던 분,

 

                지타 성녀님, 님의 고결한 기도 가운데,

                저희를 기억해 주소서.................아멘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오(4.27)
 
성인명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오(Peter Armengaudius)
축일 4월 2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238-1304년
같은이름 베드루스, 아르멘가우디우스, 아르멘골,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오(Petrus Armengaudius)


   성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우스(Petrus Armengaudius)
에스파냐의 타라고나(Tarragona)에서 우르겔(Urgell) 백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0대의 나이에 산적의 무리들 틈에 끼어들었다.
1258년 아라곤(Aragun)의 국왕 제임스는 이 지역의 산적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아버지를 대장으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전투가 임박하여 아들이 적장을 살펴보니 그의 부친임을 발견하고는
큰 충격을 받고 용서를 청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보속을 하였으며,
메르체다리오 회원이 되어 포로들의 석방을 위해 맹활약하였다.
그는 두 번이나 아프리카로 가서 무어인들에게 잡힌 포로들을 석방시켰는데,
두 번째 여행에서 그는 돈이 부족하여 18세 된 소년을 석방시킬 수 없게 되자
자원하여 포로가 되었다.
그래서 성 베드로는 교수형을 받았지만 목을 묶은 끈을 풀었을 때
되살아났기 때문에 무어인들이 그를 석방시켰다고 한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0여년을 더 살면서 덕을 닦다가 선종하였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86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베드로 아르멘골(Petrus Armengol)로도 불린다.

 

 

                소년 시절 부모의 근심이었던 베드로 아르멘가우디우스,

                아버지와의 극한 대립의 순간에

                용서를 청하셨네요.

               

                회개와 보속으로 주님께 나아가시니

                순교의 순간 천사의 도우심으로 하느님 사랑을 다시 느끼셨도다..

 

                회개와 보속, 사랑의 실천으로 용맹히 살으신 분,

                저희 약함을 위하여 빌어 주시며, 축복해 주소서........아멘

       

 

 

 

   ▶야고보(4.27)
 
성인명 야고보(James)
축일 4월 27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수사
활동지역 비테토(Bitetto)
활동연도 +1485년
같은이름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비테토의 복자 야고보(Jacobus)


   크로아티아(Croatia) 아드리아해 북부에 면한 항구도시인 자다르(Zadar)에서
태어난 야고보(Jacobus)는 이탈리아 남부 바리(Bari) 인근 비테토 수도원에서
작은 형제회 평수사가 되었다.
그는 겸손과 자기 극기 그리고 관상을 통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또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의 은혜를 받았으며,
기도 중에는 공중으로 떠오르는 현상도 여러 번 체험하였다.
그는 바리에서 약 29km 정도 떨어진 콘베르사노(Conversano) 수도원에 있을 때는
요리사로서 부엌일을 하였는데,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통하여
지옥의 불꽃을 수차례나 목격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이따금씩 탈혼 상태에 빠졌다.
 
 그는 다시 비테토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선종하였다.
달마티아(Dalmatia)의 야고보로도 불리는 그에 대한 공경은 1700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승인되었다.

 

 

                예언과 공중 부양의 강렬한 주님 현존 체험 속에서

                천상 기쁨으로 현세를 살으신 분

 

                연악한 dl 영혼, 주님 사랑 가득히 받으면서도

                늘 감사에 미흡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굿뉴스 가톨릭 정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