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들과 함께

4월7일 聖요한세례자 라 살님..등

H-Simon 2011. 4. 6. 16:23

 

 

4월7일(목)   

聖요한세례자 라 살님..등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

 

 

  

 

 

 

 

   ▶요한 세례자 드 라 살(4.7)
 
성인명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hn Baptist de la Salle)
축일 4월 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립자, 교육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651-1719년
같은이름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
1651년 4월 30일 랭스(Reims)에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소르본(Sorbonne) 대학교와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678년 27세 때에 사제품을 받았다.

   귀족 가문에서의 성장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그는 루앙(Rouen)의 니엘(M. Nyel)이라는 신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자선 학교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저 그의 고향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차차 그 주변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마련한 소명임을 깨달은
그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참사회원직마저 버리고 이 일에 전심으로 투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교사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자기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했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 단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요한은 오랜 숙고 끝에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 수련기를 가진 다음,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도복을 입는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생각으로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하였으며
이어 또 하나를 파리(Paris)에 설립하였다.
1688년 랭스에서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수도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파리의 대주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확장되어 지금은 17,000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며,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루앙에서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보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과목을 제공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루앙의 기숙사 학교는 18세기 수도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설립된
다른 많은 학교들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1719년 4월 7일 성 금요일에 루앙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모든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공포되었다.
 

 

 

   ▶헤르만 요셉(4.7)
 
성인명 헤르만 요셉(Hermann Joseph)
축일 4월 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비가
활동지역  
활동연도 1150-1241년
같은이름 요셉, 요셉푸스, 조셉, 조셉푸스, 주세페, 쥬세페, 헬만

 

성 헤르만 요셉(Hermann Josephus)

   독일 쾰른(Koln)에서 출생하여 헤르만이란 세례명으로 불렸던
성 헤르만 요셉(Hermann Josephus)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당에서
성모님과 예수 아기 성상 앞에 꿇어 엎드려 자주 대화하곤 하였다.
 
한 번은 성모상의 성모님께 사과 하나를 드렸는데,
그 성모님이 손을 뻗어 받으셨다고 한다.
또 어떤 때에는 아기 예수님과 천사들과 함께 놀기조차 하였다.
12세 때에 그는 스타인펠트(Steinfeld)에 있던 프레몽스트레회에 입회하였으나
너무 어려서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Friesland)로 공부하러 보내졌다.
여기서 그는 세속 문학을 공부하는데 큰 흥미를 보였다.

   한 마디로 그의 일생은 흠잡을 데 없이 순진무구하였고,
수많은 신비적 체험을 하여 신비가로서 유명하였다.
또한 그는 성녀 우르술라(Ursula)에게 바치는 찬미가를 썼고,
예언서에 흥미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단식과 고행으로 자신의 건강을 크게 해친 결과 1241년 4월 7일
스타인펠트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굿뉴스 가톨릭 정보에서 발췌