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말씀 ♥
+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 12,1-11)
♥ 오늘의 묵상 ♥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루카 10,38-42 참조) 속에 예수님 발치에만 앉아 있던
마리아를 기억하시지요?
그토록 사랑하는 예수님께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나르드 향유의 가격이 얼마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향한 사랑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행동을 지켜보는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유다입니다. 그는 마리아의 행동을 보자마자 곧바로 나르드 향유 가격이 떠오릅니다.
노동자 1년의 임금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 어치의 향유 값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산됩니다.
이런 비싼 향유가 그냥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불만스러운 심정을 그냥 내보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불만의 정당성을 내세우려고 가난한 이들을 핑계 삼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사랑의 관계’와 ‘이해관계’의 차이를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계산하거나 따지는 법이 없습니다.
마리아의 사랑으로 나르드 향유 냄새가 온 방에 가득합니다. 사랑의 향기입니다.
반대로 유다는 머릿속에서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습니다.
정의를 내세우지만 스승이신 예수님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일차적인 사랑 없이 가난한 이들을 팔아 내세우는 정의 뒤에는
권력욕과 탐욕이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신앙인의 중요한 덕목은 계산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예수님을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그다음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덕목입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2011년 4월 18일
H-Sim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